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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문R Jul 23. 2024

쓰기 위해 읽는다

글쓰기를 위해 수집가가 되자

매일 글 쓰는 것에 집중했더니 책 읽을 틈이 없다.


아니, 이건 핑계다. 틈 시간을 활용하면 언제든지 책을 읽을 수 있다. 이것이 핑계임을 알고 있어도 책을 읽지 않는다.


그래서 생각해 낸 궁여지책.

책을 읽고 문장을 수집해서 그것으로 브런치 글을 써야지.

처음 시작하는 브런치 글의 방향도 잡고, 평소 즐기는 문장수집을 활용하니 익숙하고, 책을 읽는 한 글감은 끊이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이 있었다. 한마디로 글감을 찾기 위해 책을 읽어보자는 것이었다.




나의 책 읽기 방식은 관심 있는 분야의 책만  파는 것이다.  


사회과학, 심리학, 육아서, 젠더, 강의법, 자기 계발서 등이 그랬고 퀼트, 뜨개질 등 취미에 대한 책도 그렇다. 30대 중반 무렵부터 장착된 방법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미니멀리즘에 관심이 생겼다. 그러면 일단 도서관으로 간다. 도서관에 있는 미니멀리즘에 대한 모든 책을 열람한다. 그중 제일 괜찮아 보이는 것을 대출한다. 읽는다. 읽다가 좋으면 그 책을 구입한다. 또 책 속에 추천된 연관 서적을 읽는다. 이런 식으로 얕은 관심일 때는 20~30권, 깊은 관심일 때는 수 백 권도 읽었다.


문제는 관심 없는 분야의 책은 안보는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못 본다. 책이 읽히지 않는다.

거의 읽지 않는 대표적인 분야가 에세이, 소설이다. 청소년인 아이는 소설, 시, 사회과학, 심리학, 철학, 이론서, 심지어 라이트 노벨까지 모든 분야의 책을 읽는다. 그 덕에 집에 소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손이 가지 않는다. 다른 책을 읽고 있으니 딱히 읽을 필요를 못 느끼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글을 쓰기 시작하니 에세이와 소설을 읽어야 할 필요가 생겼다. 책을 책 자체로 즐기지 못하고 자료 수집하듯 책을 읽는 나의 태도에 죄책감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나의 이야기를 글로 쓰려면 에세이를 알아야 했다. 그래서 도서관에 갔다. 에세이 서가 앞을 서성거렸다. 에세이가 엄청나게 많았다. 뭐부터 봐야 할지도 모르겠어서 이 책 저 책 꺼내 뒤적뒤적해 봤다. 최근 베스트셀러가 도서관에 들어오려면 시간이 걸리니, 제목을 들어본 적 있는 유명한 에세이들 중심으로 들여다봤다. 딱히 흥미를 끄는 에세이가 없다. 고심 끝에 에세이 2권을 빌렸다 대여할 수 있는 나머지 5권은 글쓰기 책에 사용되었다. 지금 나의 관심분야가 글쓰기니 어쩔 수 없었다. 대신 글쓰기와 에세이가 혼합된 듯한 책들을 빌리려 애써봤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 본다.


그리고 그중에 한 권을 읽었다. 에세이와 글쓰기가 섞인 책을.




책 제목은 <내 하루가 글이 된다면>(고정욱).



아이들의 필독서인 <까칠한 재석이> 시리즈와 <가방 들어주는 아이>, <안내견 탄실이> 등을 쓴 고정욱 작가님의 책이다. 책을 300여 권이나 내셨다는 것은 이번에 알았다.



첫 번째 챕터의 제목부터 눈에 확 들어왔다.


읽기보다 쓰기가 먼저다.


읽어야 쓸 수 있다고 알고 있었는데, 인풋이 있어야 아웃풋이 있다고 알고 있었는데, 의외의 제목이었다.  


작가는 몬테소리 교육에 대한 강의에서 유아의 인지발달 능력 발달 단계가 들기, 말하기, 쓰기, 읽기 순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듣고 난 후 아래와 같이 썼다.  


그동안의 통념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쓰기는 읽기 다음에 일어나는 발달 능력인 줄 알았다. 남의 것을 많이 읽고 육화 시키면 자동적으로 내가 쓰고 싶은 단계에 들어선다고 알고 있었는데 이 고정관념을 몬테소리 박사가 깬 것이 아닌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 말이 맞는 듯했다. 뭔가를 써놔야 읽을 것 아닌가. 읽기부터 배운 다음에 쓰는 것은 인류의 발전과정과도 맞지 않다.
(중략)

수많은 글쓰기 강화책에서도 우선 많이 읽어야 쓸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다독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말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 다독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글 쓰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일상생활하기도 바쁜데 언제 책을 읽고 어디서 글을 쓴단 말인가. 무턱대고 많이 읽어야 한다는 말에 글쓰기 예비 지망생들은 기가 죽어 지레 포기하고 만다.

(중략)
내가 작가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많은 분야의 책을 읽을 일이 있었을까? 아마도 내가 좋아하는 소설만 읽었을 거다. 이 말은 쓰는 습관을 가질 때 비로소 읽을 필요도 생긴다는 의미다.

- p12~13, 내 하루가 글이 된다면, 고정욱


작가님의 동료 시인 K 이야기도 나온다. 시인 K는 집안이 너무 어려워 책 한 권 제대로 사보지 못했지만 무엇이든 썼기 때문에 시인이 됐다. "떠오르는 대로 쓰다 보니 어느 날 시 비슷한 것이 되었단다. (p14)" 그러니 "군소리 말고 끄적끄적 쓰는 습관부터 들"이라고 조언한다. (p14)



브라보!

글을 쓰기 위해 자료 수집하듯 책을 읽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나의 죄책감이 광명을 찾았다.  


나도 책을 읽는 사람은 아니지만 편독이 심해서 글쓰기를 망설였었다. 편독이 심하니 글을 잘 못쓸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도 했었다. 막상 글을 쓰다 보니 이 책 저 책 읽어야 할 필요가 생겼고, 안 읽던 에세이를 읽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

"책 안 읽은 사람들이 수두룩한 세상에서, 읽고 쓰고 있다는 게 중요한 거지!"하고 뻔뻔해져도 되겠다.



글을 쓰기 위해 책 자료를 수집하고 계속 읽자!


생각해 보면 내가 문장수집을 즐기게 된 것도 글을 쓴 이후부터였다. 글쓰기에 도움이 될까, 글감이 될까, 영감을 줄까 생각하면서 SNS에서 보이는 문장들, 책의 구절들필사하기 시작했었다. 글을 쓰지 않았으면 '음~ 좋은데'하고 넘어갔을 문장들이었다.


보다 적극적으로 문장을 수집하기 위해 '구글 킵'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손으로 쓰는 것을 좋아해서 디지털 다이어리도 안 쓰지만, 활용하기 위해 문장을 수집하는 것이니 검색할 수 있어야 했다. 여러 가지 앱들을 찾아봤지만 가장 단순하고 무료이며 연동도 되어 선택했다. 독서노트와 문장 수집용으로만 사용한다. 스마트 폰의 음성 입력으로 글씨가 써지는 기능을 활용했더니 독서노트 작성 시간이 확 줄었다.  


기왕 자료로 읽는 책, 제대로 활용해서 글을 써보자.

계속 쓰다 보면 뭐라도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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