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KBS로 돌아갈래
집 근처 레스토랑에서 일하기까지
약 두 달간의 호주 구직기를 기록하고자 한다.
하루하루가 아쉬운 워킹 홀리데이 비자 소유자인지라 학교 개강 날에 거의 딱 맞춰서 호주에 들어와서 첫 한 달간은 정신이 없었다.
바쁜 와중에 틈틈이 TFN도 신청하고 RSA도 취득하고 이력서도 써두었지만
정작 레쥬메 드롭은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 미루느라 두 달 동안 팔자 좋게 놀았다.
사실 바쁘고 어쩌고는 다 핑계고 사람이 움직이지 않는 이유는 딱 하나. 그만큼 간절하지 않아서다.
실업 급여를 받고 있는 상태기도 했었고 초기 정착금이 여유 있는 상태라..
그리고 백수 생활 도대체 어떻게 질리는 건가요? 절대 안 질려. 너무 짜릿해.
첫 번 째는 팬케이크 가게 : 어차피 똑같은 시급 받을 거 적게 일할래
이력서를 쓴 다음 날 마침 비행기에서 사귀었던 호주 친구 S가 안부를 물어왔고
일을 구하고 있으면 지인 가게에 물어본다더니 바로 트라이얼을 잡아주었다.
몸으로 해본 일이라고는 스무 살 때 했던 세븐일레븐 편의점 알바가 전부이긴 하지만
홀이야 뭐 음식 나오면 그냥 갖다 주면 되고 다 먹으면 테이블 치우면 되는 거 아니겠나.
주말 늦은 저녁 트라이얼이었는데 핫플답게 너무너무 바빴다.
그날만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잠실 롯데월드몰 노티드 처음 오픈 했을 때 이 정도였으려나?
주말 저녁 9시에 팬케이크를 먹으러 오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니.. 정말 세상은 요지경이다.
“호지차에도 카페인이 들어있나요?”
“먹다 남은 거 테이크아웃 할 수 있나요?”
기습 질문이 올 때마다 가끔 당황하긴 했지만 크게 얼타지 않고 잘 마무리했다.
두 번째는 집 근처의 인도 커리집 : 아시아는 한중일 빼고 나한테 말 걸지 말아 주세요
구직 광고 사이트에서 내 정보를 봤다면서 키친 핸드 자리 면접을 보러 오란다.
같은 시간 면접을 보러 온 다른 여자 아이와 같이 앉아 이야기를 하는데
사장이 시급을 17달러 준다는 거 아닌가? 내가 70달러를 17달러로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아직 경력이 없으니까 17달러로 시작하고 숙달되면 달마다 1달러씩 올려준단다.
호주 최저 시급이 지금 24달러인데 뭐라고요? 기적의 인도식 계산법.
학교에서 호주에서 일하다가 부당 대우하는 사업장이 있으면
학교랑 Fair work에 알리라고 교육받았는데 신고해도 될까요?
애초에 호주 사람 말고 아시안 여자애들 둘 부른 것부터가 아주.. Fuck you!
가게를 나서면서 P와 연락처를 교환하고 근처 카페에 가서 시원한 아이스 롱블랙을 들이키며 왜 사람들이 인도인을 싫어하는지 알 거 같다고 욕을 한 바가지 하고 훌훌 털어냈다.
세 번 째는 샌드위치 가게 : 얼레벌레 첫 플랫화이트 만들기 성공
샌드위치 메이커 포지션 인터뷰가 잡혔다.
그런데 여기 위치가.. 한국으로 치자면 강남 테헤란로 오피스 빌딩 1층에 있는 카페
아침이랑 점심때 장난 아니게 바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첫 트라이얼의 악몽이 떠올랐다.
“너 커피 만들 줄 아니?”
“네”
“어떤 커피 만들 수 있어?”
“라떼랑 플랫 화이트요.“
”롱맥은 알아?“
”아니요, 모르는데요.“
”그럼 지금 플랫 화이트 만들어 봐.“
(지금 적고 보니 이 날 왜 이렇게 당당했는지 모르겠다. 한국인한테 아메리카노가 생명수이듯이 호주에서는 플랫 화이트가 생명수라서 만들 줄 안다고 했다. 뻔뻔하기 그지없군.)
아니 샌드위치 메이커라면서요. 그래도 어떡해. 하라면 해야지 뭐.
사실 호주하면 워낙 커피가 유명해서 카페에서 일하게 될 줄 알고
한국에서 SCA도 따고 라떼 아트도 배우고 오긴 했다.
그런데 플랫 화이트는 만들어 본 적도 없고 지금 그라인더 만진 지가 어언..
어디서 플랫 화이트는 라떼 보다 거품이 적다고 주워들은 게 떠올라서
라떼 아트 연습하던 기억을 더듬고 더듬어 라떼 보다 적게 스팀을 쳐서 사장한테 서빙을 했다.
두근두근.
”온도가 조금 덜 뜨거운 거 말고는 잘했네. 그런데 여기 피크타임에는 정말 바빠.
그래서 트레이닝 기간에 손님들한테 압도되는 애들이 많아. 너 정말 할 수 있겠니?“
“네(니요)”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