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은 나란히 걸음 속도를 맞춰천천히 포차로 들어간다. 개강과 함께 대학가 근처는 어디든 학생 들로 붐빈다. 새 학기, 새로움, 기대감으로 가득 찬 봄을 닮은 싱그러움이 갓 입학한 신입생들 얼굴에 초록초록하게 묻어난다. 포차도 학생들로 붐비지만 간호학과 아지트인 만큼 평소 친분 있던 사장이 예약해 둔 자리로 친절하게 안내를 해준다. 테이블로 이동한 선, 후배들이섞여서 자리에 앉자 지유의 말이이어진다.
여기는 우리 과모임 자주 하는 곳이라서 언제든 오면 사장님이 아니 이모님이라고 하는 거 좋아하시니까
술과 주문한 요리가 준비되어 순서대로 테이블에 차려진다. 이어서 선배들이 각자 소개를 간단히 하고 다같이 환영의 건배와 함께 첫 잔을 비운다. 학교내 시설위치와 학교 근처 가성비 식당, 술집, pc방, 편의점등 생활에 꼭 필요한 가이드를 주는 선배. 간호학과에 잘 적응하는 방법, 학과공부 관련한 팁, 교수님들에 대한 정보를 미리 공유해 주는 선배등 각자의 관심사로 후배들에 전달하느라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 대화가 이어진다.
술을 마시자 한두 명씩 자리에서 일어나 바깥으로 나갔다 들어오기를 반복하는 중이다.
그녀의 대각선 끝 자리에 앉아있는 지한. 같은자리에서 이동없이 혼자 술을 마시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잔을 들고 지한의 옆으로 조용히 다가가 앉은 지유가 말을 건넨다.
넌 담배 안 피워?
다른 애들 나갈 때 같이 안 나가던데.
네. 고등학교 때 담배 피우는 게 그냥 멋있어 보여서 친구들이랑 잠깐 흉내 내보다가 저는 끊었어요.
거울로 담배 피우는 저를 본 적 있는데 별로여서요.
멋있지 않아서다행였네.
난 담배냄새 못 견디겠거든. 맘에 든다, 너?
네?
놀라긴. 담배 안 펴서 좋다고. 술은 뭐 마셔?
청하 잔을 들어 보이는 지한의 손 가까이 지유의 손에도 같은 청하 잔이 보인다.
청하 마셔요.
어? 그건 내 건데, 예쁜 누나들만 마신다는.
남자가 청하 마시는 건 첨 봤어.
거의 초록병 소주 마시던데. 청하는 어떻게 알고?
아버지가 소주를 좋아해서 술 마시고 들어오는 날은 그 냄새가 싫었어요. 고기, 담배, 술냄새가 섞인 역함이라고 할까요? 고3 때까지 그 냄새를 맡았더니 자연스럽게 멀리하게 된 것 같아요. 그러다 또 불편한점이 생기더라구요. 친구들 만나서 술 마실 때 가만히 있으면 매번 왜 안 마시냐 못 마시냐 물어보니까 대답하기 귀찮아서 같이 마실 수 있는 주종을 찾다 보니 비슷한 초록병에 청하가 있는걸 알게되었어요. 이게 딱이더라고요.
냄새도 달달, 순하고 마시기 편해서 그때부터였어요. 선배는요?
난 1학년 MT 가서 술이란 걸 첨마셨어. 선배, 동기들 다 종이컵에 소주를 꽉 채우고 쉽게 마시길래 뭐 별거 없나 보다 하고 따라서 마셨다가 위경련 나서 응급실 갔었잖아. 그날 이후로 소주는 냄새도 못 맡아. 그리고 친구들이랑 술 마실 땐 맥주만 마셨거든. 그런데 등산동아리 가입하고 첫 등산 때 북한산정상 백운대까지 가는 코스였어. 얼마나 힘들던지. 하산하다가 선배들이 맛있는 파전집이 있다고 해서 따라간 거지? 거기서 인생술을 만난 거야. 소주못마셔요했더니 그럼 이거 마셔보라면서 한 선배가 청하를 권해주더라고. 그날 청하의 첫맛이 아직도 기억나. 꼬릿 한 냄새 때문에 안 마시는 사람들이 많다는데 나한텐 그 냄새가 달달한 향이었어. 첫맛은 달고 삼키니까 약간의 알코올이 올라오는 맛? 거부감 없이 그날 두 병을 마시고도 말짱했잖아. 나 스스로 놀란 거지.
그 후로는 무조건 지유는 청하, 청하는 지유꺼. 이렇게 공식이 생겨버렸어.
잘 어울려요, 지유선배랑 청하. 예쁜 누나들만 청하를 마신다는 말처럼요.
농담이나 빈말 안 할 것 같은 네가 그런 말하니까 진정성 있게 느껴진다? 기분 좋게 말이야.
두 사람의 청하잔이 살짝 맞닿은 첫 잔을 시작으로 어린 시절, 성장기, 학교생활, 친구관계등 여러 이야기로 어느덧 청하세병이 비워져 있다. 모두 일어나 포차를 나갈 때까지 둘만의 대화는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이어졌다.
포차를 나와서 집 가는 방향이 같은 선후배들이 몇몇 흩어지고 술자리가 아쉬워 호프집으로 이동하는 몇몇이 보인다.
어떤 무리에도 어울리거나 움직이지 않고 함께 서 있던 두 사람.
선배는 어디로 가요?
난 지하철 타야 돼서 길 건너가야 해. 넌?
저도 하숙집으로 가려고요. 같이 걸어요.
넌 길 안 건너고 아래쪽으로 걸어가면 되잖아.
아까는 선배가 같이 걸어주었으니까 이번엔 제가 옆에서 발맞춰 주려고요.
오랜만에 낯선 술자리였지만 선배와 많은 대화를 할 수 있어서 너무 좋은 시간이었어요.
너 누나 설레게 하는 멘트도 할 줄 아니? 내가 오해하면 어쩌려고.
아까 선배가 제 옆에서 같이 걸어주었을 때 그런 느낌이 처음이어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는데 지금 선배가 말한 그 설렘이었던 것 같아요.
지한아, 난 되게 솔직한 거 좋아해서 숨기거나 감추는 거 잘 못해. 지금 이감성이 오늘밤을 지나내일 아침에도 같은 감정과 생각이면 널 되게 좋아할 것 같아,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