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아이들이 한데 어우러져 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제각기 조심조심 술레를 향해 다가갑니다.
어린 춘식이도 형과 누나들 틈에 끼어 한참 놀이 중입니다.
살금살금 아이들이 조금씩 움직입니다.
술레는 움직인 친구를 호명합니다.
술레에게 호명된 아이들은 손에 손을 잡고 길게 술래 뒤에 이어져 있습니다.
어느새 아이들이 술래와 한 걸음을 남긴 위치까지 다가왔습니다.
"무궁화 꽃이~"
한 아이가 술래에게 잡힌 아이들을 술래로부터 떼어 냅니다.
아이들은 도망치고 술래는 새로운 술래를 잡습니다.
이번엔 좀 더 어린 친구가 술래가 되었네요.
다시 놀이가 새로 시작됩니다.
조그마한 춘식이도 그 사이에 끼어 열심히 술래를 향해 전진합니다.
술래에게 아이들이 다가가야 하지만 그 움직이는 순간을 술래에게 들키면 안 됩니다.
아주 빠르게 천천히 술래를 향해 다가가야 합니다.
때마침 그 앞을 지나던 윤석이 춘식이를 봅니다.
잠시 멈춰 선 윤석은 한참 동안 춘식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언제 나타난 건지 춘식이가 윤석 앞에 나타납니다.
"아부지~"
"울 춘식이 왔나? 잘 놀았나? 재미지게 놀았나?"
"응. 아부지. 재미있게 놀았다."
"다 놀았나?"
"다 놀았다."
"맞나? 그라믄 이자 아부지랑 집에 가보자."
춘식이는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입니다.
"오셨습니꺼? 우째 부자가 같이 들어오는겨?"
"요 앞에서 만났다."
둘 다 손 깨끗이 씼고 오이소."
"알았다. 춘식아~ 이리 온나?"
"형부~ 오셨습니꺼?"
"영이 니도 있었나?
"예, 지 왔슴더?"
"보소~ 와 처제 이름을 부릅니꺼.
"맞나. 처제도 있었드나? 됐나?"
"됐심더."
"어여 오이소...."
"배추 된장국 아이가?"
"우와~ 춘식이는 된장국 좋아요."
"우리 춘식이가 젤로 좋아하는 된장국 맞네."
"춘식아~ 천천히 묵그라."
춘식이는 뭐가 그리 바쁜지 금세 밥을 다 먹고는 마당으로 나갑니다.
"와 그리 표정이 안 좋습니꺼?"
"이건 만약인데....
만약에 범인이 현장에 무언가를 떨어 뜨렸는데 그 무엇이 집안사람들이 나눠 가진 징표라면 범인을 어떻게 찾을 수 있겠나?
"그 징표를 잃어버린 사람이겠지요?!!"
"맞나?! 그라믄 범인을 그리 찾으면 된다. 맞제?"
"아닙니더. 범인이 다른 사람 것을 훔쳤을 수도 있습니더."
"아니믄 그 징표를 구했던 곳에 가가 새로 구했을 수도 있음더."
"단서가 하나 더 있어야 안 되겠습니꺼."
"지라믄 단서를 하나 더 찾을 껍니더."
"알았다. 그게 맞겠네...."
"와 그러 싶니꺼? 혹시 삼춘일 땜에 그런겁니꺼?"
"아이다~ 그냥.... 그냥 물어 본거데이~"
"이유야 어쨌든 사람을 함부로 의심하면 안 되지 않겠습니꺼?
당신 생각도 늘 그렇다 아입니꺼?"
"하므... 맞다. 함부로 의심하면 안 된다 카이."
윤석은 그리 대화를 마치고 윤철이 방으로 건너갑니다.
"언니~ 형부 무신일 있는 거 아이가?"
"그러게.... 불안하게 와 저런 걸 묻노?"
"실은..... 마을에 춘식이 삼촌 죽음을 놓고 이런저런 소문들이 파다하다."
"그러게.... 와이리 불안한지 모르겠데이."
순이의 불안한 맘은 쉬이 가라앉질 않습니다.
"아구~ 춘식아~ 천천히 가그라~"
"어무이~ 딱지 놀이 해 가 많이 따가 올랍니더."
"알았다. 그래도 천천히 가그라. 넘어져블면 어쩔락 카노?"
"예~~~"
춘식이는 신이 나서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형들이랑 친구들이랑 신나게 딱지놀이를 합니다.
1시간 후 춘식이는 입이 나왔습니다.
형들에게 딱지를 다 잃었기 때문이지요....
속이 상해 터덜터덜 걷는데 바닥에 지갑 하나가 보입니다.
지갑을 주워 보니 안에는 꽤 많은 돈이 있습니다.
함께 가던 옆집 친구는 딱지를 사러 가자고 말합니다.
춘식이도 딱지가 너무 사고 싶습니다.
고민을 하던 춘식이는 철이를 찾아갑니다.
"삼촌~ 춘식이가 이거 주웠어요. 이걸로 딱지 사도 돼요?"
"와? 딱지가 갖고 싶나?"
"딱지를 다 잃었다....
그래가 딱지가 하나도 없다."
철이는 춘식이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갑니다.
그러고는 점빵에 가 춘식에게 딱지를 사 줍니다.
"춘식아~ 이건 삼촌이 춘식이에게 주는 선물이야~
그리고 이 지갑은 춘식이가 주운 거니까 우리 주인 찾아 주자.
같이 파출소 가서 지갑 주고 오자."
"네~~"
춘식과 철이는 파출소에 갔습니다.
"우쩐 일입니꺼?"
"지갑을 주웠습니더."
"여~ 앉으이소. 여다 이름이랑 집 주소랑 지갑 주운 곳 전어 주심 됩니더."
"춘식아~ 니 써 볼래?"
춘식은 또 대답대신 고개를 젓습니다.
"김윤석이 김윤철이의 죽음에 대해 캐묻고 다닌답니더."
"캔다고 캐지겠습니까?
쓸데없는 소리 말고 시키는 일이나 잘합니다. 알겠습니까?"
파출소 안쪽 방에서 일본 순사가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소리가 작은 소리로 들려옵니다.
철이는 방문을 응시합니다.
"다 썼습니더. 부디 주인 찾아 주이소."
"수고하셨습니더."
"이자 가 봐도 됩니꺼?"
"에. 지갑 주인이 찾아가면 연락드리겠습니다."
"고맙심더."
철이는 춘식을 데리고 급히 나옵니다.
그리고는 춘식을 데리고 춘식의 집을 향해 갑니다.
"삼촌~ 김윤식은 울 아부지고 김윤철은 춘식이 삼촌이다."
"맞다. 와그라는데?"
"들었다. 쇼오타 아저씨가 말하는 거 들었다."
"별 얘기아니데이. 니는 맘 쓰지 말고 딱지 잘 챙기면 된다."
춘식이가 갑자기 철이의 손을 놓습니다.
그러더니 별이의 무덤 앞에 가 섭니다.
철이는 놀라 춘식이를 따라 별이 앞에 섭니다.
춘식은 손에 든 딱지 한 장을 별이에게 건넵니다.
"별이야~ 오빠가 제일 좋아하는 딱지야~
이거 너 줄게. 거기서는 아프지 마."
"알고 있었노?"
"아부지랑 어무이랑 하는 말 들었다."
"맞나? 우리 춘식이가....."
철이는 채 말을 못 잇고 춘식이를 꼭 앉아 줍니다.
"삼촌~ 답답해~"
"어~ 미안타~."
철이는 춘식이를 안고 춘식의 집을 향해 갑니다.
"왔나?"
"쉿!! 누이~ 춘식이 잠들었다."
"우에 같이 왔노?"
"춘식이가 찾아 왔데이~"
"와?"
"그랄일이 있데이~ 누이는 몰라도 된다~"
"매형은~ 안에 있나?
"철이 왔나?"
"와 또 철입니꺼?"
"맞나... 매제 왔나?
"야. 지 왔심더."
"바쁘십니꺼?"
"아이다. 들어 온나."
철이는 윤석의 방으로 들어갑니다.
순이는 조촐한 술상을 차려 방에 들입니다.
"공장은 잘 되지예?"
"하므 까딱없다, 질 돌아 긴다."
"춘식이가 지갑을 주워가 찾아왔심더.
그래가 파출소에 갔다 주고 왔습니더."
"그랬드나."
"저.... 무신일 없습니껴?"
"일이 있을 거이 무예 있노? 없다.
와? 파출소 가가 뭔 소리 들었드노?"
"아입니더...."
"과수원에 갔었다. 우리 윤철이 다치던 날 웬 수상한 사내가 뭘 떨어뜨리고 갔닥카드라"
"윤철형님 사고가 사고가 아니라 사건이란 말씀이십니꺼?"
"아무래도 그런 것 같데이..."
"짐작 가는 사람이라도 있습니꺼?"
"심증은 있네만 확증이 없네."
"심증이라카믄....."
"그 떨어진 물건이 내가 친구들에게 준 만년필이닥카이."
"그라믄 친구분들이 그랬다 그런겁니꺼?"
"그게.....
안 그래도 친구들에게 만년필이 있는지 조심스레 확인을 했는데
친구들이 모두 그 만년필을 지니고 있었어."
"지 영입니더. 들어가도 되겠는교?"
"들어 온나. 언제부터 거 있었드노?"
"미안합니더. 한참 됐심더.
"맞나? 그라믄 다 들은기가."
"다 들었심더."
"영이 니는 우에 생각하노?"
"만년필을 동시에 보여달라 했습니꺼?"
"아이다. 하나씩 확인했다."
"그라믄 한 사람이 빌려갈 수도 있었다 아입니꺼?"
"맞네...."
"그라고 만년필 직접 사신겁니꺼?
아님 누구 시켜가 사온깁니꺼?"
"도과가 주문해 가 받아왔었다."
"그라믄 주문할 때 몇 개를 주문했는지는 모르르는 거네예.
여러 개 해가 하나를 서비스로 줬을 수도 있고 여러 개 맹그니까 단가가 싸서 몇 개 더 주문했을 수도 있다 아입니꺼. 글루 과수원서 범인이 왜 하필이면 만년필만 떨어뜨린다 말입니꺼? 진짜 범인이 일부러 흘려 놓고 간 걸 수도 있다 그말입니더?"
"맞네.... 누이 니 순사해도 되겠네."
"그라믄 영이 니 생각은 어떻노? 어케하면 되겠나?"
"참말로 이거이 사건이라카믄 단서가 더 필요합니더."
"더 생각나는 건 없으십니꺼?"
"윤철이가 죽기 전에 도과를 찾았다."
"그리고 요즘 공장 장부가 또 안 맞는다. 돈이 빈다 그 말이다."
"그라믄 도과 형님을 의심하는 겁니꺼?"
"그게..... 윤철이랑 도식이랑 몸싸움을 하다가 윤철이가 넘어지면서 머리를 돌에 부딪혀서 다쳤었다는 얘기를 들었네. 그라고는 사내 서넛이 윤철이를 데리고 갔다는데........
그래서 내 과수원에 찾아갔다가 과수원 주인장이 수상한 사내 서넛을 보았다고 하고.....
주인장 손주 녀석이 말하기를 그 형아들리아 하더군......"
"그라믄 당장 고발하지 뭐 하고 있습니꺼?"
밖애서 술을 더 챙겨서 들어오던 순이가 듣고 끼어듭니다.
"퍼뜩 신고하이소."
"그게..... 무슨 이유에서인지 과수원 주인이 말을 바꿨소.
게다가 추가로 만년필이 나왔는데 그게 하필이면 다섯 친구가 다 연관된 일리 되어서는......"
"범인은 다른데 있을 수도 있슴더."
"무슨 말을 하는 기가?"
"누이야~ 내 지금 파출소 댕겨 오는 긴데....
들은 소리가 있다. 아무래도 이 일 배후에 쇼오타가 연관되어 있는 것 같데이~~~"
"쇼오타~?"
"그 아버님을 괴롭히던 순사가 쇼오타 그 작자 아닙니꺼?"
"실은 나도 쇼오타가 의심이 되는데 그 과정에 누가 연루되었는지.....
알면 알수록 겁이나가......"
"애꿎은 사람들만 다치게 될까봐 그러시는 거네예."
"그라믄 덮으이소. 처음에 덮었던 것처럼 덮으이소. 당신도 다치면 우에 합니꺼? 더는 캐지 마이소.
이미 저짝에서도 알고 있다 아입니꺼. 와 그놈의 인간은 종로서 여까지 와가 우릴 괴롭히는 겁니꺼?"
"그랄락 캐도 자꾸 들리는 소리가 있어가 맴이 힘들데이..."
"와 아니겠습니꺼. 하지만서도 우리한테는 춘식이가 있습니더. 참으이소. 귀막고 눈가리고 참으이소.
또 우릴 괴롭히면 우에 합니꺼?"
"알았다. 이 일은 그만 덮제이..."
"그란데 공장 일은 우에 하실 겁니꺼? 돈이 빈다면서예"
"곧 해결해야지....."
결국은 또 덮어야만 하는 윤석입니다.
하지만 그 마음 한편에는 아직도 불이 꺼지지 않는 윤석입니다.
윤석은 말없이 술만 자꾸 마십니다.
순이네 삼 남매도 조용히 술잔을 기울입니다.
이 날은 슬프게도 달이 밝은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