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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물치와 맞짱 뜨던 날, 사랑을 깨닫다

가물치 대소동

by 우먼파워 Mar 1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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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남 3녀를 낳고 키운 엄마는 자식들이 출산을 할 때마다 산후조리까지 담당해야 했다. 자식들은 퇴원 후 당연한 듯 남편까지 데리고 엄마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한 달을 꼬박 엄마의 시중을 받으며 몸조리를 했다. 외풍이 심한 집인지라, 겨울에 출산한 딸과 손주를 위해 사방 벽을 비닐로 덮어 냉기를 차단시켰고, 연탄불이 꺼질새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종종걸음을 쳤고 그래도 부족하면 안방까지 내어주었다.      


나도 한 생명을 품고 열 달을 견뎠다. 그리고 마침내, 자그마한 아이가 내 품에 안겼다. 기쁨도 잠시,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출산의 고통은 끝났지만, 몸을 추스르고 아기를 돌보는 일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때, 엄마는 마치 숙명처럼 나를 받아주셨다. 피곤하다는 기색도 없이, 힘들다는 말 한마디 없이, 나와 우리 가족을 품어주셨다. "산모는 잘 먹어야 한다"며 하루 세 끼도 모자라 새참까지 챙기셨다. 하루 다섯 번, 식탁 위에는 정성스러운 음식이 차려졌다.


엄마는 미역을 한 아름 사다 놓으셨다. 평생 먹어도 모자라지 않을 만큼. 그리고 매 끼니마다 미역국을 끓이셨다. 소고기를 넣어 진한 국물을 낸 미역국, 다시마와 멸치로 우려낸 담백한 미역국, 가끔은 굴과 황태를 넣어 색다르게 변주한 미역국. 한 달 내내 질리지 않도록, 엄마의 마음을 담아 한 그릇 한 그릇 건네셨다.

그 국을 마실 때마다 몸이 풀리고, 엄마의 사랑이 온몸으로 스며들었다. 그 따뜻한 국물 덕분에 나는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리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늘 잊지 않고 챙긴 것이 있었으니 바로 가물치즙이었다. 젖이 잘 나오고 회복이 빠르려면 가물치 만한 것이 없다며, 출산할 때마다 잊지 않고 준비했다. 단백질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피를 맑게 하고 몸의 부기를 빼는 데도 특효라고 했다. 힘드니까 하지 말라고 만류해도 엄마는 이미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었다. 문제는 가물치를 고아내는 과정이었다. 살아서 팔딱거리는 가물치를 손질하는 일부터가 전쟁이었다. 길고 미끄러운 몸, 온몸을 비틀며 튀어 오르는 힘까지, 그 사투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아찔했다.     


가물치즙을 만드는 날이면 식구들 모두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 아버지는 아침부터 분주하셨다. 가물치를 사 오는 일은 아버지의 몫이었다. 커다란 양은 들통을 들고 버스를 타고 가는 아버지의 뒷모습, 그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가장 크고 실한 가물치를 사려면 이른 아침부터 발품을 팔아야 한다며 이른 새벽부터 서둘러 나가셨다. 한참 후 들어올리기도 힘들만큼 묵직한 가물치를 들고 아버지가 돌아오시면 엄마의 손길이 바빠졌다. 빨간 고무 다라를 꺼내 수돗물을 틀고 가물치를 씻어냈다. 그리고 연탄불 위에 커다란 솥을 올리고 들기름 한 병을 쏟아붓고는 뜨겁게 달궜다. 가물치를 솥에 넣는 일이 문제였다. 크기도 크거니와 힘이 좋아 꿈틀거리는 몸통에 제대로 손을 대기가 어려웠다. 전쟁을 치르듯 가물치를 잡고 힘겨루기를 해야 했다.      


 가물치가 솥에 들어가자마자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 재빠르게 뚜껑을 덮었다. 하지만 전쟁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뜨거운 솥에서 가물치는 죽을 힘을 다해 몸부림쳤다. 아버지와 사위가 양쪽에서 붙잡고, 엄마는 언제라도 솥뚜껑을 덮을 태세였다. 긴장감이 감도는 순간, 가물치는 사력을 다해 튀어 오르려 했고, 세 사람의 손발이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대형 참사가 벌어질 수도 있었다.

“하나, 둘, 셋!”

마침내 가물치를 솥에 밀어 넣고, 엄마가 번개처럼 솥뚜껑을 덮었다. 모두가 한숨 돌릴 틈도 없이 전쟁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끓어오른 기름 속에서 가물치는 사력을 다해 몸부림쳤다. 솥뚜껑이 들썩거리더니, “텅!” 하는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엄마, 아버지, 사위, 세 사람이 힘을 합쳐 뚜껑을 눌렀지만, 가물치는 결코 항복하지 않았다.      

그때였다. “퍽” 솥뚜껑이 번쩍 들리며 기름에 번들거리는 가물치가 거대한 몸을 비틀며 솥 밖으로 튀어나왔다. 

“악”

엄마가 소리를 지르며 뒷걸음쳤다. 바닥에 떨어진 가물치는 살기 위해 마지막 발악을 했다. 미끌거리는 몸을 이리저리 뒤틀며 바닥을 휩쓸고 다녔다. 잡으려고 하면 미끄러져 놓치고, 또 움켜쥐려하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갔다. 부엌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사람도 가물치도 모두 지쳐갈 즈음 아버지가 잽싸게 몸을 날려 가물치를 붙잡았다. 엄마와 사위까지 세 사람이 필사의 협공 끝에 마침내 가물치는 다시 솥안으로 투입되었다. 이번엔 실수 없이 단단히 솥뚜껑을 눌렀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진동 속에서, 가물치의 마지막 저항이 느껴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거칠게 몸부림을 치던 가물치는 점점 힘을 잃었고, 움직임이 둔해졌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세 사람은 땀범벅이 된 채 바닥에 주저앉았다. 숨을 고르며 서로를 바라보았고, 그제야 전쟁이 끝났다는 걸 실감했다. 더 이상 솥뚜껑이 달그락 거리지 않았다. 엄마는 미리 준비해 둔 한약재와 생강을 듬뿍 넣고는 물을 부었다. 가물치의 마지막 정수까지 우려내듯, 오랜시간 정성껏 고아냈다. 혹시라도 끓어 넘칠까 봐 부엌을 벗어나지 못하고 종종걸음을 치며 불 조절을 했다. 솥을 들여다보는 엄마의 얼굴에는 안도감과 기쁨이 서려 있었다. 며추 시간 후 뼈가 흐물흐물해질 즈음이면 엄마는 국 대접 가득 떠서 내게 건넸다. 

“뜨거울 때 얼른 마셔.”

나는 대접을 받아 들었지만, 차마 입을 대지 못했다. 비릿한 향이 코끝을 스쳤고, 도저히 삼킬 자신이 없었다. 

“엄마, 못 먹겠어...”

얼굴을 찡그리며 고개를 저었다. 이 한 그릇을 위해 엄마와 아버지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였는지,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는지 너무나 잘 알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끝을 찌르는 비린내 앞에서는는 선뜻 입을 대기가 어려웠다. 머뭇거리는 나를 보던 엄마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건 다그침이라기보다는, 애써 서운함을 감춘 눈길이었다. 나는 마지못해 대접을 들어 한 모금 삼켰다. 쓰고 비릿한 맛이 혀끝을 감돌았다. 그러나 그 속에는 분명 엄마의 정성과 아버지의 수고로움, 그리고 부모의 사랑이 깊이 배어 있었다.      


우리는 때때로 사랑을 너무 늦게 깨닫는다. 너무 익숙해서, 너무 당연해서, 그 안에 담긴 정성과 희생을 헤아리지 못한다. 하지만 부모님의 사랑은 변함없이 스며 있다. 정성스레 고아낸 뜨거운 즙 한 모금에도, 고된 손길에 맺힌 땀방울에도, 그리고 아무 말 없이 건네던 따뜻한 눈길 속에도.  

   

이제는 그 따뜻한 마음을 가슴에 새기며 살아야겠다. 더 이상 비린내가 아닌, 진한 사랑의 향기로 오래도록 간직하고 기억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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