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이렇게 운이 나쁠 수 있을까?
이리 가도 글쓰기, 저리 가도 글쓰기.
마치 피할 수 없는 운명에 갇힌 것처럼,
글쓰기라는 거대한 세상에 갇혀버린 것만 같다.
멋진 커리어우먼이 되고 싶었다.
처음부터 내 삶에 큰 꿈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사회 초년생 시절, 나는 그저 사무직 직장인이 되어 돈을 벌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스러웠다. 출판사 제작부에 입사해 처음으로 내 힘으로 돈을 벌기 시작했고, 내 인생을 내가 책임질 수 있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하지만, 두 해가 지나자 나는 더 이상 만족할 수 없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내 마음의 공허와 무료함은 더욱 커져갔다.
무엇인가 더 의미 있는 일을 찾고 싶었다. 드라마 속에서 멋진 커리어우먼이 열정을 불사르며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뜨거움이, 그 열정이 나에게도 필요했다. 뜨거운 열정을 쫓아다녔지만, 내가 도달해 있는 곳은 제조회사의 ‘품질관리원’이었다. 비록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 일을 나름대로 좋아했다. 문제를 하나 꼽자면 시간이 갈수록 나에게 주어진 일들이 점점 더 많아졌고, 그중 나를 가장 괴롭힌 것은 끝없이 이어지는 보고서였다. 매일 이어지는 보고서가 내 일상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보고서와 출장 보고서를 작성해야 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했고, 나는 그때마다 시간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2시간이면 충분할 거야, "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며 보고서 작성을 시작했지만, 2시간이 지나도 완성되지 않았다. 첫 문장에서부터 나는 멈췄다. 머릿속에서는 분명하게 정리된 생각들이 키보드 앞에 앉으면 흐릿해지기만 했다. 문장을 겨우 썼다가 다시 지우고, 몇 번이고 처음부터 다시 쓰기를 반복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글을 잘 쓰지 못한다는 사실이 점점 더 뚜렷하게 다가왔고, 그 좌절감은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
보고서를 미룰수록 부담감은 더 커지는 가운데 나는 결심했다. "오늘은 반드시 보고서를 끝내자." 그래서 2시간 일찍 출근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또다시 실패했다. 퇴근 시간을 두 시간 더 미루면서 시도했지만, 결국 보고서는 완성되지 않았고, 나는 더 큰 절망감에 빠졌다. 그때 깨달았다. 나는 시간을 충분히 투자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글쓰기를 제대로 할 줄 몰랐던 것이다. 보고서는 단순히 내가 알고 있는 정보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설득해야 하는 글이었다. 그러나 나는 상대방이 무엇을 알고 있는지, 그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그렇게 글쓰기는 나에게 커다란 고통이 되었다.
‘보고서 없는 직업은 없을까?’
'나는 문득 전직을 꿈꾸기 시작했다.
지겨운 보고서에서 벗어난 상담사로의 전직을 꿈꿨다.
'상담사라면 말로써 먹고살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모든 문제를 ‘말’을 이용해서 해결하는 직업이라면 보고서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직업상담사 자격증을 따고, 마침내 상담사가 되었다. 처음엔 상담사라는 타이틀이 주는 만족감이 컸다. 사람들과의 대화는 즐거웠고, 그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 나에게는 무척 의미 있었다.
하지만, 상담사에게도 피할 수 없는 것이 글쓰기였다. 상담이 끝나면 ‘상담일지’라는 또 다른 보고서가 기다리고 있었다. 상담의 배경, 내용, 견해, 조치사항까지... 상담일지를 작성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의 자존감은 낮아졌다. 나에게 주어진 다른 업무들이 자꾸만 뒤로 미뤄졌다. 사실, 업무를 미루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주어진 업무 시간은 정해져 있었고, 시간 안에 업무를 마치는 것이 버거워지자 나는 점점 무능해지는 ‘나 자신’을 보아야만 했다.
‘내가 상담 이론이 부족해서 상담일지가 이렇게 힘든 걸까?’
국가 자격증을 더 따면서 부족함을 메우려고 했지만, 더 많은 자격증을 취득해도 별 다른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결국, 무거운 마음으로 퇴사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번아웃, 상담사 직업으로 인해 나의 심신은 무척 지쳐 있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원하는 대로 일은 잘 풀리지 않았고 그때마다 스트레스가 쌓여 갔다.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로 인해 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너무 많이 지쳐 있었다.
지금까지 경험했던 고통스러운 시간을 내가 다시 견딜 수 있을까? 상담을 할 때 필요한 집중력을 내가 다시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나에게는 더 이상 무언가를 해낼 만한 열정도 에너지도 남아있지 않았다. 다시 직장을 다니는 상상만 해도 구토가 나올 것 같았다. 그 이후로 나는 다시 직장을 다닐 엄두도 내지 못했다.
‘사람들과 연결이 필요 없는 자유로운 직업은 없을까?’
그렇게 또 전직을 꿈꾸기 시작했다.
자유로운 유튜버가 되고 싶었다.
기존에 운영하던 동물 유튜브 채널이 있었다. 구독자는 700명, 내가 생각해도 콘텐츠가 재미도 없고 성장 가능성도 보이지 않았다. 새로운 콘텐츠가 필요했다. 나는 고민에 빠졌다.
‘나는 어떤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내가 평생 지속할 수 있는 콘텐츠는 뭘까?’
고심 끝에 발견한 것이 ‘심리 문제 해결’이었다. 그러나 심리 콘텐츠는 수요 시장의 크기가 너무 작다는 점과 지속성이 짧다는 문제점이었다. 대부분 사람들의 무의식에는 ‘나는 문제없어’라는 생각이 지배적으로 깔려있다. 간혹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면 그때 잠깐, 관심을 쏟았다가 곧 문제가 대충 해결되면 관심은 금세 사그라들었다.
그렇다면, 수요시장이 크고, 지속성이 긴 콘텐츠가 필요했다. 더불어 내가 즐기고 관심 있는 분야로써 내가 평생 동안 생산해 낼 수 있는 콘텐츠를 찾아야 했다. 이 모든 조건에 부합하는 것이 ‘자기 계발’이었다.
‘그래, 자기 계발 콘텐츠를 만들어 보자.’
우선, 필요한 장비인 카메라와 마이크를 구매한 후 본격적으로 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그런데… 카메라 앞에만 서면 말이 어눌해지고 바보가 되는 것 같았다. 말을 잘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말을 잘하는 유튜버의 노하우를 찾아봤다. 유명 유튜버들은 촬영을 도와주는 프롬프터라는 장치를 활용하고 있었다.
프롬프터란, 연극이나 공연을 할 때 관객이 볼 수 없는 곳에서 배우에게 대사나 동작 따위를 일러주는 일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유튜버는 동영상 촬영 시 대본(원고, 스크립트)을 띄워주는 장치인 프롬프터 DIY를 이용해서 대본을 막힘없이 읽어 낸다. 마치 연기를 하듯이, 방금 떠올린 일화를 얘기하듯이, 표정과 제스처를 바꿔가며 대본을 읽는 것이었다.
‘아하~ 이런 방법이 있었구나.’
몰랐던 것을 아는 것과 새로운 세상을 알아가는 것은 정말 기쁜 일이다. 하지만, 기쁨의 달콤함도 잠시, 곧이어 나는 좌절을 경험했다. 자유로운 유튜버가 되고 싶은데 여기서도 나에게 요구되는 것은 ‘글쓰기’다. 서론. 본론. 결론에 해당하는 대본을 써야 한다는 말이다. 나는 깊은 상념에 빠져들었다.
하아… 또 글쓰기 인가.
아아… 더 이상 피할 수 없구나.
아아… 더 이상 도망칠 곳도 없구나.
나는 글쓰기가 필요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구나.
나는 ‘글쓰기 세상’으로 계속 나아가고 있구나.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글쓰기 세상으로 다가가고 있었구나.
이 고통의 원인이 나였구나...
이 괴로움의 원인이 나였구나...
내가 글을 쓰며 살아가는 것을 원하고 있구나.
그래서 나는 늘… 글쓰기를 만나게 되는구나.
그래서 나는 늘… 글쓰기를 만날 수밖에 없는 굴레에 갇혀버렸구나.
그렇다면, 나는 이제는 정면으로 부딪혀야겠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이 거대한 벽을 깨 부셔야겠다.
나는 너를 부숴버리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야겠다.
나는 너를 없애버리고 더 자유로운 세상으로 나아가야겠다.
나의 글쓰기는
이렇게 운이 좋지 않아서
전투를 하듯 시작되었다.
그러니, 글쓰기는 나에게있어 '전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