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새끼
소율의 명월관은 날로 번창했다.
그녀의 손끝에서 피어난 정갈한 음식과 온화한 손님맞이는 바다 내음이 스며든 부산 거리에 한 줄기 온기를 더했다.
그러나 잘되는 집엔 바람이 들기 마련이었다. 빛을 향해 몰려드는 그림자 같이 시기와 질투는 언제나 날아와 가까이에 깃들었다.
그래서 부산 명월관은 나날이 성황을 이루었지만 소율의 뒷모습엔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무슨 말입니까?"
"탈세의 정황이 포착되어 함께 좀 가야겠소이다."
"이 명월관이 뭘 했다고요?"
"함께 서로 가 주시지요."
"앞장서십시오."
경찰서에 도착한 소율은 불편한 맘을 잔뜩 나타내었다.
"아니 자네가 여기 웬일인가?"
"우리가 탈세를 했답니다."
"무슨 일인가?"
"예,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내 처리할 테니 돌려보내게."
"예... 하지만...."
"돌려보내고 자료들 들고 내 방으로 좀 오지..."
"예, 서장님...."
"자네.... 그만 돌아가 보시게."
“사람이 너무 잘되면 눈총을 받는다 카더니… 내 팔자가 그렇구마.”
소율은 근래에 와서 크고 작은 모함으로 여러 차례 치도곤을 겪고 있었다. 그리고 밤마다 장부를 펼쳐 놓고 한숨을 쉬는 소율의 얼굴엔 지친 빛이 떠올랐다. 술판을 어지럽히는 무리들, 모함을 퍼뜨리는 경쟁자들, 뇌물과 구실을 요구하는 관리들..... 사방이 막혀 가는 듯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세도가의 아내가 명월관을 찾았다. 그녀는 겉으론 웃었지만 눈빛은 매서웠다. 남편의 마음이 소율의 다정한 말 한마디에 머문다 여겼던 걸까. 그날 이후 그녀는 소율을 궁지로 몰기 시작했다. 갑작스레 명월관에 검문이 들이닥치기도 했고 소율이 전혀 알지 못한 사이 거짓 소문들도 돌기 시작했다. 손님과의 부정한 내통, 은밀한 거래, 교만한 태도 등 하나같이 모함이었지만 세상은 진실보다 이야기를 즐겼고 소율은 지쳐 갔다.
설상가상으로 관리들의 압박까지 더해지자 소율의 근심은 커져 갔다. 그런 날들이 늘어 가면서 소율은 밤새 등불 아래서 눈물 한 줄기를 훔치는 날이 많아졌다.
“명월관을 지키는 게 나를 지키는 일은 아니구나.....
이곳에서의 버팀은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닌가.....”
“부산은 더 이상 내 자리가 아니구마.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전주로 가야겠다.”
그녀는 긴 고민 끝에 결국 부산의 명월관 문을 닫기로 결심했다.
그녀가 결심을 한 그날에는 유난히 하얀 달빛이 빈 마루에 고요히 흘렀다.
그리고 며칠 뒤, 소율은 만철과 춘식을 불렀다.
"얘들아~ 우리 전주로 이사를 가야 할 것 같다. 전주는 내게 고향과 같은 곳이고 좋은 서당이나 학교가 많단다."
"꼭 가야합니꺼?"
"여는 친구들이 있다 아입니꺼?"
"맞심더...어무이 우리는 여가 더 좋습니더."
소율은 잠시 침묵하였다. 그러고는 이내 입을 열었다.
"미안타. 하지만 우리는 가야 간다. 처음에야 좀 힘들겠지만 동무들은 가서 새로 사귀면 안 되겠나? 우린 꼭 가야 한다. 여 명월관 사정이 안 좋아가 어쩔 수 없이 가는 거다. 그리 알그라."
"예..... 어무이"
"예, 어머니"
소율의 단호한 결정을 알게 된 아이들은 몹시 속상했다. 하지만 그들은 소율의 마음을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대답을 한 후 마당으로 나갔다.
"형님아~ 내는 여가 좋데이..."
"하무 내도 여가 좋다. 어무이가 많이 힘든갑다."
"응.... 어머니가 힘들어 보여. 형....
며칠 전에 밤새 어무이가 우시던걸...."
"내도 들었다,"
"형은 전주 가 봤어?"
"어릴 때 거 가 봤다."
"거긴 어떤 곳이야?"
"거긴 신여성도 많고 좋은 학교도 많닥 카더라.."
"맞나?"
"맞지"
"그라믄 학생들도 많나?"
"많다."
"여기 친구들이 좋은데..."
"우이 하겠노?"
"그니깐"
"여기는 또 놀러 오면 된다."
"맞나?"
"맞다."
춘식은 풀이 죽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춘식은 명월관을 나와 친구들이 모여 사는 시장통으로 갔다. 그곳에는 친구들의 집이 나란히 이웃하기도 하고 서로 마주 보기도 한 채 즐비하게 서 있었다. 춘식이 시장에 갈 때면 친구들은 우르르 몰려나와 춘식을 반겨 주었다. 그들에겐 우정이 있었고 재미와 추억이 있었다. 춘식은 학업이 없는 날에는 언제나 이곳에 내려와 친구들과 어울리곤 하였다. 춘식의 친구들도 그들의 부모님도 선하고 사랑스런 춘식을 좋아하였다.
그런데 그런 친구들에게 이별 인사를 건네야 하는 춘식...
고개를 푹 숙이고 춘식은 사연을 전했다.
"야. 니만 안 가면 안 되나? 우리 집서 같이 살면 된다."
"아이야... 울 집에 살면 된다. 니 그 집보다는 작아도 울 집에 방이 많다 아이가...."
춘식이 시장에 놀러 올 때면 어김없이 뛰어나와 춘식을 반겨 주던 친구들이었다. 그들은 때론 맨발로 춘식을 맞아 주었다. 그렇게 그들 사이에는 순수하고 따사로운 우정이 있었다.
며칠 후, 비 내리는 어느 날 소율은 아이들을 데리고 진주로 향했다.
진주에 도착한 첫날 첫새벽에 안개 낀 골목 끝에서 소율은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여기서 다시 시작하면 되는 거야. 내 명월관의 달빛은 꺼지지 않았으니까.”
진주에 닿은 소율은 먼 길을 달려온 기차의 연기 속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모든 것이 낯설었고 어색했다. 너무나 오랜만에 이곳을 찾은 탓이었을까?!!
진주에 선 소율에게 부산의 바닷바람 대신 산바람이 불어왔다.
그 바람엔 미묘하게도 따스함과 쓸쓸함이 함께 섞여 있었다.
“다시 처음부터 하면 되지.”
스스로에게 낮게 속삭이며 그녀는 명월관의 새 터를 찾아 나섰다.
진주 천변의 오래된 기와집.......
햇살이 비스듬히 들어오는 마당과 나무문이 있는 곳.
그녀가 찾은 그곳이 바로 그녀의 두 번째 명월관이 되었다.
처음엔 손님이 없었다.
잔뜩 준비해 둔 음식들을 팔지 못한 날들이 많았고 구 때마다 소율은 그 음식들을 동네 힘든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러는 날이 무수히 많았다. 참 힘든 시기였다. 하지만 비록 어려운 시기였어도 그녀 곁에는 언제나 만철과 춘식이가 있었다. 이제는 제법 의젓해진 소년들이 나무를 패고 물을 길어 나르며 그녀 곁을 지켰다.
“어머니~ 이제 웃을 때가 됐어요. 다 잘 될 거예요”
춘식의 말에 소율은 잠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엔 아들에 대한 사랑과 지난 세월의 고통 그리고 다시 살아보겠다는 의지가 함께 스며 있었다.
“내 살아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도 내 일도 다 지켜낼 수 있지. 기운 내자 소율..."
춘식의 격려의 말은 소율에게 힘을 더하여 주었다.
그해 겨울이 지나자 명월관의 문을 두드리는 손님이 하나둘 생겨났다.
진주 사람들에게 소율의 인심과 명성이 천천히 퍼져갔다.
그리고 소문을 듣고 찾아든 이들은 소율의 음식에서 바다의 향을 느꼈고 그녀의 말씨에서 세월을 견뎌낸 단단함을 보았으며 그녀의 예술에 감탄을 하기 시작했다.
봄이 올 무렵 그녀는 문을 나서 새로 핀 매화를 바라보며 속삭였다.
“여기서라면...... 나도 너처럼 다시 피워낼 수 있겠지.”
그즈음 소율은 춘식이를 더 이상 예전처럼 세세히 돌볼 여력이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녀의 언니인 소현에게 춘식의 교육을 맡겨야 했다.
“언니야, 부탁 좀 할게. 춘식이는 언니가 좀 맡아 봐주라. 난 당분간 일에 매달려야 해서.....”
소율의 언니는 기꺼이 춘식을 맡겠다 하였으나 그녀의 훈육은 소율과 너무나 달랐다.
“얘야, 공부만 한다고 다 되는 게 아니다. 손발도 움직일 줄 알아야지.”
그녀는 학교 근처에서 하숙집을 하고 있었는데 그 집안의 허드렛일을 춘식의 몫으로 돌렸다.
아침이면 대야에 찬물을 길어다 마루를 닦게 하고 저녁이면 부엌에서 불을 지피며 솥단지를 닦게 했다.
“손이 느려! 이래 가지고 밥이 되겠니?”
소현의 꾸중은 하루에도 몇 번씩 날아들었다. 춘식은 속으로 억울했지만, 입을 굳게 다물었다.
밤늦게 홀로 마당에 앉아 재를 치우며 춘식은 중얼거렸다.
“괜찮아! 내 노래만은..... 아무도 뺏어갈 수 없지. 아무리 힘들어도, 노래만은 내 거다.”
그렇게 하루하루 춘식은 낮에는 잡일에 시달리고 밤에는 눈물을 삼켰다."
그러나 소율의 언니 또한 완전히 무정한 사람은 아니었다. 짬짬이 춘식에게 한자며 수 그리고 음악에 대한 학문을 가르쳤다. 그리고 어느 날은 아이가 기침을 심하게 하자 조용히 약을 달여 건네주었다.
“니도 참...... 기특한 구석이 있다. 허튼 데 빠지지 말고 꾹 참고 공부해라.”
툭 뱉은 말이 말끝은 여전히 매서웠지만 그 속에 미묘한 정이 숨어 있었다.
하숙집 마당..... 대야에 쌓인 빨래를 헹구다 말고 춘식은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바람이 불어오자 어린 시절 순이 곁에서 불렀던 노래가 절로 흘러나왔다.
“푸른 하늘 끝까지..... 소리 날아가라.....”
힘겹게 빨래 방망이를 두드리던 손이 멈추어졌고 감성 충만한 춘식의 노랫소리는 서늘한 저녁 공기 속에 퍼졌다. 그때 마침 지나가던 학생 하나가 발길을 멈췄다.
“저 아이, 누구야? 목소리가..... 기가 막히네.”
옆에 있던 하숙 손님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지? 그냥 부르는 게 아니야. 가슴에서 뽑아내는 소리라카이.”
마당 귀퉁이에 숨어 듣던 그들은 눈치를 보며 서로 감탄을 나눴다.
하지만 정작 춘식은 옷자락에 맺힌 물방울만 뚝뚝 떨어뜨리며 노래를 이어갔다.
노래가 끝나자, 그는 허리를 펴고 숨을 몰아쉬며 중얼거렸다.
“힘들어도… 노래만은, 내 거다.”
"맞네. 노래만은 니 거다. 어디서 그런 소리가 나오는 기가"
"와~ 노래 정말 잘하네."
"신의 소리다 카이"
하숙집 마당엔 어느덧 많은 이들이 모여 춘식의 노래에 찬사를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박수갈채가 쏟아져 나왔다.
세월이 흐르고 진주의 명월관은 마침내 자리를 잡아갔다. 손님이 늘고 명월관의 입지도 굳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소율은 마당에서 언니 소현이 춘식을 구박하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손이 왜 이리 굼뜨노! 밥은 다 식는다, 이놈아!”
소현의 호통에 춘식이 고개를 떨구자 소율의 마음이 쓰려 왔다.
"내 새끼 아이가... 와 저리 아를 잡노.."
그날 밤, 소율은 언니를 조용히 찾아갔다.
“언니, 나랑 얘기 좀 하자.”
“그래, 무슨 일이고.”
잔이 몇 번 오간 후 소율이 참던 말을 터뜨렸다.
“언니.... 춘식이 내 자식이다. 가슴으로 낳은 내 새끼..."
"와? 누가 뭐락 카드노?"
"언니... 춘식이한테 너무 엄하지 마라. 내 눈앞에서 아이를 그리 몰아붙이는 거 맴이 아파가 차마 못 보겠다.”
소현이 눈살을 찌푸렸다.
“내가 괜히 그러는 줄 아나. 저 아이, 게으른 데가 있다. 단련 안 시키면 어찌 버티겠노.”
“그래도… 그 애는 내 아들이다. 아가 느리긴 해도 똑똑한 기라”
말이 오가다 언성은 높아졌지만 술기운이 오르자 싸늘한 긴장은 풀려 갔다.
소현이 문득 물었다.
“근데..... 왜 하필 춘식이었노? 그 아이가 뭐라고.”
소율은 잠시 잔을 들고 가만히 웃었다.
“사실은 내가 춘식을 여기 부산서 처음 본 게 아니데이. 옛날에 춘식이 아부지 살아있을 때 본 적이 있다. 아마 그때 의성 엿 공장 근처에 잔치가 있었지. 어린 춘식이를 보았는데 아가 어찌나 노래를 잘 부르는지.... 참, 잊히질 않더라. 부러웠지. 그 꼬마가 부러웠고 그 아이의 부모가 부러웠고..... 그때 그 아이의 노래가 아이의 모습이 내내 눈에 밟히더만.....
근데 기적이 일어난 거야. 부산역에서 다시 마주쳤을 때, 내 눈을 의심했다 아이가. 근데 영락없이 그때 그 아인기라. 여러 날을 살피고 살폈는데 아이에게 사정이 생긴 것 같더라... 그래서 아이의 이야기를 긴 시간 들었어.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어머니를 행방불명되시고 친척 할아버지 손에 쫓겨났다고....”
"그래서?"
"아이가 어찌나 순순한지 있는 그대로 이야기를 하는데...."
"이야기를 하는데?"
"내 아이다 싶더라구.... "
"그래서 데려온 기가?"
"응....."
소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되물었다.
“그것뿐이가?”
"와? 뭐가 더 있어야 되나?"
"만철이 때문인가 해서..."
소율은 깊게 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말하면, 맞다. 만철이 때문이다. 만철이 또래 아이가 하나 있으면 했다. 만철이 외롭지 않게 동생 하나 만들어 주고 싶었데이."
"맞나? 그라믄 그게 다가?"
"......"
"그게 그 이유 다가?"
"아니다. 더 있다. 실은....."
"실은 뭔데?"
"대신.... 만철이 대신 위험을 짊어질 아이가 필요했다. 노역이든 학도병이든, 내 자식만은 피하게 하고 싶어서… 춘식을 들인 것도 있다.”
잔을 내려놓으며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래서 해방이 되었을 때 다행이다 싶더라구....
해방되던 날, 내가 춘식이에게 그랬지. ‘춘식아, 너 살았다.’
맘에 많이 걸렸었나 봐. 나도 모르게 그 말이 나와 버렸지.....
그 말속에는....
내가 그 아이를 방패막이 삼으려 했던 죄책감이 섞여 있었던 거 같아. 미안하다, 미안하다.... 연신 미안하다는 그 말밖에 못 했지.”
소현은 한참 말이 없었다. 잔 속 술만 뱅글뱅글 돌리다가 조용히 내뱉었다.
"실은 들었다....
니랑 박소장이 하는 말.
만철이 대신할 아를 찾으라 카더만....."
"언니 니가 그 말을 어찌 들었노?"
"어쩌다 듣게 되었다."
"서장님 맘도 내 맘도 그런 맘이 있었던 건 사실이 데이...
하지만 서도 그게 다가 아이다.
아까도 말했지만서도 춘식인 내 뒤를 이어 명월관을 짊어지고 또 내 꿈을 이루어 줄 아이다. 난 음악에 대한 예술에 대한 교육 기관을 만들 끼다."
"와? 만철이는 우쩌구 남의 새끼를 니 후계자로 만들긴데...?"
"만철이 아부지가 결사반대를 한다. 만철이는 나랏일 해야 한다고 데려간다 하이."
"지금도 데려간 것과 진배없지 않나?"
"지금은 학교 기숙사에 보낸기다. 근데 이제 집으로 들일 모양이다."
"와? 만철이는 니 자식도 된다. 와 아 아배가 데려간닥 하노?"
"내 아무리 예술을 하는 기생이고 신 여성이락 해도 기생 아이가....
애 아부지가 델꼬 간닥하믄 어쩌겠누...."
"야~야~ 세상이 바뀌고 있데이...
내가 니 그런 자격지심 속에 살라꼬 진주권번에 보낸 줄 아나?
당당해져라. 와? 와 주눅 들고 그라는데?"
"하지만 아직은..."
"서울에는 한성권번, 남쪽에는 진주권번....
잘난 여성들 다 모여든다는 진주권권 수석생 아이가?"
"맞나?"
"맞다. 내 니 그리 멋지고 당당하게 살라고 집안 반대 다 물리고 니 거다 넣었다 아이가..."
"니가 원하면 만철이 보내지 마라. 자식은 어미가 품고 있어야 되는기라...."
"맞나?"
"맞다. 니 새끼 델구 와라."
"아 미래를 생각하믄...."
"됐다. 그라믄 춘식이 미래는?"
"아...맞나?"
"그래. 맞다. 니가 델구 사랑 주고 믿음 주고 그렇게 아는 키우면 되는 기라. 와 아를 눈칫밥을 먹이려 하노?"
"맞네... 알았다. 아 학기 마치면 물어볼 꺼구먼..."
"그래, 맞다. 물어보고 온닥하믄 데려온 나"
"알았다. 그나저나 언니야~ 춘식이 좀 예뻐해 둬. 착한 아다."
"내도 안다. 알면서도 애비도 없이 남의 자식을 키우는 거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데이..
그래가 내가 좀 엄히 교육하는 거구만..."
"춘식이는 맘이 여린 아다. 상처받을 끼다. 춘식인 여 오는 순간부터 내 자식이다. 울 만철이 만크롬 대해 주소."
"알았다. 내 그럴꺼구먼....."
소율과 소현은 그렇게 허심탄해하게 마음을 나누었다. 이들은 늘 그렇게 씩씩한 자매였고 의 좋은 자매였다.
한편 순이는 춘식을 찾는데 온 힘을 다하고 있었다. 순이는 여전히 길 위에 있었다. 김천역, 대구역, 방직공장, 과수원, 골목골목… 발이 부르트도록 뛰어다녔다.
“혹시 어린아이 못 보셨소? 이름이 춘식인데…”
그러나 돌아오는 건 그들의 고개 젓는 대답뿐이었다.
비 내리는 길가에 주저앉아 그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춘식아… 대체 어딨노… 이 애미가 널 못 찾으면 어찌 살란 말이냐.”
점점 그녀의 절망은 깊어지고 순이의 발걸음은 더 무거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