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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예민하긴 09화

《예민하긴》9화 젓가락이 말보다 빠를 때

by 괜찮은사람

회식 자리에선
누가 누구 옆에 앉느냐가
식사보다 중요할 때가 있다.

서진은 팀장도, 여차장도 보이지 않는
구석 끝자리에 앉았다.


'오늘은 조용히 먹을 수 있겠군.'


하지만, 그는 조용히 나타났다.
공차장.
은근히 진행 중인 탈모,
기분 좋은 척 강박이 서린 말투.
그리고 눈치 없는 젓가락질.


“차장님, 혹시 산파 불러서 출산하신 거 아니죠~?”
“명주실 손목에 감고 그런 가정 출산 하신 거 아니에요~?”


그 말은
같은 팀 여차장을 향했다.

농담이라고 하기엔 길고,
실례라고 하기엔 꾸준했다.


팀장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팀장님은… 종이에 문서 쓰시던 시절 아니세요?
그땐 진짜 사람 냄새 났죠~”


팀장은
까이는 줄도 모르고 웃으며 말했다.


“맞아요~ 그땐 팩스도 줄 서서 보냈다니까~
요즘 애들은 진짜 편하게 일해~”


사람들은 조용히

표정을 껐다.


서진은
기껏 피해 앉은 자리 맞은편에
공차장이 앉은 걸 보고
숟가락도 들지 못한 채
잠깐 멍해졌다.


메인 음식은 아직 나오지도 않았는데
공차장의 젓가락은 이미
공용 반찬을 휘적이고 있었다.


“이거 뭐야? 미역줄기?
아~ 난 이런 거 안 먹는데~”


그 말과 함께
미역줄기 하나가 테이블에 툭 떨어졌다.


그는 그걸 줍지도 않고
자기 소매로 쓱 문질렀다.
그리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계속 떠들었다.


문질렀다는 건
흘렸다는 걸 알았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말을 멈추지 않는 게
공차장의 방식이다.


메인 요리가 등장했다.
해물파전 한 접시.


공차장은
자기 앞 음식에 손을 대기 전에

두툼한 파전부터 집었다.


“이건 진짜 잘 구웠다~
겉은 바삭, 속은 촉촉~
막걸리만 있으면 완벽!”


서진은
이미 젓가락이 누군가 거쳐 간
미끈한 파전을 바라보다가
젓가락을 내려놨다.


회식이 끝나고
공차장이 먼저 일어났다.
그의 소매 끝엔
미역줄기 하나가 애처롭게 달랑달랑 매달려 있었다.


서진은
그저 조용히,
그 흔들림을 눈으로 따라갔다.


젓가락이
말보다 빠른 사람은
식사 예절보다
권력을 더 믿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예민하긴 #공차장 #회식의민낯 #젓가락권력 #말보다빠른


✍️ 작가의 말
누군가는
젓가락으로 음식을 고르고,
누군가는
젓가락으로 사람을 지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대체로 입이 먼저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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