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시골 소녀의 서울 상경기

작지만 마음은 큰 아이

by 마음혁명가

1. "밟혀 죽을까 봐 걱정했던" 막내딸의 탄생


나는 경상북도 시골 마을, 1남 4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오빠 뒤로 줄줄이 딸만 넷을 낳으신 어머니는 나를 임신했을 때

‘또 딸이면 어쩌나’ 걱정이 태산 같으셨다고 한다.

그런 어머니의 배를 보며 할머니께서는 “이번엔 배 모양을 보니 아들이다, 낳아라”라며 힘을 실어주셨다.

어머니는 네 번의 출산을 홀로 겪으셨지만, 나를 낳을 때만큼은 작은 할머니께서 처음으로 허리를 잡아주며 따뜻하게 도와주셨다고 회상하시곤 한다. 하지만 막상 내가 태어나자 집안 분위기는 묘해졌다.


“응애, 응애!”

“아이고, 이게 뭐고. 고추나 달고 나오지….”


너무 작게 태어난 내 모습에 작은 할머니도 놀라 소리치셨고,

또 손녀를 보게 된 할아버지는 며칠 동안 속상해하셨다.

19살에 시집와 군대에 간 아버지를 대신해 혹독한 농사일을 감당하며 나를 품으셨으니,

내가 작게 태어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 모른다.

작은 할머니는 “이게 사람이 되면 밟혀 죽는다” 하실 정도로 내가 작아서,

아랫목에 눕혀두고 매시간 살았는지 죽었는지 살피셨다고 한다.


하지만 그 작았던 아이는 부모님 곁을 가장 오랫동안 지키는 효녀가 되었다.

명절이면 어머니와 음식을 만들고, 언니들이 타지로 떠난 빈자리에서

벼농사, 고추 농사, 소풀 베기까지 도맡으며 든든한 막내 역할을 해냈다.

그런 나를 보며 어머니는 늘 말씀하셨다.


“우리 막내 안 낳았으면 우얄 뻔했노.”




2. "맹 우유 주세요" – 낯선 도시에서의 첫걸음


“야야, 너도 남들처럼 돈도 벌고 공부도 할 수 있는 고등학교에 가거라.”


할머니는 형편상 손녀들이 대학 대신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바로 취직하기를 원하셨다.

시골에서 소를 팔아야 겨우 학비를 마련할 수 있었던 시절이라,

중학교 3학년이면 진학 고민에 빠지는 친구들이 많았다. 하지만 언니들은 내게 단호했다.


“아이다, 너는 시내 인문계 고등학교 가서 제대로 공부해라.”


언니들의 응원 덕분에 나는 시내 고등학교에 입학했고, 셋째 언니와 자취 생활을 시작했다.

비포장도로 뿐인 시골에서 온 내게 시내의 문화는 충격이었다.

시골 구판장 대신 ‘슈퍼마켓’이라는 곳이 있는 것부터가 신기했다.

한 번은 슈퍼에 가서 당당하게 외쳤다.


“아지매요, ‘맹 우유’ 주세요!”

“그게 뭐고?”

“맹 우유요.”

“뭐라카노?”

“맹 우유요!”


시골에서는 산에서 내려오는 수돗물을 ‘맹물’이라 불렀기에,

아무것도 첨가되지 않은 흰 우유는 당연히 ‘맹 우유’인 줄 알았다.

결국 내가 직접 냉장고에서 우유를 찾아 보여주자 주인아주머니는 허탈하게 웃으셨다.


“아, 흰 우유!”




3. 봉천동 언덕길, 20리터 기름통과의 사투


고등학교 졸업 후, 나는 셋째 언니가 있는 서울로 향했다. 고추장 한 통과 옷가지를 가득 채운

빨간 배낭을 메고 5시간을 달려 도착한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

TV 속 화려한 서울을 기대했지만, 언니가 나를 데려간 곳은 봉천동 언덕길의 작은 방이었다.


“여기가 서울 집이라고? 옛날 자취방보다 더 못하네.”


재래식 화장실에 연탄보일러를 쓰는 낡은 집이었다.

겨울이면 언니와 나는 연탄불을 꺼뜨리지 않으려 애를 썼다.

한 번은 콩자반을 만들겠다고 연탄불 위에 냄비를 올렸다가 불 조절을 못 해 냄비까지 홀랑 태워 먹기도 했다.

나중에 연탄보일러를 기름보일러로 바꿨지만, 고생은 끝나지 않았다.

봉천동 가파른 언덕길 위로 기름 배달이 오지 않아, 내가 직접 20리터 기름통 두 개를 수레에 싣고 날라야

했다. ‘털털 털털’ 요란한 수레 소리에 동네 개들이 짖어대면 창피해서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무거운 기름통을 보일러 주유구 높이 들어 올릴 때마다 나는 언니에게 투정을 부렸다.


“언니, 제발 남자친구 좀 빨리 사귀어라! 기름 좀 넣어달라고 하게!”


언니는 그 소리에 한참을 웃었지만, 결국 그 고된 ‘기름 배달’은

언니가 형부를 만나 결혼하고 나서야 멈출 수 있었다.




4. 외로운 서울살이, 꿈꾸는 로맨스


언니의 결혼 후, 형부의 배려로 신혼집에 함께 살게 되었다.

하지만 알콩달콩한 신혼부부 사이에 끼어 있는 것이 미안해 나는 늘 밖으로 돌았다.

만날 친구도 없으면서 서점에 들러 시간을 때우다 늦게 귀가하곤 했다.

자상한 형부와 행복해 보이는 언니를 보며, 나도 나만의 짝을 간절히 기다리기 시작했다.

‘나도 남자친구가 생기면 두 손 꼭 잡고 걷고, 영화도 보고, 맛있는 것도 서로 먹여줄 거야.

자기 전엔 꼭 통화하고….’

남들에겐 평범한 일상이 내게는 간절한 꿈이었다.

아직 나타나지 않은 그 누군가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던 시절.

1993년부터 시작된 나의 외로운 서울 생활이 얼른 따뜻한 사랑으로 채워지기를,

나는 매일 밤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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