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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이기 전에 여자였던 것을

처음 사드린 옷

by 우먼파워 Mar 06. 2025

  어버이날을 앞두고 엄마에게 옷을 사드리고 싶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엄마에게 옷을 사드린 적이 없었다. 명절이나 생신 때 용돈 몇 푼 쥐여 드리는 것으로 효도를 다 했다고 여겼고 엄마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이번만큼은 엄마를 위해 직접 고른 선물을 드리고 싶었다.    

  

  큰 맘먹고 백화점에 가서 매장을 둘러보았다. 걸려있는 옷들은 하나같이 비싸 보였다. 살까 말까 망설이다 이벤트홀 쪽으로 자연스레 눈이 갔다. 옷걸이에 정갈하게 진열되어 있는 옷보다는 훨씬 저렴했다. 이것저것 살펴보기 시작했다. 내가 옷을 고르는 조건으로는 일단 가격이 비싸지 않아야했고 질도 좋고 디자인도 세련되어 보여야 했다. 한참동안 옷을 들었다 놨다 하다 결국 매대에 수북이 쌓여있는 옷 중에  마음에 드는 원피스를 발견했다. 엄마가 입으면 잘 어울릴 것 같았다. 하지만 순간 난 당황했다. 엄마의 사이즈를 알 수가 없었다. 고개를 갸우뚱갸우뚱하다가 내 몸에 대어보며 대충 짐작해서 구입했다. 돈 벌면서 내 옷은 수도 없이 사봤지만, 정작 엄마의 옷을 사본 적이 없었기에 엄마의 정확한 치수를 알지 못했다. 그 사실이 왠지 서글펐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래도 엄마가 옷을 받고 기뻐하실 모습을 상상하며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며칠 후 엄마를 뵈러 대전으로 내려갔다. 조심스럽게 포장된 옷을 꺼내어 엄마께 드렸다. 

     

  “비싸 보이는데 뭣 하러 사 왔어. 직장 다니는 너나 사 입지, 집에만 있는 사람이 옷이 뭐가 필요해.” 


  핀잔 섞인 말이었지만, 내심 기뻐하는 것이 느껴졌다. 엄마는 어느새 옷을 갈아입고 나오셨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소매가 길고 허리도 컸다. 그런데도 엄마는    

  

“야야, 재보지도 않았는데 딱 맞다. 완전 맞춤이야!”     


  라며 환히 웃으셨다. 아마도 둘째딸이 처음으로 사드린 옷이라 그런지 맞춘 것처럼 느껴지셨나 보다. 나는 어쩐지 코끝이 찡해졌다. 다음 날, 일요일 아침. 엄마는 교회에 가기 위해 준비를 하셨다. 새 옷을 입고 거울 앞에서 이리저리 비춰보시던 엄마는 어린아이처럼 들뜬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이 옷 입고 가서 조집사한테 자랑해야지. 우리 둘째가 사줬다고.”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엄마도 여자였구나.’ 



  나는 엄마를 항상 ‘엄마’로만 여겼다. 우리의 끼니를 챙겨주고, 빨래를 해주고, 가족을 위해 늘 뒤로 물러나 있던 존재. 엄마는 내게 오직 ‘엄마’였지, 한 여자로서의 엄마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거울 앞에서 새 옷을 입고 기뻐하는 엄마의 모습은 여느 여성들과 다르지 않았다. 좋은 옷을 입으면 설레고, 거울을 보며 예쁘다고 느끼고,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싶어 하는 그런 여자였던 것이다.       


  엄마도 한때는 꿈 많고 설렘 많던 소녀였을 것이다. 사랑받고 싶고, 예뻐 보이고 싶고, 좋은 옷을 입고 싶은 평범한 여자였을 것이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며, 엄마는 ‘여자’의 삶을 내려놓았다. 좋은 것은 가족에게 먼저 양보하고, 자신의 욕망은 차츰 잊어가며, 아내이자 엄마로서의 삶을 살아왔다. 그리고 나는 그 희생을 당연한 듯 너무나 익숙하게 받아들이며 살아왔다.   

   

  그날 이후, 나는 엄마를 대하는 마음이 조금씩 달라졌다. 단순히 ‘엄마’가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엄마를 바라보게 되었다. 엄마에게도 좋아하는 색깔이 있고, 원하는 스타일이 있고, 가끔은 멋을 내고 싶은 순간이 있을 텐데, 그동안 나는 그것을 알아주지 못했다. 엄마에게는 ‘엄마의 역할’보다 먼저 ‘여자의 삶’이 있었음을, 그리고 그것이 오랜 세월 속에서 점점 희미해졌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엄마가 나를 위해 기꺼이 모든 것을 내려놓았듯이, 나도 엄마를 위해 작은 것이라도 채워주고 싶었다. 그게 옷 한 벌이든, 함께하는 시간이든, 엄마가 다시 여자로서의 순간을 느낄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러나 이제 엄마는 내 곁에 계시지 않는다. 엄마에게 다시 예쁜 옷을 사드릴 수도 좋아하는 색을 물어볼 수도 없다. 너무 늦게 깨달아버렸다. 살아 계실 때, 좀 더 자주 엄마를 바라보고, 좀 더 많이 표현할 걸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하지만 그때의 엄마는 분명 행복하셨을 거라고, 내 선물이 엄마를 잠시나마 소녀로 돌아가게 했을 거라고 믿어본다.  

    

  이제는 엄마가 그곳에서도 여전히 예쁜 옷을 입고 환하게 웃고 계시길 바라며, 남은 날들 동안 나는 엄마의 모습을 더 깊이 가슴에 새기고 살아가려 한다. 내 기억 속의 엄마는 여전히 따뜻한 미소를 띠고 손끝으로 옷깃을 매만지며 나를 바라보신다. 그 모습 그대로, 내 가슴속에서 영원히 살아 숨 쉬기를. 바라며 이제야 엄마에게 고백한다.


"엄마, 시어머니께는 100만원짜리 코트를 사드렸는데 엄마한테는 걸려있는 멋있는 옷이 아니라 눕혀있는 옷중에서 사준 것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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