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고 있었다. 잠을 청하고 있었다. 몸은 벌써 자고 있는데 정신은 아직 자지 못하고 있었다. 눈앞에 그려지는 이미지, 영상이 펼쳐진다. 어린 시절 살았던 우리 집, 양옥집이다. 뙤약볕이 비치는 여름날 오후에 큰 물동이에 물이 가득 담겨 있다. 나는 8살, 내 두 살 터울 여동생, 내 다섯 살 터울 남동생, 세 명이 다 발가벗고 뛰어다닌다. 물속에 들어갔다 나왔다 마당을 뛰어다니며 깔깔깔 거리던 내 유년 시절, 그 유년 시절과 겹쳐서 떠오르는 나의 자녀들의 물놀이. 하천에서 튜브를 하고 수영을 하는 여름날의 풍경들, 그 풍경들이 그 이미지들이 영상처럼 떠올라진 이유를 잘 모르겠다.
요즘 글을 쓰고 있어서 그런 걸까? 떠오르지 않았던 것들이 떠올라져서 그 순간 센티멘탈해져서 좋은 것도 있고, 그 순간 기억나지 않았으면 하는 것들이 불쑥 뛰어나와 나를 괴롭히기도 한다.
글을 쓰는 게 100% 유쾌한 것만 아니란 것을 요즘 느낀다. 글을 재미로 쓰는 건 분명히 아니다. 나한테는 적어도 재미는 아니다. 그렇다고 고통도 아니다. 의무감도 아니다. 강제성도 없다. 취미도 아니다. 취향도 아니다.
나는 왜 글을 쓰는가? 어떤 글은 서랍에 꼭꼭 숨겨두고 어떤 글은 발행하는 게 맞을까? 처음은 골치가 안 아프고 다 좋기만 한 것 같았는데, 자꾸만 어려워진다.
시시콜콜, 잡담처럼 느껴지는 내 글들, 점점 산으로 가는 것 같다. 사공이 많은 것도 아닌데, 사공이 없는데, 내 글은 왜 점점 산으로 가는 것처럼 느껴질까?
처음에는 희망이 있는 글, 그런 글을 쓰고 싶다. 나도 글을 쓰고 싶다. 그렇게 시작했는데, 내 글에는 희망이 보이는 걸까? 공감이 가는 글, 공감이 가는 문장, 공감이 가는 사유와 사색, 그런 글을 나는 황보름 작가의 "단순생활자"에서도 공감했었다. 나는 직장에 얽매혀서 출근 시간, 퇴근 시간을 지키는 정해진 패턴에서 생활하는 것보다는 프리랜서가 맞고 자유롭게 자기 일을 하는 게 맞는 것, 혼자서도 자기 나름대로 바쁘게 잘 지내는 것, 사람들이 많은 곳, 사람들과 어울려서 다니는 것에는 시간을 많이 빼앗기고 싶지 않은 것, 사회생활에 필요한 일은 잘하고 싶어 하는 것, 혼자서 잘 지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나는 마음에 들었다. 내가 별종이 아니라 그런 취향을 가진 사람도 있다는 것, 그런 성향을 가진 사람들도 사회생활을 잘한다는 것, 나는 그냥 나대로 좋다는 것, 나와 같은 사람이 작가라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창 문을 다 열어놓아서 매미 소리가 요란히 들린다. 선풍기가 돌아가는 소리도 들린다. 창 밖의 가로수도 녹음이 짙다. 여름의 향기는 짙푸른데, 나는 그 여름의 향기만큼 고심이 커진다. 브런치스토리를 키는 순간 응원수 104명, 브런치북이 눈에 들어온다. 심장이 쿵해진다. 계속해서 올라오는 그 제목이 눈에 밟힌다. 나는 아직 어리다,라는 게 증명이 된다. 아직 내가 나를 다 포용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