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일의 고단함을 달래기 위해 아버지는 거의 매일 술을 마셨다. 그런 날이면 지한에게 어김없이 쏟아내던 아버지의 레퍼토리.
지한아, 잘 봐라. 아버지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지금까지도 이 회사에서 안 잘리고 버티는지를.
요즘 것 들은 정신머리가 글러 먹었어. 땀 흘리는 일은 기를 쓰고 안 하려 하고 돈은 많이 벌고 싶고. 니도 그러면 안 된다. 그건 요행을 바라는 거와 똑같다.사람이 땀 흘려 일해야 그게 진정한 돈인기라.남자는 언제든 집 밖에서 일을 해야 집에서도 큰소리쳐가매 살 수 있는 거를 명심해라.
네 엄마도 지금껏 내가 돈을 벌어다주니까 아무 말 못 하고 사는 거라. 내가 누꼬? 여자가 어델! 절대 못 기어오르지.
술을 마시면 더 보란 듯이 거칠어지는 아버지의 말과 행동.지한을 향한 못마땅함을 드러내는 건 매번 강도가 더해져도 상관없었다. 참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도저히 그냥 넘길 수 없었던 건, 평생 곁에서 아버지 비위를 맞추느라 당신이라는 존재는 없는 듯 살아온 그의 어머니를 향한 아버지의 강압적인 비난하는 말투와 그녀의 감정을 짓누르는무시하는 태도에 그가 첫 반항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가 고등학교 3학년.
아버지, 엄마한테 그만 좀 하세요!
엄마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윽박지르고 더 크게 소리치고 거칠게 밀치지 마시라고요!
아버지는 당신 말만 맞다고 하면서 엄마 얘기는 들으려고 하지도 안잖아요. 말끝마다 여자가 여자가 왜, 여자는 말하면 안 돼요? 여자는 남자한테 무조건 복종하고 네네거리고 살아요? 요즘 그런 여자 없어요. 아버지는 다 받아주는 어머니를 만나서 여자는 다 그런 줄 알고 사시죠? 엄마가 얘기를 할 줄 몰라서가 아니라 집이 시끄러워지는 게 싫어서 참으시는 거라고요! 그리고 아까도 아버지를 무시하면서 말했다고 그걸로 엄마한테 계속 트집 잡고 화풀이하시는데 기분이 안 좋으면 다른 걸로 푸세요. 나가서 술을 더 드시던지요!
야! 인마가 뭘 안다고 그렇게 말하노!
네 엄마가 며칠 전부터나를 말로 살살 긁어 대는데
그걸 아무렇지 않게 보고만 있을 수 있나.
세게 얘기해야 네 엄마가 듣는다. 남자가 그렇다 하면 그런 줄 알아야지 어디서 이래저래 토를 다노. 네 엄마가 갈수록 말이 길어진다. 그기 나를 열받게 한다 말이다.
아버지, 엄마도 많이 참고 살았어요.
더 이상 아버지말에만 예예하고 살기에는 엄마도 나이가 들어가신다고요. 아버지도 이제는 엄마를 그만 다그치세요. 잡들이 그만하라고요!
그 순간, 지한의 뺨을 세게 내려치는 아버지.
이 자식이 돈 벌어서 다 키워놨더니 고작 하는 말이
엄마 잡들이를 그만해? 내가 그렇게 한 증거 있나
있나! 네 엄마가 그렇게 일러바치더나!
(지한의 엄마를 향해) 네가 말해봐라. 내가 그랬나!
아버지에게 맞은 지한의 붉어진 두 뺨을 어머니의 작은 두 손으로 감싸며 흐르는 눈물을 삼킨다.
순간 아들의 팔을 잡아끌며 조용히 현관문을 열고 나가는 어머니.
지한아, 네 아버지는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다.
나는 지금까지 맞춰가며 왔으니까 앞으로도 버티면서 살 수 있다.
대신 네가 아버지한테 등을 돌리거나 아버지가 너를 내놓은 자식 하듯이 하는 거를 나는 못 본다.
아버지가 영 싫으면 집에서 부딪치고 싸우지 말고 안 보는 데로 나가라. 대학교를가게 되면 여기서 멀리 떨어진 데로 알아봐라. 취업도 거 가서 하고. 네가 여기 있으면 매일 폭풍 치듯 내가 마음 졸이면서 살아야 안 되겠나. 부탁한다, 지한아.
고3 때 진학상담선생님은 지한에게 간호학과를 추천해 주신다. 면허를 따면 취업하기도 좋고 남자간호사도 선호하는 병원들이 많고 말없이 조용한 내성적인 그의 성격 또한 오히려 튀지 않아 남자간호사로 적응하기 좋을 것 같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는 고민 없이 간호학과로 진로를 정하고 엄마가 당부한 고향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대학교가 있는 지역으로의 진학을 결심했다. 그곳은 인천으로 결정 되었고 드디어 아버지로 부터의 합법적인 독립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