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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nikim Nov 30. 2024

세상을 향해 말을 걸고 싶어.

용서

"춘식 아부지~ 식사하셔요~"

안방에 밥상을 들인 순이가 윤철의 방문을 엽니다.

하지만 윤철의 방은 텅 비어 있습니다.

윤철이 세상을 떠나고 윤석은 술을 먹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그러고는 윤철의 방에 들어와 긴 시간을 보내곤 합니다.

어젯밤에도 윤석은 윤철의 방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습니다.

순이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잠시 멍하니 서있다가 안방으로 돌아옵니다.

"춘식아~별아~아침 먹자."

"엄마~ 왜 우리끼리만 먹어요? 아부지는요?"

"오늘은 우리 먼저 먹자. 아버지가 바쁘시니까?!!"

"네~~

근데요. 엄마?

엄마~~ 삼촌은 언제 돌아와요?

몇 밤 자야 우리 삼촌 만날 수 있어요?"

금세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은 순이가 눈물을 삼키며 말합니다.

"100 밤 자야 해. 삼촌이 아주 멀리 가셔서 100 밤을 오신단다."

"100 밤?"

"응, 100 밤. 어서 밥 먹자."

"아쿠 우리 별이는 혼자서도 밥 잘 먹네~"

순이는 애써 슬픈 마음을 감추고 차분하고 밝은 목소리로 아이들과 대화를 합니다."


윤석은 평소보디 일찍 철석엿공장에 나왔습니다.

그러고는 열심히 쌀을 씻습니다.

직원들이 나올 때까지 윤석은 잠시 쉴 짬도 없이 열심히 일을 합니다.

얼마나 지났을까요? 날이 밝고 스르르 문이 열리더니 지모가 공장으로 들어섭니다.

"자네 괜찮은가?!!

도대체 언제부터 나와서 일을 한 게야~~"

"왔는가~ 일이라도 해야 내가 사네...."

윤석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는 표정으로 지모는 따뜻하게 윤석을 보며 말합니다.

"그래도 쉬엄쉬엄하시게.....

맘이 몸까지 상하게 하면 쓰나....

다 지나가네.

이 힘든 시간 또한 지나 갈걸쎄~"

"고마우이~

크게 위로가 되었네. 그려."

윤석은 지모와 잠시 눈을 맞추고는 젖고 있던 큰 주걱을 지모에게 건네고 본인의 사무실로 들어갑니다.

"똑똑똑~"

잠시 후 노크 소리가 들립니다.

"네, 들어오세요."

그 순간 도화가 문을 열고 들어 옵니다.

그러고는 윤석의 앞에 섭니다.

"미안하네. 다 내 잘못이네"

"그게 무슨 소리인가?

잘못이라니? 당치도 않네. 늘 자네가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걸 내가 아네."

잠시 둘의 사이에는 정적이 흐릅니다.

"내가..... 내가......"

"이보게~~ 도과~~

자네에게도 사정이 있었을 테지.....

내 더는 묻지 않을 테니 두 번 다시는 신의를 저버리지 말게...."

"자네... 알고 있었나?"

"내가 어찌 모르고 있었겠나...."

"어려운 사정이 생겼으면 말을 하지...

왜 그랬나? 다시는 나의 믿음을 저버리지 말게..."

"미안허니.... 미안하네...."

도과는 주저앉아서 회한의 눈물을 흘립니다.

"저....."

도과는 차마 그 뒷 이야기를 꺼내지 못합니다.

"도식이는 마음을 좀 잡았나?

어머니를 생각해서라도 이제 그만 마음을 잡아야 할 텐데....

도식이와 잘 지내시게...

동생이 이리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나니 그 애달픔이 이루 말할 수가 없네 그려..."

"도과는 연이어 눈물만 주룩주룩 흘립니다."

흐느끼는 도과의 어깨를 두드리며 윤석이 말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다네.

뉘우치고 반복된 잘못을 하지 않으면 되는 게지...."

미안함으로 눈물 때문에 말을 잇지 못하고 있던 도과가 차분하게 말을 합니다.

"돈은 내가 어찌든 갚겠네. 진정 미안하네."

오랜 벗을 돈 때문에 잃고 싶지 않은 윤석입니다.

도과가 나간 후 윤석은 장부를 멍하니 응시하고 있습니다.




"애비야~ 야가 열이 내려 가질 않는데이~~

어찌 좀 해 보시게~"

"형민아~~ 형민아~~"

"아가 와 이러노~

형민아~퍼뜩 일어나 봐라~"

"아가 열이 높아가 자꾸 까무라칩니더~~"

도과의 모친과 도과 그리고 형민의 모친이 어쩔 줄을 몰라하고 있습니다.

도과의 쌍둥이 아들 중 동생인 형민이가 고열에 사경을 헤매고 있습니다.

도과와 그의 아내는 형민을 물로 닦아내고 이마에 찬 수건을 올립니다.

"아가 너무 뜨겁데~ 문을 좀 열어 놓으레이"

"안됩니더 어무이 아픈 아를 춥게 하면 어쩝니꺼?!"

"열은 시켜야 하지 않겠노?!!"

"추워가 고뿔이 걸린 아를 우에 춥게하라 합니꺼.

안됩니더"

"뭔 소리고? 어무이 말씀대로 해라"

"지는 못 합니더. 내 새끼 잡을 일 있습니꺼?

안 됩니더~"

"니 얼른 가서 약방 문 좀 두들겨 봐라.

약이라도 좀 받아와 봐라.

퍼뜩 갔다 온나~

형민이는 내가 잘 보고 있을 꺼구먼~~~"

도과와 그의 아내는 급히 약방으로 뛰어갑니다.

잠시 후 이들이 돌아왔습니다.

"약방 사람들이 다 초상집에 가고 없네요"

"봐라~인자 우리 형민이 열이 내렸다. 약 안 묵고도 열이 내렸다."

"아가~와 이럽니꺼?

아가 왜 이리 차갑습니꺼....

와이리 뻤뻤한데요?

어무이 문열어 놓았습니꺼?

형민아~ 형민아~

형민이가 숨을 안 쉽니다."

"야가 웬 호들갑이고? 멀쩡해진 아보고 와 이라노?"

"형민아~형민아~~

엄마~~ 도대체 형민일 어찌한 겁니꺼?

아가 숨을 안 쉬네... 숨을..."

도과는 소리를 지릅니다.

도과의 아내는 인사불성이 되어 형민을 안고 흐느낍니다.

"아구야~~ 형민아~ 우짜노?

잘못은 내 아들놈이 했는데 와 천벌을 니가 받노?!"

"어무이~~~"

어이없는 모친의 발언에 도과는 오열을 합니다.

도과는 그렇게 그의 막네 아들을 잃었습니다.


그 시절엔 그러했습니다.

전염병에 많은 이들이 죽고 일제 강점기에 살림살이가 어려워 병들거나 굶어 죽고 혹은 고역에 다치고 병들기 일쑤였다. 녹록한 살림살이에 겨울을 나는 일이 참으로 힘든 시절이었지요. 형민을 잃은 이들의 마음은 하염없이 무너져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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