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교
순이는 춘식이 손을 꼭 붙잡고 이모 집을 나왔다.
겨울바람은 매서웠고, 발밑은 더 차가웠다.
머무를 수 없었다.
아니, 쫓겨났다는 말이 더 맞았다.
그날, 이모는 시장에 간다며 외출했고 순이는 잠시 아이 옷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안방 문이 드르륵 열리더니 이모의 시아버지가 얼굴을 내밀었다.
“이 집에 더 있으면 안 된다… 미안하다만, 나가야겠소.”
낮게 깔린 목소리.... 그 속엔 오래 두려움과 묵은 불쾌함이 실려 있었다.
“아니, 저기.... 이모가....”
“며늘아기 생각해서 조용히 말하는 깁니다. 어서 떠나십시오”
말릴 틈도 없이 이모 시아버지는 문턱에 놓인 보퉁이를 밖으로 내던졌다.
“어서 나가시게.... 당장 안 나가면 내가 사람을 불러야 한다.
이 집에 더 있으면 안 된다… 미안하다만, 나가야겠소.”
춘식이는 놀라 눈물이 그렁그렁했고 순이는 아이를 품에 안은 채 밖으로 나왔다.
한겨울인데도, 땀은 등을 타고 흘렀다.
사람들 눈이 쏠렸다.
그때 들려오는 소리.
“순사가 여자아이랑 남자아이를 찾는다더라.”
“저 여자가 그 고개너머 칠석 엿공장 안사람인가 봐.”
"아니... 어쩌다.... 그 집이 그리 된 건가?"
"그러게 말이야. 사람일 모를 일이라니까..."
"이 사람들아~
시대가 상황을 만든 게지... 어디 그 사람들이 잘못을 저지를 사람들인가..."
"그렇다 해도 순사들이 눈이 씨뻘겋게 찾고 있어요."
"그러게 잡으면 죽일 태세던데...."
순간, 순이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빠르게 빠르게 그녀의 심장이 질주를 했다.
'어쩌지? 어떡해야 우리가 살지?
어떡해야 우리 춘식이를 살리지?'
순이는 자꾸만 자꾸만 생각에 잠겼다.
춘식이와 함께 다니면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둘 다 허름한 옷차림에 얼어버린 모습이었다.
순이는 이 도시가 자신들을 품어줄 수 없음을 알았다.
그래서 어디든 더 멀리 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고민에 고민을 하며 둘은 안동의 다리 쪽으로 향했다.
그 시절, 안동에 오직 하나뿐이던 긴 다리....
긴 겨울 그림자 아래 그들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안동 다리를 향해 발을 옮겼다.
"거기 잠깐~"
"예? 저희 말입니까?"
"아이 얼굴을 보여라."
"여자아입니다."
순사가 그들을 한 바퀴 돌아보고는 말했다.
"가라."
순이는 멀리 들리는 검문의 소리를 들으며 또다시 고민을 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어. 곧 걸리고 말 거야. 이대로 붙잡혀서는 안 돼. 게다가 다리 위에서는 더욱 눈에 잘 띌 거야. 결국 우리는 저들의 표적이 될 수밖에 없어.'
고민 끝에 순이는 입을 열었다.
“춘식아,”
순이는 무릎을 꿇고 아이의 양 어깨를 감싸며 속삭였다.
“춘식아~
우리는 지금부터 아주 어려운 놀이를 할 거야.
절대 들키거나 잡히면 안 되는 놀이야.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따로따로 길을 가야 해.
서로 모르는 사람인 걸로.....
엄마가 앞에 보이는 저 다리를.... 먼저 저 긴 다리를 건널게.
넌 뒤에서 엄마 따라오는 거야. 백을 세고 난 후에...
알았지? 엄마 믿고, 천천히. 멀리 서서 따라오는 거야.”
춘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입술이 파래졌고 손은 얼음처럼 식어 있었다.
하지만 엄마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따르겠다는 아이의 눈빛이 차가운 공기 속에서 반짝였다.
“춘식아, 엄마가 한 말 잊지 않았지?
엄마가 저 긴 다리를 먼저 건널게.
춘식이는 조금 있다가 엄마를 따라와야 해."
"저.... 엄마.. 나 무서워요. 혼자 가기 싫어 싫어요."
"춘식아 지금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꼭 그래야 해."
춘식이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순이도 눈이 촉촉이 젖어 왔다.
하지만 애써 마음을 가다듬으며 춘식에게 말했다.
"술래잡기"
"응?"
"술래잡기"
"술래잡기?"
"어 술래잡기"
"숨바꼭질 같은 거예요?"
"그래 숨바꼭질 같은 거야. 같이 있으면 잡혀서 우리가 안 잡히려면 따로 가야 해."
우리 춘식이는 씩씩하지?
잘할 수 있지?
우리 춘식이는 잘할 거야.
그렇지?"
춘식이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춘식아 여기서 백 세고 오너라.”
순이는 이렇게 말을 하고는 짐에서 낡은 상의 하나를 춘식이에게 더 입혀 놓고는 걱정이 되었는지 춘식에게 또다시 말했다.
"우리 춘식이 잘할 수 있지?"
춘식이는 벌벌 떨며 고개를 끄덕였다.
춘식이는 너무 추웠지만 엄마의 눈빛은 더더더 차가웠다.
그 속엔 공포, 절박함 그리고 아이를 지켜야 한다는 단단한 결심이 스며 있기 때문이었다.
순이는 치마를 꺼내어 머리에 뒤집어쓰고는 강물 위로 길게 놓인 다리를 건넜다.
매서운 바람이 눈물을 몰고 갔다.
뒤이어, 춘식이도 떨리는 발로 엄마의 발자국을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눈물로 얼룩진 얼굴, 작은 손은 두 주먹을 꼭 쥔 채였다.
순이의 품 안에서 바닥에 놓여진 춘식에게 그날의 추위는 두려울 만큼 매서웠다.
그날의 추위는 어린 춘식에게도 죽음의 두려움이 느껴질 만큼의 추위였다.
한복 치마를 뒤집어쓴 순이는 그렇게 얼어붙은 다리 위를 먼저 건넜는데 거기엔 발자국 하나 나 있지 않았다.
소리도 없고, 그림자도 없이 오직 희미한 바람만이 스쳤다.
순이는 있는 힘을 다해 다리를 디뎠다.
그녀는 이미 얼어버린 다리 위에 쌓인 눈에 발자국을 꾹꾹 남기며 그렇게 다리를 건넜다.
춘식이도 떨리는 다리로 안동교를 내디뎠다.
작은 발로 조심조심, 엄마가 남긴 흔적을 따라 걸었다.
바람이 코끝을 찔렀지만 눈물은 얼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흘렀다.
춘식이는 쓰개치마를 머리에 쓰고 앞서 가는 엄마가 야속하게까지 느껴졌다.
'엄마를 따라가야 해. 엄마를 잃어버리면 춘식이는 여기서 얼어 죽을지도 몰라. 엄마를 따라가야 해. 근데 엄마가 안 보여. 엄마 조금만 천천히 가.
춘식이가 따라갈 수 있게... 엄마 나 버리지 마. 엄마 나도 같이 가. 나도 좀 살려줘요. 엄마.'
어린 춘식은 수많은 생각들을 하며 어머니의 발자취를 따라가려 노력했다.
맹추위 속에 던져진 춘식이는 그렇게 죽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다해 엄마를 따라갔다.
하지만 가도 가도 너무나 긴 다리 위에 춘식이는 자꾸 넘어졌다.
아이는 눈물에 콧물이 뒤범벅이 되어 온몸은 꽁꽁 언 채 그렇게 힘겹게 발을 옮겨 엄마를 따라 가려 애썼다.
드디어 다리의 끝...
다리의 끝이 보였고 다리를 다 건넌 그 순간 춘식이는 결국 쓰러지고 말았다.
'엄마.. 엄마... 나 좀 데리러 와 주세요.'
나무 뒤에 몸을 숨기고 춘식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순이는 춘식이가 보이지 않자 몹시 초초했다.
그저 나무 뒤에 숨어서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는 순이는 조심스럽게 다리 쪽으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저 멀리 쓰러져 있는 춘식이를 발견했다. 아이를 발견한 순이는 사색이 되어 뛰어나와 아이를 품에 안고 다시 몸을 숨겼다.
순이의 품에 안긴 춘식이가 힘겹게 눈을 뜨며 말했다.
"엄마~ 나 혼자 다리 건너왔어요. 다시는 나 버리지 마요."
"미안해. 아가. 미안해."
잠시 눈을 떴던 춘식이가 다시 의식을 잃었다.
순이는 의식을 잃고 쓰러진 춘식이를 안은 채 아까 봐 두었던 초가집으로 갔다.
다행히도 다리 너머 마을 끝에 허름한 초가집 하나가 있었다.
순이는 그 집 앞에 도착하자마자 다급히 그 집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허리가 굽은 할머니가 나왔다.
“며칠만… 이 아이랑… 지낼 수 있을까요?”
숨을 몰아쉬며 순이가 말했다.
의식을 잃었던 춘식이가 엄마의 다급한 목소리에 다시 깨어났다가 촉촉이 젖은 순이의 눈을 보고는 다시 잠에 빠져 들었다.
"춘식아~ 아가~ 눈을 뜨렴. 잠들면 안 된다."
순이는 춘식이를 흔들어 깨웠다.
"엄마 자꾸 졸려요."
"춘식아 자면 안 돼. 지금은 자면 안 된다. 춘식아"
꽁꽁 언 모자를 본 할머니는 아무 말 없이 살짝 문을 열어 두고는 들어갔다.
하지만 사실.... 그걸로 충분했다.
그렇게 순이와 춘식이는 며칠간 초가집에 머물게 되었다.
그 집에는 또래 여자아이 민희가 있었다.
처음엔 민희가 초가집주인 할머니의 손녀인 줄 알았다.
하지만 곧 알게 되었다.
그 아이 역시 객이었음을....
그 아이는 몹시도 조용한 아이였다.
언제나 말이 없는 그녀였다.
도대체 이 어린아이는 무슨 일을 겪었기에 말문을 닫은 건지....
말이 많진 않은 민희였지만 민희와 춘식이는 금세 친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민희는 조용히 말했다.
“우리 엄마는… 저 다리를 건너다 사라졌어.”
그러고는 다시 입을 닫았다.
눈은 내리고 굴뚝에선 연기가 피어올랐다.
순이는 아이들 곁에서 숨을 죽인 채 밤을 지새웠다.
그러나 살아 있었다.
그게 전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