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청춘들의 집합소
호주에 가기 전에 제주도를 한 번 쯤 가리라 계획을 했었다. 복잡한 마음을 차분하게 정리하고, 타지 생활을 조금 익숙하게 해놓고 가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제주도를 좋아해서. 그렇게 일정을 이리저리 고민해 보다가 8박 9일의 제주행을 결정했다.
취업 후 제주도를 꽤 자주 갔고, 긴 기간을 잡고 한 바퀴를 돈 적도 있어서 행선지는 꽤나 명확했다. 제주도의 동쪽~북동쪽. 너무 관광지 느낌도 아니고 잔잔한 제주의 감성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이라 좋아하는 곳이다.
큰 계획은 세우지 않았고 여유로이 즐기며 많이 걷고, 보고, 책도 읽고 글도 쓰리라 다짐하며 제주행 비행기에 올랐다. 예약해둔 거라곤 렌트카와 숙소 뿐이었다. 순도 100% 무계획 여행.
이실직고 하자면 많이 걷고, 보고, 카페에 가서 책도 조금 읽었는데 글은 쓰지 못했다. 마음이 꽤나 안정된 편인데, 이상하게 마음이 안정되니 무엇을 써야할 지 갈피를 잡기가 어렵더라.
제주도 여행을 결정하는 계기야 많겠지만, 나의 경우 작년부터는 거의 '힐링'을 위한 제주도 여행을 많이 하는 편이다. 제주도의 분위기가 주는 편안함과 여유가 있다. 걸을 때 들리는 바람 소리와 쏟아지는 햇살에 반짝이는 물결, 그리고 파도소리까지. 폰을 보다가도 이끌리듯 자연을 보고 있게 된다. 제주도의 자연은 그런 힘이 있다. 나도 모르게 시선을 빼앗기고, 생각을 멈추게 되는 힘. 그게 나에게는 힐링이 된다. 그래서 항상 뻔한 루트로 뻔한 제주도 여행을 하게 되곤 한다.
번잡하지 않은 장소의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하고, 바닷가를 따라 걷고, 카페에 가서 커피를 한 잔 하고.
힐링을 위한 제주행을 할 때는 주로 혼자 가는 편인데, 게스트하우스를 이용하는 편이다. 가장 주된 이유는 저렴한 가격이다. 그 다음으로는 적당한 거리감의 교류가 주는 매력인 것 같다.
게스트하우스를 가면 보통 '방명록'이 있다. 방명록은 항상 쓰고 오는 편이고, 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찬찬히 다른 분들이 남긴 글들을 찬찬히 읽어본다. 읽다보면 주로 연애 이야기, 삶의 방향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방황이 가득 담겨있다. 흔들리는 2030들은 이끌리듯 제주도로 오는구나. 나와 정말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도 많음을 느끼며 격한 공감을 하고는 한다.
가끔은 게스트하우스에서 다른 분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거기에서 오는 잔잔한 울림이 있다. 완전한 타인이기에 터놓을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표면적인 얘기는 걷어두고 속 안 깊은 곳의 얘기를 하다보면 스스로도 '내가 그렇게까지 생각하고 있었나?'라는 생각이 드는 얘기를 하고 있을 때도 있다. 거리감이 주는 편함이란 이런 게 아닐까.
그런데 모순적이게도 타인과 보낸 시간에 후회가 남기도 한다. 그 시간에 잠을 잤으면, 그 시간에 책을 읽었으면. 후회하지 않고 싶지만 후회란 불쑥 찾아와서 예측하거나 막기가 힘들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알 것 같기도 하다. 후회가 남는 것은 그 시간에 의미가 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내 중심을 잡지 못해서임을. 모든 것은 '인지'에서 시작되므로, 한 걸음 쯤은 성장한 것 아닐까한다.
이번 제주 여행의 절반이 지나가고 있는데, 남은 시간들을 나름대로의 알찬 시간들로 채워 나갔으면 좋겠다. 의미란 부여하기 나름이니 내 모든 시간들에 의미 없는 시간은 없었다고 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