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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향해 말을 걸고 싶어.

용의자들

by Unikim

"계십니꺼? 아무도 안계십니꺼?"

윤석은 애가 타서 오늘도 과수원에 찾아왔습니다.

"뉘신겨?"

"접니더. 어르신."

"여긴 우엔 일이고? 엿공장은 어찌하고 온기가?"

"저.... 혁신이 좀 만날 수 있겠습니꺼?"

"갸는 와? 무슨 일로 아을 찾나?"

"뭐 물어볼 것이 있심더."

"아직 우리 아가 많이 아프데이. 더는 도와줄 수 없습니더."

"저... 잠깐이면 됩니더. 잠시만 좀 볼 수 없겠습니꺼?"

"지금 잡니다. 안 되겠습니더."

"저.... 어르신...."

"와~ 무엇이 궁금해 그라노?"

"지난번 혁선이가 말하던 짐말인데요."

"짐? 무슨 짐을 말하는기가?"

"저 비탈 아래로 굴렸다는...."

"아~ 그거 별 거 아니데이.

비료를 주문했는데 창고 공간이 좀 좁아가 내가 비료 포대를 비탈 쪽에 쌓아 두라 했다 아이가."

"그렇습니꺼?"

"그때는 생각이 안 나가지고 말을 못 했다."

"맞는겨? 더 해 주실 말씀은 없으십니꺼?"

"없데이~"

"예. 알겠심더. 다음에 다시 들르겠습니더.

전날과 대응이 다른 과수원 주인장입니다. 윤석은 점점 더 혼란스럽습니다.


다음 날...... 윤석은 또 과수원을 찾았습니다.


"계십니꺼?"

"우째 또 왔는겨?"

"혁선이 좀 만날 수 있겠습니꺼?"

"혁선인 지그 아베한테 갔데이."

"언제쯤 돌아 옵니꺼?

"아픈 아요. 인자 치료받아야 해서 당분간은 오지 않을 끼다."

"서울 어딥니꺼?"

"그건 알아서 뭐할락카노?

그냥 아이 가만 놔두이소"

"그저.... 하나만 확인이 하고 싶어서...."

"내 공장 사장님 맴은 알지만서도 더는 해줄 얘그도 없고 도와줄 수도 없습니더."

"에. 알겠습니더. 혹시 난중에라도 생각나는 게 있으시면 말씀 주이소."

"알았다. 내 약속할끼구마."

윤석은 과수원 주인장과 인사를 나눈 후 과수원을 내려옵니다


"맞잖아~"

"아닌 거 같은데..."

"아냐. 맞아. 그 일 땜에 온겨..."

"쉿... 듣겠다."

윤석은 과수원을 막 내려 오려다 과수원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들의 소곤대는 목소리를 듣습니다.

시 걸음을 멈추고 그녀들이 있는 쪽으로 걸어 갑니다.

"아구~ 아까 장부 정리하는 걸 깜빡했네..."

"어머 난 빨래 거두어야 하는데...."

아주머니들은 빠르게 윤석을 피합니다.

윤석은 아주머니들에게 무슨언가를 묻고 또 그날 일에 관해서 듣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습니다. 낙담한 윤석은 힘없어 내려와 마을을 걷고 있습니다.

"싫어 싫어~ 나두 새 고무신 갖고 싶단 말이여~~ 친구들이 나랑 안 놀아 줄 거란 말이야."

점빵 앞에서 웬 아이가 엄마에게 떼를 씁니다.

윤석은 멍하니 아이를 쳐다보고 있습니다.

그러고는 우는 아이에게 다가가 손을 내밉니다.

"이거~ 묵을끼가?"

울던 아이가 울음을 그치고 윤석을 쳐다봅니다.

"아입니더. 괘안습니더."

아이의 엄마가 사양을 합니다.

"받아도 됩니더."

아이는 엿을 한참 쳐다보며 군침을 삼킵니다.

윤석은 아이 손에 엿을 쥐어 줍니다.

"새 신 없다고 친구들이 안 놀아 주드나?"

아이는 그저 쳐다만 봅니다.

"지금 신도 예쁘데이.... 이 엿 가지고 가가 친구들이랑 나눠 먹그라."

아이는 엿을 한 주먹 가득 손에 쥐고 친구들에게 갑니다.

"고맙습니더."

윤석은 그제서야 눈치를 챕니다.

"아~ 과수원에 계시던 분 맞지요?"

"예. 기억하시네예."

"저....."

윤석은 그녀에게 무언가를 물으려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녀가 무언가를 건넵니다.

"이거....."

윤석은 그녀가 건네는 만년필을 손에 들고 깜짝 놀랍니다.

"이건...."

"그날 엿공장 사장님 동생분 말입니더..."

"우리 윤철이를 아십니꺼?

아니 그날 우리 윤철이를 보신겁니꺼?"

그녀는 고개를 좌우로 젓습니다.

"저....."

그녀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입을 엽니다.

"실은 그날 말입니더. 떨어진 배 좀 주워 갈락꼬 길안댁이랑 밤에 과수원에 살짝 갔었심더.

그란디 웬 사내가 과수원서 허둥지둥 뛰뿌면서 도망가더라니께예. 우리가 똑똑히 봤심더."

"얼굴도 보셨습니까?"

"아닙니더, 얼굴은 못 봤심더. 근데 그 남자가 이거를 떨구고 도망가뿌드만예.

거기 적힌 글자가 철석 맞지예? 앞전에 석 씨가 이거랑 똑같은 거 들고 있는 거 봤심더?

철석 엿공장서 준 거 맞지예?"

"그런데 이걸 왜 내한테 주십니꺼?"

"일전에 들었슴더? 그날 밤 일을 물으시는거....

그날 무신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왠지 이걸 드려야 할 거 같아서예."

"고맙습니더.... 그런데 저... 이 일은 비밀로 좀 해주이소."

"알겠심더. 걱정 마이소. 사장님도 지가 이런 말 했다고 말씸 하시면 안 됩니더.

지가 난처해 집니더. 이거 드린 것도 비밀로 좀 해 주이소."

"고맙습니더. 이거... 식구들하고 같이 드이소."

"아입니더. 괘안습니더."

"받으시소. 제가 고마워서 그랍니더."

만년필을 손에 들고 돌아오는 윤석의 마음은 복잡하기 그지없습니다.

과연 윤철을 해친 사람은 누구일까요?

윤석은 점점 더 깊은 고뇌 속으로 빠져 듭니다.

이 만년필은 윤석이 장인에게 주문해 만든 것입니다.

엿공장을 열면서 그의 다섯 친구에게만 선물한 만년필로 도과, 지만, 지모, 병철, 일도 이렇게 다섯 친구들에게만 선물을 했습니다. 그래서 같은 만년필을 가진 이는 이 다섯 친구와 윤석이뿐입니다. 그런데 그런 만년필을 윤철이가 다치던 어두운 밤에 과수원서 도망치던 수상한 사람이 흘리고 간 것이라고 합니다. 과연 범인은 누구일까요? 도저히 윤석은 정리가 되질 않습니다. 도박빚에 쫓기던 도과일까요? 아님 과수원에서 이른 아침 마주친 지만일까요? 그이도 아니라면 풍수지리를 잘 알고 있으면서 윤철이 가지고 있는 땅을 명당이라 늘 말하고 다니던 지모일까요? 아님 입장과 말을 바꾼 과수원 주인장일까요? 그 네 명의 사내들은 또 누구일까요? 일도나 병철에게도 살해 동기가 있는 것일까요? 전당포 주인장의 말은 어디까지가 진실일까요?

이런저런 생각에 윤석은 혼란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윤석은 텅 빈 엿공장에 들어앉아 깊은 생각에 잠깁니다. 과연 윤철을 살해하려 한 이는 누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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