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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온다

by Unikim

새벽안갯속, 제갈룡은 춘식이를 데리고 기차역으로 향했다.

춘식은 새 옷을 입고 손에 작은 보자기를 쥐고 그를 따라가고 있다.

아이의 손을 꼭 잡고 걷는 제갈룡은 마음이 무거웠다.


'이 아이를 집에 데려가면... 아내는 뭐라 할까.'


하지만 한편으로는 기대와 설렘이 스며들었다.


“그래도.... 이제 우리에게도 봄이 오겠지....”


기차가 천천히 출발할 때 제갈룡은 창밖으로 스치는 바다를 바라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춘식아, 우리 잘 지내보자.”


춘식은 아무 말이 없었다. 파란만장한 시대에 휩쓸려 고단한 삶을 살고 있는 그는 말없이 창밖만 응시하고 있었다. 어린 춘식은 불안한 마음과 그리움 그리고 두려움에 머릿속도 마음도 복잡했다. 그는 그저 멍하니 창밖만 바라볼 뿐이었다. 그런 춘식에게 재갈룡은 다시 말을 붙였다.


"후회하나?"

"....."

"춘식아~ 춘식아~"

"예?"


춘식은 놀라며 재갈룡을 쳐다봤다.


"무슨 생각하니?"

"아... 그냥.... "

"저기~ 저 빛 보이지?"

"예..."

"저 빛을 우리는 여명이라고 부른단다."

"여명은 말이지.... 희망을 불러오는 빛이지...."

"희망이요?"

"그래... 희망...."

"여명은 희망을 불러오는 빛이고 노을은 평안을 선물하는 빛이란다."

"여명과 노을....."

"춘식아~

한 사람은 미명의 새벽에 산을 오르고 한 사람은 해 질 녘부터 산을 올랐어.

그런데 한 사람은 정상에 올랐고 또 한 사람은 정상에 오르지 못했단다.

왜인지 아니?"

"순간 춘식은 2년 전 할아버지에게 쫓겨나 홀로 산을 오르던 날이 떠올랐다."


춘식의 흔들리는 눈빛을 바라보던 재갈룡은 춘식의 송을 잡으며 말했다.


"빛이다. 희망이다."

"빛? 희망?"

"그래... 빛과 희망...."

"빛과 희망?"

"응...

둘 다 까만 어둠 속에서 산을 올랐지만 새벽에 오른 이에게는 곧 날이 밝아 올 꺼라는 희망이 있었고 또 다른 이에게는 점점 밤이 깊어지고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지.... 그래서 한 명은 정상에 올랐고 또 다른 이는 그렇지 못했어."

"하지만..... 밤이 깊어진 후에는 다시 새벽이 오고 새벽이 오면 밝아지는걸요..."


재갈룡은 춘식의 대답에 놀람과 대견함이 밀려들었다.

그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 맞다. 아무리 어둡고 긴 밤이라 해도 새벽은 반드시 오는 거니까...."

"근데...."

"응?"

"근데도 깜깜한 밤에 산속은 너무 무서워요."

"걱정 마라. 이젠 춘식이는 혼자가 아니니까...."


춘식은 물끄러미 재갈룡을 쳐다보았다.


"녀석.... 우리 잘 지내보자."

"저.... 엄마는...."

"엄마도 반드시 만나게 될 거야. 간절히 원하는 것은 꼭 이루어진단다. 어떻게든 어떤 방식으로든 꼭 이루어지지. 나도 너의 원함이 이루어지게 도와주마."

"우리 엄마는 조용하고 똑똑하고 좋은 분이에요."

"그래..... 아이야. 너를 보면 그러셨을 거 같아."


"보세요~ 해가 나오고 있어요."

"그러네. 해가 나오고 있네."

"와~~"

"춘식아~ 춘식이는 지금 새벽에 산을 오르는 사람이야...."

" 저 산에 가요?"

"아니... 그러니까 새벽에 산을 오르는 사람처럼 희망이 가득한 사람이라고^^"

"희망이 가득한 사람?"

"응... 희망이 가득한 사람....

해가 뜨는 바다가 우리 춘식이인 거지..."


춘식은 재갈룡의 말에 일출이 일렁이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재갈룡도 춘식을 담아 저 멀리 수평선 위의 해에게 시선을 두었다.


그 둘은 그렇게 함께 새 날과 새 봄을 꿈꾸고 있었다.

이들의 장면이 따스하게 흐려지며 기차는 먼 들판 속으로 사라져 갔다.


소율은 춘식의 흔적을 따라갔다. 그녀의 명원관이 있던 곳 앞집에도 시장 어귀 춘식의 친구 집에도 항구 근처에 사는 그의 친구 집에도 춘식을 찾기 위해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절간에 이르렀다.


"왔나? 춘식이 저 아랫마을 파란 지붕집에 보냈다. 거 가 보소. 아가 많이 기다리는 눈치더만...."

"고맙습니더."


그녀는 춘식이 부산에서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곳을 찾아갔다.


“아, 그 애? 제갈룡이라는 양반이 데려갔어요.”

"네? 그 이가 왜?"

"왜긴.... 그 집에 애가 없잖아요. 아들 삼고 싶은 거지..."

"춘식이는 내 아이인데... 왜?"

"그 이도 소율이 자네와 같은 마음이었나 보지..."

"춘식이가 따라갔나요? 그런다고 한건가요?"

"그럼... 그 큰 애를 누가 보쌈이라도 해서 갔겠수...."


소율은 마음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걱정과 서운함 그리고 배신감이 순간 그녀의 마음을 가득 채웠다.

그런 그녀에게 춘식이를 보낸 그 여인의 말이 소율의 마음에 대 못을 박았다.


“솔직히 기생 밑에서 크는 것보단 그래도 남자 손에 자라는 게 낫지 않겠어요?”


소율은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 여름 햇살이 뜨겁게 내리쬐는 날이었다. 바람 한 점 없는 부산의 거리...

그녀는 그만 아이를 찾으려는 발걸음이 멈추었다. 그리고 혼잣말처럼 속삭였다.

“춘식아~ 어디를 간 거니? 너의 봄은 그곳에 있는 것이니?”


그녀의 눈가가 젖어왔지만 그녀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순이는 여전히 시장 어귀를 돌며 춘식을 찾았다.

날이 어두워 지자 그녀는 한 할머니에게 물었다.


"혹시 이 아이 못 보셨어요?"

"그놈 참 잘 생겼네... 내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왜? 성님 자 저서 노래하던 가 아녀요?"

"맞아요. 우리 아이가 노래를 좋아하고 또 아주 잘해요. 혹시 어디로 갔는지 아시나요?"

"모르지... 근데 그날은 저기~ 저쪽으로 아이들하고 뛰어갔수, "


“혹시 그리 애타게 찾는 그 애가..."

"예, 우리 춘식이를 아십니까?"

"아... 맞소. 아이들이 그를 춘식이라고 불렀소."

"어딜 가면 우리 아이를 만날 수 있을까요?"

"그야 모르지요. 시장을 뛰어다니는 아이가 가 하나도 아니고..."

"아니 우리 같은 장사치들이 온종일 얼마나 바쁜디 애들을 어찌 기억하누...."


순이는 점점 더 막막해 갔다. 그저 허공을 바라보다가 중얼거렸다.


"아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니?"


그녀는 저녁 하늘을 보았다. 노을 속에서 어린 춘식의 뒷모습이 아른거렸다.


“거 명월관에 가 보슈...

그 집 양자인 거 같던데...

예? 명월관이요?”

"맞소. 찾는 아이 분명 명월관 기생 소율의 양자와 비슷한 듯싶소."


그녀는 바삐 명월관을 찾았다. 하지만 명월관은 흔적을 감춘지 오래였다.


"저 말씀 좀 어쭙겠습니다. 명월관이 어디이지요?"

"언잿적 명월관을 이제사 찾으십니까? 없어진 지 오래 됬습죠."

"그럼 그 이는 어딜 가면 만날 수 있습니까?"

"그야 모리죠...."


순이는 점점 더 낙담이 되었다.


"춘식아~ 춘식아~ 내 새끼... 대체 어디에 있는 거니?"


며칠 후 어느 역 근처 찻집.

소율은 차를 마시며 먼 길을 돌아가는 버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자리엔 순이가 앉아 있었다.

둘은 서로를 몰랐다.

잠시 눈이 마주쳤고 그녀들은 눈인사로 미소를 나눴다.


“길이 고되네요.”

“그래도 봄이 오잖아요.”


두 여인의 말이 스치듯 흘러갔다.

그리고 연이어 각각 그녀들의 버스가 도착했다.

각자 다른 길로 향하지만 그들의 뒷모습에는 어머니라는 같은 온기가 감돌았다.


제갈룡의 집 앞, 고산의 들녘.

춘식은 새벽빛 속에서 장독대 옆에 서 있었다.

얼굴에는 아직 낯섦이 묻지만 눈빛은 고요했다.

닭이 울고 먼 산에 아침 햇살이 번져 들었다.

춘식의 입가에 조용한 미소가 번졌다.

여전히 여름 햇살이 강렬하게 쏟아졌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온다.

봄은 늘 그렇게 사람의 마음을 찾아온다.”




사랑하는 작가님들 그리고 독자님들~

기다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늘 고맙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춘식이의 뒷 이야기는 제 3편으로 다시 인사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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