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와 토론이나 논쟁을 하다가도, 상대가 과학적이라는 말을 들이밀면, 일단 주춤하고 다시 한번 더 생각하게 된다. 상대가 자신의 말이, 과학의 힘을 빌려 참말이라고 하므로 논박을 위해서는 자신도 따져보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일상생활에서 과학이라는 말은 참말 또는 진리로 통한다.
현생 인류의 역사를 신석기시대부터 따지면 1만 2천 년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과학이라는 단어가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1687년에는 사용되지 않았다는 것을 추론하면 300년 남짓이다. 현대 과학을 시작한 사람으로 추앙받는 뉴턴은 1687년 불멸의 저작인 “프린키피아”(Principia: The mathematical principles of natural philosophy)에서 과학이란 말 대신에 자연철학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뉴턴은 이 책에서 운동이 변하는 원인을 ‘힘’으로 밝히고, 나아가 태양과 지구 사이에는 힘이 작용하여서 지구가 태양 주위를 공전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런데 이런 종류의 주장은 말로 하는 경우에는 아무나 할 수 있다. “만물은 끈으로 되어 있다.”(끈 이론) 거나 “우주는 여러 개가 존재한다.”(다중우주론)는 주장도 할 수 있고, 사람들은 그러느니 한다. 왜냐하면 자연 현상에서 검증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류 최초의 철학자라는 타이틀을 가진 그리스의 탈레스도 “만물의 근원은 물이다.”라고 말해도 그 당시 지성이 있는 사람은 그러느니 했을 것이다. ‘참말이다.’라고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그래서 탈레스는 과학자가 아니고 자연철학자인 것이다. 그런데 뉴턴은 자신의 주장을 말로 하지 않고 수식으로 표현했다. 힘과 운동의 관계는 운동의 법칙 F=ma로, 태양과 지구 사이에 작용하는 힘은 만유인력법칙 F=GMm/r^2으로 표현한 것이다. 라틴어나 영어로 하지 않고 수식으로 표현하고 라틴어로는 수식에 대한 설명만 한 것이다.
말과 수식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수식으로 표현하면 인과(因果) 관계를 담을 수 있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말은 귀납적으로 참말 즉 진리이다. 그렇지만 그것으로 끝이다. 하지만 ‘힘이 작용하면’(원인, P이면, 가정명제) ‘운동 상태가 변한다.’(결과, Q이다, 결론명제)라는 인과 관계를 담아 수식으로 표현된 법칙은 수학의 연역적 체계에 근거하여 새로운 진리를 얻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미래의 운동 상태(행성의 위치와 속도, 가속도 등)를 정확하게 알 수 있다. 과학을 통해 인간이 신의 영역에 도달한 것이다. 여기에 ‘과학’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힘이 있다.
수학은 연역 논리 체계 위에 지어진 100% 추상학문이다. 공리 위에서 용어에 대한 정의(definition)를 내리고, 규칙에 따르는 논리적 추론을 하여 다른 내용을 얻는다. ‘P이면 Q이다.’라는 인과문(조건문)을 끊임없이 연결하여 각각의 단계마다 ‘새로운 지식’을 얻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지식은 참지식이 된다. 참말인 것이다. 예를 들어서 사칙연산에 의해 거스름돈을 계산할 수 있고, 도형의 성질을 이용하여 내 땅의 범위를 정하기도 하고, 미분을 이용하여 물통에 물이 차오르는 정도를 계산하고 언제쯤 가득 찰지 알 수 있다. 모두 그 결과에 대해 토를 달지 않는다. 왜냐하면 수학이 증명한 참말이니까. 이처럼 과학은 수학으로 표현된 인과의 자연법칙에 근거하여 맞는 답만 만들어냄으로써 ‘맞다’는 권위를 획득한다. 과학과 인과는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그러므로 인과가 빠진 과학은 가짜라고 할 수 있다. 과학자의 연구 활동은 자연 현상에서 인과를 찾는 과정이다.
과학의 인과는 그 힘에 상응하는 엄격한 규칙이 있다. ‘P이면 Q이다.’라고 할 때, 가정명제 P는 참이어야 한다. ‘힘을 주면, 운동상태가 변한다.’는 법칙에서 힘을 주는 것이 성립하여야 하는 것이다. 발로 돌을 차야 가정이 참말이 되는데, 먼 산을 보면서 힘을 줬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수학의 명제에서는 가정이 거짓이면(먼 산을 보면) 결론은 어떠한 경우든 참이 되는데, 참이라고 해서 큰 진리가 있는 것이 아니고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가정의 참이 보장되지 않으면 어떤 주장을 하든 허망하다는 것이다.
자연현상에서 인과를 찾는 것이 쉽지 않은데, 과학에서는 그 방법까지도 정하고 있다. ‘과학적 탐구방법’이다. 일어난 자연현상에는 여러 가지 변인(factor)이 작용하는데, 오직 한 가지 변인만 다르게 한 실험군과 대조군을 두고, 두 군에서 결과에 차이가 있으면 그 차이는 다르게 둔 한 가지 변인에 의한 것으로 추론하는 것이다. 이 변인이 원인이 되어 결과의 차이를 만든 것이다. 학교에선 파스퇴르의 생명기원 실험으로 이 방법을 가르치고 있다.(그림 참조)
파스퇴르의 과학적 탐구 실험
그런데 물리적으로 실험이 어려운 경우도 많다. 그런 경우엔 두 가지 대안이 있는데, 머릿속에서 추상적으로 하는 ‘사고실험’(thought experiment)을 할 수 있다.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대부분의 이론 물리학자가 하는 연구방법이다. 또 인과 관계 대신에 차선으로 상관관계를 찾는 것으로 대신할 수 있다. 오늘날 의학자가 생명 현상 특히 인간 생명 현상을 연구하는 방법이다. ‘운동하면 오래 살고 흡연하면 빨리 죽는다.’ 같은 명제는 상관관계를 나타낸다고 하겠다. 상관관계는 참말이라고 단언하지는 못하지만, 믿고 따를 가치가 있는 진리라고 하겠다.
오늘날 과학기술에 근거하여 눈부신 문명을 이룬 현대 사회에서 과학은 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고속열차나 크루즈 선박이나 비행기를 안심하고 타고 다니고, 식품을 냉장고에 보관하고 안심한다. 또 과학을 근거로 사실에 기반하여 어려운 의사결정을 객관적으로 내리기도 하고,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거나 상대방의 의견을 반박하기도 한다. 여기에 과학과 과학적 사고의 필요성이 있다.
자신의 하루를 되돌아보면 많은 의사 결정에 인식하든 인식하지 못하든 과학이 관여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올바른 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과학적 사고가 필요하다. 과학적 사고는 수학을 통해 기를 수 있는데, 수포자가 많은 현실에서 논리학을 가르치는 것도 좋은 대안이 된다고 하겠다. 물론 올바른 정보가 전제되어야 하고, 올바른 정보를 전달하는 언론의 기능과 언론인의 사명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