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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쇠보관함 Aug 05. 2024

소홀해진 것들에 대하여




새벽이 되도록 잠이 오지 않았다.

불은 껐지만, 조명은 하나 켜두고 침대에 몸을 뉘었다. 더해서 좋아하는 가수의 플레이리스트를 틀어놓았다. 나도 모르는 새에 주변이 감성을 자극하는 요소가 가득 찬 공간이 되어버렸지 뭐람.

노래가 잡념을 가라앉혀 차분해진 머릿속에서는, 유독 이런 순간에'만' 존재를 키우는 소홀해진 것들이 있다.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어 이런저런 과거에 잠긴다. 일기도 그중 하나다.



예전엔 꾸준히 했었는데, 그러고 보니 요즘 소홀했지.

그거 참 좋아했는데 언제부터 안 보기 시작했더라.

엄청 신경 썼었는데, 그거... 언제부터?





소홀해진 것들에 대해서는 떠올리기 힘들다.
말 그대로 나의 발길이 드물어졌기 때문이다.
나의 안중에서 벗어난 것을 어떻게 인식하겠는가.
지나쳐버렸고, 나의 앞엔 다른 것들로 차고 넘치는데.


그래서 나는 그런 소소한 일상을 되찾을 수 있는 이런 '아무것도 하지 않는'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가령 버스나 택시 같은 이동수단을 타고 갈 때라던가(당연하지만 나는 운전자가 아니라는 전제가 있다). 핸드폰 말고는 마땅히 할 일이 없는, 그런 강제적으로 벌어지는 공허한 빈 틈 말이다.



누군가에겐 버리는 시간이라 생각할 수도, 정말로 버려져 의미 없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시간에 나의 삶 구석구석을 되짚어보며 뒤돌아볼 수 있고, 걸어온 발자국이 삐뚜름하진 않았는지, 실수로 떨어트린 물건이 없는지, 내 옷이 더럽지는 않았는지, 넘어졌던 상처가 아픈지 상기할 수도 있다.



나만이 소홀해지는 나는
내가 아니면 절대로 돌아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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