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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글샘 Jul 13. 2024

친애하는 선배님들께

비빌 언덕이 있다는 건



감사한 일, 감사할 일!


    앞선 글(교직의 기쁨과 슬픔)에 미처 다 담지 못한 이야기가 있다. 내 일을 사랑하게 됨에 있어 아이들의 역할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을 한 존재가 또 있다는 것. 바로 이 일을 하며 만났던 '여러 선배들'이다. 가르치는 일을 꿈꾸며 교단에 섰거나, 시작은 그렇지 않았더라도 거의 평생 가르치는 일을 하신 선배들에겐 대개 비슷한 공통점이 하나 있다. 무언가를 묻는 사람에겐 언제든 답변을 해 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친절하고 자세하게!


    생각해 보면 당연하다. 선생님이란 호칭은, '먼저 태어난 자'라는 뜻이 아닌가. 선생님은 태초부터 늦게 태어난 자를 위해 존재한다. 그게 바로 '선생'의 숙명이다. 맹자가 말했던가? 스스로 구하면 얻을 것이다. 나는 이 말이, 적어도 교직 사회에서는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신규라서 할 수 있는 아주 소소한(때론 어이없는) 질문부터, 당장 필요한 업무 처리 방법 혹은 아이들을 지도할 때 중요한 조언까지. 어려운 상황에 처해 조언을 구하거나, 도움을 요청했을 때 선배들은 늘 현명한 해답을 주었다. 내 나름 '교사 백서' 내용의 적어도 80%는 역시 선배들로부터 배운 것이다. 이 얼마나 감사하고, 감사할 일인지.


따뜻한, 너무나도 따뜻한


      사기업에 대한 로망이 있다. 자세히 말하면, 공무원 아닌 어느 '직장인'들의 생활에 대한 로망이 있다. 본래 사람은 가보지 못한 길을 더 동경하는 법. 세상에 존재하는 직업의 종류를 다 알지 못해 '무엇'도 되고 싶지 않았던 학창 시절에도 상상 속 내 모습은 사원증을 목에 걸고, 한 손엔 커피를 든 채(?)(커피 맛도 몰랐으면서) 바삐 사는 '누군가'였다. 아이들과 지지고 볶으며 밥이 어디로 넘어가는지 모르게 정신없는 점심시간에 적응한 지 오래지만, 직장인의 점심시간은 여전히 내게 남아 있는 로망 중 하나이다. 클라이언트 미팅과 해외 출장은 또 어떤가. 내가 한 어떤 일의 결과물이 시장에 하나의 상품으로 출시된다면! (이쯤 되면 어떤 직장에 다녀야 이 모든 로망을 충족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그 밖에도 부러운 건 참 많지만, 내 직업의 장점 중 하나인 '이것'을 떠올리면 부러워서 나부끼는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다. 바로 '따뜻한 교직 문화'이다.


     교직 생활에도 희로애락 존재한다. 나의 경우를 돌아보면, '노'와 '애'의 감정은 주로 아이들로부터(!), 때로는 '업무'로부터, 또 가끔은 '학부모'로부터 비롯한다. (늘 그런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나의 직업을 사랑한다.) '희'와 '락'은 구하는 대로 찾을 수 있기에 잠시 제쳐두고, '노'와 '애'를 어떻게 해소했는가 생각해 본다. 역시 선배들에게 도움을 구했던 경험보다 더 선명한 기억은 떠오르지 않는다. 내로라하는 꾸러기를 맡아 매일 좌충우돌할 때에도,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난감하기만 한 업무를 받아 쩔쩔맬 때에도, 여러 선배님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나는 내 일을 사랑하는 교사로 성장할 수 있었다.


나의 선배 이야기


    어느덧 교직에서 쌓은 경력이 거의 10여 년. 강산도 한 번 바뀐다는 시간 동안 만났던 고마운 선배들의 얼굴을 떠올려본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K 선배. 늘 명쾌하고 동시에 유쾌하기까지 한 해답을 제공해 주시는 선배는, 내겐 언제든 놀러 갈 수 있는 뒷동산과도 같은 존재이다. 어렵고 헷갈리는 일이 있을 때, 심지어 그것이 교직과는 전혀 관련 없는 일일지라도 나는 K 선배의 얼굴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그러면 분명 큰 일이었던 게 때로는 웃어넘길 수 있는 작디작은 일이 되기도 한다. 아무리 막막한 일이 있어도 선배님께 조언을 구하면 되기에 내게는 말하자면 믿는 구석이 하나 있는 셈이다.


    K 선배의 미덕은 그뿐만이 아니다. K 선배가 농담처럼 하시는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역시 젊은이들이랑 어울리고, 젊은이들한테 배워야 해'. 이 말은 문자 그대로 젊은 사람들에게 배워야 한다기보단, '열린 마음을 갖고 무엇이든 새로운 것을 배울 준비를 해 둬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K 선배는 모든 일의 해답을 들고 있는 것 같이 보이지만, 그 답이 도깨비방망이처럼 뚝딱! 하면 나오는 게 아니라는 걸 나는 안다. 그게 선배의 타고난 지혜와 오랜 연륜 덕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늘 스스로를 성찰하고 후진하지 않으려 노력하기에 가능한 일이라는 걸. K 선배는 교사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늙어가며 닮고 싶은 태도를 몸소 보여주는 존재이기에 내게 소중하다.


    L 선배는 또 어떤가. 학교라는 공간에서 일하다 보면, 전문성을 갖춘 교사란 대체 무엇일까? 하는 질문을 계속 마주하게 된다. 이런저런 이유로 학교 일이 고민될 때면 나는 'L 선배'의 얼굴을 떠올린다. 수업은 물론이고 학생생활지도, 업무, 관계 등 모든 면에서 탁월한 선배가 가까이에 있다. L 선배는 '나이를 먹는다는 건 손해 볼 각오를 해야 하는 일.'이라고 말하며 양보하고 기꺼이 손해를 보신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진정으로 손해 보는 일이 아님을 알고 있다. 약간의 불편 혹은 비용으로 L 선배는 많은 후배들의 존경과 지지를 얻는다. L 선배가 머무르는 연구실은 우리 학교의 사랑방이다. 어려운 문제나 고민스러운 일이 있을 때 우리는 L 선배를 찾아간다. 기쁜 일이 있을 때, 나누고 싶은 간식이 있을 때도 물론이다. 학교에 일찍 출근해 동료가 마실 커피를 매일 기쁜 마음으로 내려두시던 L 선배. 나도 L 선배처럼 나이를 먹을 수만 있다면, 어떤 손해도 기꺼이 감수할 것이다.


     이제 다시는 만날 수 없기에 더욱 그리운 H 선배도 있다. 출근해서 메신저를 켜 두면 하루에도 수십 통의 메시지가 쏟아지는데, H 선배가 그 모든 메시지에 온 마음을 담아 따뜻한 답신을 쓴다는 사실을 알고 얼마나 놀랐었는지. 새벽같이 학교에 출근해 가만있으면 뭐 하냐며 매일 연구실을 쓸고 닦고, 학교 구석구석을 세심히 살피던 선배를 나는 미처 다 이해하지 못했다. 한창 학교가 싫어 매일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 즈음이었는데도, 선배는 내게 아주 재능이 많고 유능한 교사라며 늘 따뜻한 말로 마음을 어루만져주셨다. 선배의 건강이 악화되어 결국 병가를 내고 들어가셨던 어느 새 학기. 3월 2일이라고 선배가 내게 주셨던 응원 카톡 내용을 아직도 지우지 못했다. 늦게 철 난 자식처럼, H 선배의 위대함을 너무 늦게 깨달았기에 선배를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그뿐일까. 세상 시니컬한 표정으로 '학교 일에 너무 애쓰지 마라. 스스로를 먼저 챙겨라.' 말해주 Y 선배도 있다. 주변 사람을 살뜰히 챙기는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라서, 역설적으로 마음을 많이 쓰지 않으려 노력하는 선배다. Y 선배를 보러 가면 절대 빈 손으로 나오는 법이 없다. 선배는 자신이 챙겨 온 바나나 한쪽이라도 꼭 쥐어주고, 크리스마스 같은 날엔 양말 한 짝으로도 기대치 않았기에 더욱 깊은 감동을 주며 별 거 아니라고 민망해한다. 시니컬 가면을 쓰고 있지만 선배의 마음이 어떤 모양과 온도인지 알아 내게 주는 소소한 말과 표현도 그저 고맙다.


    타고난 카리스마로 거친 6학년 아이들을 거뜬히 상대했던 S 선배도, 정 반대되는 성격으로 따뜻한 교사가 끼치는 선한 영향력의 힘을 증명해 보였던 K 선배도 함께 떠올려 본다. 더 많은 선배들과의 다양한 일화가 참 많지만, 모두 글로 옮겨 적기엔 한계가 있기에 이쯤으로 마무리를 해 본다. 우연한 만남이 겹치고 스치는 교직에서 이렇게나 멋진 선배들을 만날 수 있었던 건 내 인생의 큰 행운이다. 당신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내가 존재한단 사실을, 애틋하고 고맙고 그리운 마음을 듬뿍 담아 선배님들께 알리고 싶다. 


너의 선배 활용법


    아프리카에는 이런 속담이 있다고 한다. '노인 한 명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없어지는 것과 같다'. 이 말을 교직에 맞게 적용한다면 이런 표현이 걸맞지 않을까 생각한다. '교사 한 명이 퇴직하면 전문서 하나가 없어지는 것과 같다'. 보석 같은 선배들의 정년 퇴임, 혹은 명예 퇴임이 나는 사무치게 아쉽다. 선배들에겐 그 어떤 전문서로도 배우지 못할 지혜와 연륜이 있는데, 그 모든 것이 선배들의 퇴임과 함께 교직 뒤편으로 사라지는 것만 같아 그저 슬프다. 이런 선배들의 이야기를 모두 모아 책을 만든다면 얼마나 많은 후배들에게 도움이 될까? 상상만 해 볼 뿐이다.


    어느덧 나도 후배라고만은 할 수 없이 경력을 쌓았다. 내가 경력을 쌓은 것일까, 아니면 그저 경력이 쌓인 것일까? 나는 어떤 선배로 기억되고 싶은가? 스스로 질문을 던져 본다. 아직은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 하나, 적어도 '부끄러운 선배'는 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아는 것은 최대한 나누고, 모르는 것은 함께 고민하는 선배가 되고 싶다. 내게 선배들이 그랬듯, 나 역시 후배들에게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비빌 수 있는 작은 언덕이, 언덕이 아니라면 아주 작은 둔덕이라도 되어주고 싶다. 그나마 다행인 점. 내게 주어진 시간이 조금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그런 선배가 되기 위해 경력을 촘촘히 쌓아나가며 더욱 노력해야 한다.



    혹시 지금 어려운 시간을 지나는 후배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전하고 싶은 조언이 하나 있다. 절대로 혼자 고민하지 말고, 혼자 끙끙 앓지 말고, 옆 반 교실 문을 열고 선배들에게 고민을 나누라는 것. 옆 교실 문을 여는 데에 생각보다 많은 용기가 필요할 수도 있지만 옆 반 선배는 분명 당신을 따뜻하게 맞이해 줄 것이다. 분명 도움이 되어 줄 것이다. '혼자 가면 빨리 가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간다.'는 오랜 지혜를 늘 마음속에 새기길. '연대'의 기쁨과 위안을 몸소 느끼고 앞장서 연대하는 당신이, 우리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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