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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오모스 Nov 07. 2024

ep 1-3. 기억을 위한 글쓰기.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어느 날, 예기치 않은 순간에 

어떤 생각이나 느낌이 불현듯 떠올랐다. 

순간적인 깨달음이거나,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좋은 아이디어가 

갑작스레 다가오는 그 순간의 감각은 

분명 일상적인 것과 다른 것이었다.


마치, 입안에서 박하사탕이 화~하게 퍼지듯, 

흐릿하거나 막연했던 감각들이  

머릿속에서 깔끔하게 정돈되어

맑고 투명하게 선명해지는 느낌이었다. 


주변의 소음이 고요하게 잦아들고

모든 순간이 멈춘 시간의 평온함 속에서

선명한 감각만이 느릿하게 흐르는 몰입의 순간.


그 안에서 나는 따뜻한 물줄기처럼

새로운 혈액이 흘러들어오는 감각을 느꼈다. 

온몸의 세포가 새로 태어나듯 깨어나며 

머릿속이 빠른 속도로 돌아가고, 

연달아 이어지는 생각의 확장은 

나의 세상이 확장되는 것과 같아서

온몸에 전율이 일며 소름이 돋았다.




어느 순간에는 선명한 이미지나 단어들이 떠올랐다. 마치 막혀 있던 퍼즐이 맞춰지는 듯한 통쾌함이 찾아왔다. “아, 바로 이거야!”라는 확신이 솟구치며 마음 깊은 곳에서 설레고 벅차오르는 느낌이 밀려들었다. 이러한 감각이 사람들이 말하는 ‘영감’이라는 것을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감각을 '영감'이라는 단어 외에 더 잘 표현할 수 있을 만한 단어를 알지 못했기에 그 이후로 이 단어를 자주 사용하게 되었다. 


한 번 느낀 '영감의 감각'은 그 이후 더욱 자주 찾아왔다. 모든 것이 연결된 듯 막힘없이 투명한 감각과 그 순간 불현듯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좋았다. 영감을 통해 얻는 아이디어들이 가치 있는 것임을 깨닫고 난 후 나는 그것들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영감은 독특한 특성이 몇 가지 있었다. 영감은 꿈과 같아서 정신이 든 후에는 금세  휘발되어 버렸다. 놓쳐버린 꿈처럼 다시 되새기려 해도 기억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리는 영감이 휘발되지 않게 붙잡아 두기 위해 그 순간을 기록하는 일에 점점 더 몰입하게 되었다. 또 영감이 잘 떠오른 상황이 있었다. 영감은 생각이 몽롱할 때, 아침에 막 깨어났을 때, 저녁에 잠들기 전, 산책 중이거나 샤워를 할 때 등 몸이 움직이고 있지만 뇌가 쉬고 있을 때 가장 잘 떠올랐다. 그 시간 때를 잘 활용하면 상당히 자주 영감을 만날 수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의도적으로 영감을 낚시하듯 끌어올릴 수 있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영감이 떠오르는 순간을 넘어서서 영감을 끌어내기 위해 일부러 집중하고 몰입하는 습관이 생겼다. 길을 걸을 때, 지하철을 타고 있을 때, 자연스레 글을 쓰기 시작했고, 글을 쓰다 보면 잠깐 떠올랐던 영감이 저절로 구체화되는 것이 느껴졌다. 내 안에 무언가 무겁게 자리 잡고 있던 것들이 갑자기 인지할 수 있는 영역으로 올라온 듯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영감은 인지 영역으로 올라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무의식의 영역으로 다가가는 초기 단계라고도 볼 수 있었다. 무의식은 우리가 평소 인지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감정과 생각들로 가득 찬 깊은 영역이다. 적당한 몰입 상태를 이용해서 나의 무의식에 접근해 나의 감정과 성향을 탐구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를 통해 전에는 깨닫지 못했던 것들을 '알아가는 감각'에 익숙해졌다.  무의식과 연결된 경험을 기록하는 일이 습관이 되었다.


영감은 때로 복잡한 감정 속에서 길을 찾게 해주는 빛과 같다. "괴롭다", "힘들다", "고통스럽다" 같은 무거운 감정들을 마주할 때, 그 감정의 뜻을 깊이 들여다보는 순간 절반은 이미 해결된 것처럼 가벼워질 때가 있다. 내가 느끼는 불쾌감이 단순히 외부 환경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피어오르는 ‘감정의 불쾌감’이라는 본질에서 기인함을 알게 되면서, 나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무의식을 더 깊이 탐구할수록, 

나의 성격이 굳어지게 된 근원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무의식 깊은 곳에서 나는 무인도에 

홀로 살아남아야 하는 나를 발견했는데, 

그 속에서 나는 “자신을 알리는 것”이 

생존과 직결된다고 느끼고 있었다. 


이 깨달음으로 나는 왜 그토록 사람들 앞에서 

나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이후로 이 성향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지만 

어느 정도 조율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생경하고도 신기한 경험이었다. 


이 모든 경험들은 글감이 되어, 

마치 나를 더 깊이 들여다보고 

기록하라는 신호처럼 다가왔다.


영감을 통해 얻는 지식과 지혜는 

나에게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경험으로 남는다. 

그로 인해 이제 나는 알지 못했던 것들을 알게 되는 

소중한 순간들을 잊지 않기 위해 기록으로 남긴다. 


떠오르는 영감이 휘발되지 않도록 

붙잡아두기 위해 썼던 썼던 것이 글쓰기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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