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저 원고를 쓰고 있다.
무모한 도전이었다. 그래도 3차 퇴고 중이니 꾸역꾸역 일정에 맞춰 따라가고는 있는 중이다. 블로그, 브런치에만 글을 쓰고 전자책을 냈으면 몰랐을 종이책 만들기의 여러 과정을 경험하면서 많은 것을 배워가고 있다.
그중 하나가 '퇴고'다. 아니 한 부분이 아니라 아주 큰 부분이다. 퇴고가 이렇게 힘든 과정인지 몰랐다. 모든 초고는 쓰레기라고 하고, 토 나올 때까지 퇴고를 한다고 하는 얘기는 들었다. 하지만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는 모르는 고통이다.
내가 공저를 쓰는지 아는 오프라인 상의 사람은 두 아이뿐이다. 둘째는 관심 없고, 글쓰기를 곧잘 하는 큰 아이는 관심이 많다.
초고를 쓸 때 아이가 보여달라고 해서 보여준 적이 있다. 어떠냐고 물어보니 잘 썼단다. 엄마가 이런 생각을 하는지 몰랐단다.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감 뿜뿜 했다.
그런데 퇴고를 하게 되니 달랐다. 글을 다시 보니 고쳐야 할 것 투성이었다. 문제는 무엇을 어떻게 고쳐야 할지 자체를 모르겠다는 것. 그래도 고치면 글이 좋아진다는 선배들의 말에 기대어 1차 퇴고를 했다. 공저 쓰기를 운영하는 선생님의 개별 피드백을 받고 다시 2차 퇴고에 시작했다. 피드백받은 것을 바탕으로 글을 고쳐보려 했는데 역시 어렵다. 피드백받을 때는 알겠는데 수정하려니 또 모르겠다. 결국 한 문장 한 문장 쓰는 것은 내 몫이다. 억지로 퇴고를 하면서 맞춤법 교정을 했다. 맞춤법 교정은 한글 프로그램을 활용하면 된다.
그러다 문득, 맞춤법 교정을 큰 아이에게 맡겨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의 카톡문자 오타에 대해, 인터넷 속 오타들에 대해 자주 얘기 했던 것이 떠올랐고, 나의 공저 쓰기가 글쓰기를 좋아하는 아이에게 자극이 되었으면 했다.
내 원고를 한 부 출력해서 주면서 교정을 부탁하니 아이는 잠깐 망설였다. "수고비를 주겠다"고하니 냉큼 하겠다고 나섰다. 역시 이 나이의 아이들에게는 돈이 최고다.
큰 아이에게 교정 아르바이트를 부탁했더니
큰 아이가 교정을 다 봤다면서 표시가 된 원고를 가지고 왔다. 그러면서 "엄마랑 얘기하면서 수정할 부분도 있다"라고 했다. 돌려준 원고를 보니 맞춤법 교정과 함께 V 표시가 된 부분이 있었다.
아이는 V 표시된 곳을 하나하나 짚으면서 '이렇게 바꾸면 엄마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하고, '이 부분은 결론으로 그냥 점프했다, 이야기를 쌓는 부분이 있어야 한다'고도했다. 아이가 해주는 말의 의미가 이해가 안 가는 것들도 있었다. 아이는 차근차근 설명을 해줬다. 설명을 듣고 보니 이해가 갔고, 다 맞는 얘기였다. 그렇긴 한데 슬슬 기분이 나빠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래도 티는 내지 않았다. 아이가 엄마 상처받지 않게 조곤조곤 얘기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져서.
그러다 막판에 핵심을 팍 찌른다.
아이 : "결론적으로 재미가 없어."
나 : (살짝 삐져서) "엄마가 원래 재미없는 사람이잖아, 그러니까 글이 재미없겠지."
삐진 건 삐진 거지만 한편으로는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 저책 가리지 않고 보고, 글쓰기를 좋아하는 아이지만, 글을 보는 눈은 어떻게 생기게 된 걸까? 많이 읽으면 생기는 걸까?
아이에게 물어보니 아이의 답은 쿨했다.
"자꾸 쓰면 알게 돼."
으. 역시 답은 계속 쓰는 것이었다.
어떻게 맞춤법을 잘 알게 됐어?
3차 퇴고를 하다가 비슷한 단어가 반복되는 것 같아서 또 큰 아이에게 도움을 청했다. 어떻게 바꾸면 흐름이 매끄러울지 물었다. 아이가 툭툭 비슷한 단어들을 추천해 준다. 단어 전체를 바꾸지 않고 2~3개만 바꾸면 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해준다. 그러면서 또 배웠다. 유의어를 사용해서 글을 쓴다는 게 이런 거구나.
인강을 듣다가 쉬러 나온 아이가 지나가듯 말했다.
"인강 선생님이 자꾸 '정답을 맞추다'라고 말해서 신경 쓰여. '정답을 맞히다'인데."
말나 온 김에 물어봤다.
"넌 어떻게 그렇게 맞춤법을 잘 알아?"
"엄마가 어렸을 때 사준 맞춤법 책 있잖아. 그거 봤어."
"엄마가 맞춤법 책을 사준 적 있었어?"
"그거 있잖아. 만화 나오고 맞춤법에 대한 설명도 있는 책."
아, 기억이 난다. 심심할 때 들춰보라고 사 준 책이었다. 맞춤법 책뿐만 아니라 사자성어 책, 속담 책 등도 사줬었다. 심심풀이로 읽었던 책들이 아이에게 뼈가 되고 살이 되었나 보다.
아이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나의 하루가 글이 된다면(고종석)> 속 이야기가 생각났다.
작가님 이웃에 모 출판사 주간님이 사는데 그 외동딸 역시 우리나라 정상급 출판사에 다니고 있단다. 딸을 어떻게 출판업계로 이끌었냐고 물어보고 대답하는 내용이 나온다.
"편집자의 기본은 교정 교열이죠. 맞춤법과 함께."
정석에 가까운 대답이었다.
"맞춤법을 어떻게 가르치셨어요?"
"사전 맨 뒤에 있는 맞춤법 규정을 공부해 보라고 건네줬죠."
- p147, 나의 하루가 글이 된다면, 고종석
그리고 아래와 같은 말을 덧붙여놓았다.
글 쓰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맞춤법 규정을 찬찬히 정독할 필요가 있다. 다 익힐 필요까지는 없지만 규정원리와 원칙쯤은 알아두어야 한다. 그리고 글을 쓰면서 헷갈리거나 잘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자주 들춰봐야 한다.
- p148, 나의 하루가 글이 된다면, 고종석
글을 쓰려면 맞춤법을 알아야 한다.
맞춤법이라는 것이 그렇다. 읽는 사람일 때는 잘 아는 것 같은데 쓰겠다고 생각하면 헷갈리는 것.
나의 경우는 블로그 글을 쓸 때 매번 '하고요'를 '하구요'라고 쓴다. '대요'와 '데요', '되'와 '돼' 등 써도 써도 헷갈린다. 가장 좋은 것은 원리를 아는 것일 텐데, 알아볼 시도도 하지 않았다.
그래아이가 했던 것처럼 맞춤법 책을 봐야겠다 싶어져서 고른 책이서 고른 책이 <요즘 10대를 위한 최소한의 맞춤법>. 청소년 용 책부터 시작하는 것이 편할 것 같았다.
마트에서 계산하느라 줄 서 있는 10분 동안 읽어 봤는데,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틈틈이 보면서 공부하면 되겠다.
맞춤법에 대해 고민하다 지하철을 타니 '우리말 나들이' 광고가 눈에 나오고 있었다. (오, 신기하다.)
아나운서들이 '첫 단추를 꿰다'는 틀린 말이고 '첫 단추를 끼우다'가 맞는 것이라고 설명해 준다. 몰랐던 것이라 기록해 두었다.
아이에게 얘기해 주니 "정말?" 하고는 당장 찾아본다.
아이처럼 궁금한 것이 있으면 당장 찾아보고, 나처럼 몰랐던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꾸준히 기록하다 보면 '최소한의 맞춤법'을 알게 되지 않을까.
P.S 아이에게는 아르바이트비로 3만 원을 주었다. 아이는 교정뿐만 아니라 교열과 윤문에 글쓰기 수업까지 해준 것이어서 두둑하게 줬다. 보통 교정교열 아르바이트비를 얼마나 받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