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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문R Jul 29. 2024

내 문장은 이상한 것 투성이였다.

퇴고하다보니 알게 되는 것들



내 문장의 어느 부분이 이상한지도 모르겠다.  


어제 밤 9시가 3차 퇴고 마감일이었다. 3차 퇴고를 위해 매일매일 3시간씩 원고를 보고 봤다.

10명의 작가들이 함께 쓰는 책이니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가도, 내 이름으로 나오는 첫 책이니만큼 대충대충 넘길 수는 없어 퇴고를 위한 매일의 루틴을 짰고, 특별한 일이 없으면 지켰다.   


퇴고를 마쳤으니 홀가분하냐.  

절대 그렇지 않다. 마음이 무겁다 못해 가라앉고 있다. 배워할 것, 공부해야할 것, 읽어야할 것들 투성이이기 때문이다.


처음 퇴고할 때는 내 글이 괜찮은지, 무엇을 고쳐야할지 감도 안 왔다.

하지만 1, 2주동안 집중적으로 원고를 수정해서 제출한 후 일주일 쉬었다가, 또다시 집중해서 원고를 수정하고 제출하는 반복퇴고의 과정을 3번 진행하고 나니, 뭔가 깨달아가기 시작한다.

글 잘 쓰는 방법을 깨달았다는 의미가 아니다.

내 문장의 어색한 곳이 어디인지도 모르겠다면, 참고서라도 보면서 글을 써야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뜻이다.


문득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김정선)>라는 책이 떠올랐다.

예전에 집에 있었는데, 중고로 처분해버린 책이다. 밀리의 서재를 뒤졌고, 읽어보았다.

아, 책도 맞춤법 책과 함께 구입해서 옆에 두고 계속 펼쳐봐야할 책이었다. 글을 쓰지 않았던 때는 그냥 읽고 말았던 책인데 말이다.

 



교정교열 20년 경력의 저자에게 글쓰기를 배워 보자.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의 부제는 '내가 쓴 글, 내가 다듬는 법'이다.

200년 넘게 단행본 교정교열일을 하고, 문학과 지성사, 생각의 나무, 한겨레출판, 현암사, 시사IN북에서 교정교열일을 하고 있는 저자 김정선의 책이라니, 그 경력을 믿고 따라배워 봄 직하다.  


저자는 머릿말에서 문장을 다듬을 때 염두에 두는 원칙은 '문장은 누가 쓰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순서에 따라 쓴다' 뿐이라고 했다. '나머지는 알지 못한다'고도 했다. (p6)

그렇다고 주먹구구식으로 일하는 건 아니라며 아래와 같이 덧붙였다.


내 마음에 들고 안 들고를 기준 삼아 남의 문장을 손보는 것도 물론 아니다.
문장 안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면서 문장을 어색하게 만드는 표현들은,
오답노트까지는 아니어도 주의해야할 표현 목록쯤으로 만들 수 있다.
(p6,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김정선)


그 표현 목록 첫번째가 <적.의를 보이는 것.들>이다.


버릇처럼 쓰는 '적', '의', '것', '들'에 대해 그 뜻과 의미에 대해, 쓸 필요가 없는데 쓰게 되는 예들에 대해 설명한다. 이것들을 다 빼라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습관적으로 반복해서 쓰는 데 있다.
어떤 표현은 한번 쓰면 그 편리함에 중독되어 자꾸 쓰게 된다.
'적.의를 보이는 것.들'이 대표적이다.
그러니 아예 쓰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편리함의 중독자인지 살피라는 것 뿐이다.
(p12,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김정선)


'사회 현상, 경제 문제, 정치 세력, 국제 관계, 혁명 사상, 자유주의 경향'에서 '적'을 빼보라는 것이다.   


사회현상, 경제 문제, 정치세력, 국제 관계, 혁명적 사상, 자유주의적 경향 훨씬 깔끔해보인다.
그렇다고 뜻이 달라진 것도 아니잖은가. 그러기는커녕 더 분명해졌다.
(p10,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김정선)


'들'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있다.


예전에 편집자들이 '-들'을 반복해서 쓴 원고를 '재봉틀 원고'라고 했다. '들들들들'만 눈에 띄닌 마치 재봉틀 로 바느질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해서였다.
그만큼 우리말 문장에도 복수를 나타내는 접미사 '-들'은 조금만 써도 문장을 어색하게 만든다.
(p16,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김정선)

 

'사과나무에 사과이 주렁주렁 열렸다.'라고 하기보다 '사과나무에 사과가 주렁주렁 열렸다'가 더 낫다는 것이다. 이미 '주렁주렁'이라는 부사를 통해 복수의 의미를 담아 놓았으니 말이다.



내 문장에 이렇게 '적', '의', '것', '들'이 많은 줄 몰랐다.  


나는 퇴고 중인 원고 중 첫번째 꼭지의 한글 파일을 열고 검색해봤다.

먼저 ''. 음, 그리 많지 않다.

다음으로 '-의'를 검색해봤다.

헉. 이렇게 많이 쓰는 줄 몰랐다. '-의'를 빼도 말이 되는 것도 많고, 다른 말로 표현하는 것이 더 좋은 문장이 되는 것이 많았다. '것', '들'마찬가지다.

제일 많이 들어있는 단어는 '것'이었다. 심지어 한 문장 안에 '것'이 2개 이상 들어 있는 글도 있었다.


원고에 무수히 담겨 있는 '적', '의', '것', '들'을 확인하니 마음이 급해졌다. 수정할 투성이겠구나.

책에 담긴 모든 내용을 확인할 여유는 없으니, 부분에 나오는 것들 중심으로 수정하기로 했다.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를 빠른 속도로 읽으면서 체크할 단어들을 옮겨 적었다.

그리고는 내 원고 속에서 단어들을 검색해 빨간 색 표시를 했다. 빨간 색 표시를 확인하면서 하나하나 꼼꼼히 수정해나갔다. 물론 이 책 속에 나오는 모든 내용을 적용해 수정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렇게 참고서를 옆에 두고 수정하다보니 조금은 알겠다. 무엇이 어색하고 이상한 문장인지.


이제 문장을 쓸 때, 내 문장이 이상한지 아닌지 의식하게 된다.


그래도 공저를 쓰지 않았다면, 문장이 이렇게 이상한지 몰랐을 것이다. (또 '것이다'를 썼네.)

역시, 무엇이든 직접 해봐야 안다.

머릿 속으로 해보는 것과 실제 해보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것이다'를 두 번이나 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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