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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서 우는 사람의 힘>

by 김현정 Jul 30. 2024

전봇대 뒤에서 숨어서 보았다. 지나가는 친구의 환한 웃음을, 아마 소개팅이나 데이트를 하는 것 같다. 성적은 중간 정도나 그 보다 못했을 것 같다. 여대생이 되어서 살랑거리는 시폰 원피스를 입고 살짝 연하게 한 핑크빛 화장을 한 빛나는 미소, 핸드백을 어깨에 메고 잘 생긴 남자와 사뿐히 걸어가는 모습. 나도 저렇게 환한 웃음으로 저런 예쁜 모습으로 근사한 남자와 저렇게 걸어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얼마나 행복할까? 부러웠었다.

나는 내가 보일까 봐 재빨리 전봇대 뒤에 숨었다. 나의 불행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나의 비참함을 보이기가 창피했었다. 


여대생이 된 친구들, 한껏 멋을 부리고 다니는 친구들, 부모님을 잘 만나서 걱정 없이 살고 있는 친구들, 학교 다닐 때 성적과는 무관하게 여대생이 된 친구들, 그런 친구들을 마주 보는 것은 너무 힘들었다. 나의 초라함이, 나의 비참함이 더 크게 부각되어 보였다. 


저들은 저렇게 청춘을 즐기고 있는데, 나는 여대생이 되지 못하고 한 번도 생각조차 않았던 직장인이 되어서 버거운 하루, 한 주, 한 달을 버티면서 살고 있는 나의 모습, 남이 입었던 옷을 깨끗하게 빨아서 다림질을 하여 입고 있는 나, 화장품 하나 살 돈이 없어서 남동생이 자신도 없는 용돈을 겨우 모아서 사주었던 연한 핑크색 하트 모양의 케이스 안에 담긴 연한 핑크 립밤을 입술에 바른 나, 내 허름한 초라한 모습을 어떤 친구들에게도 보이기가 싫었다.


나는 학교에서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이었다. 쉬는 시간조차 영어 단어 하나 더 외우려고 하루 계획, 한 달 계획, 상반기 계획, 하반기 계획, 늘 계획을 세우고 공부를 스스로 하는 학생이었다. 시험 기간과 상관없이 내가 알아서 하는 공부였다. 지식이 하나 더 생기는, 더 알아가는 그 과정, 그런 노력이 나를 행복하게 해 주었고 그런 성취감이 나를 행복하게 해 주었고 좋은 성적으로 이어지는 그 결과가 나를 만족시켰다. 

나는 친구들한테 노는 것보다는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쩌면 맹꽁이로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모르는 맹꽁이였다. 공부만 한 숙맥이었다. 그런데 그 맹꽁이, 숙맥도 힘이 있었다. 세상은 몰라도 자신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 힘. 자신을 지키려고 하는 힘. 그 힘이 발휘되는 때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 현재 나의 현실, 내 앞에 놓여 있는 처지는 내세울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 내가 그들 앞에서 미소를 짓고 설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시멘트 방바닥이 다 드러나 있는 방바닥에 사는 우리 집, 고추장과 된장을 반찬으로 먹고 있는 우리 집, 전화기도 팔아서 전화를 받을 수도 없어서 빛 독촉하는 이모가 내가 다니는 직장으로 전화를 하여 아침 조회부터 고성으로 난리를 치는 우리 집, 아버지는 어디에 가서 하루를 보내는지 알 길이 없는 우리 집, 어느 날부터 남의 집에 가서 집안일을 해주고 하루 일당을 벌고 오는 우리 집, 나는 누가 알까 봐 창피했었고 어떤 누군가 앞에 떳떳하고 당당하게 설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직장에서 집으로 오면 집안일이 산더미로 쌓여 있었다. 싱크대에 쌓여 있는 설거지할 그릇들, 비좁은 집, 방안에 널려 있는 먹다가 놔둔 밥그릇들, 여기저기 벗어놓은 옷들, 세탁물, 집에 오자마자 집안일로 나는 편안히 쉴 수가 없었다. 어린 동생들은 학교에 가고, 학교에 갔다 온 어린 동생들은 늘 우울해 있었고, 배고파했었다. 내 엄마도 파김치가 되어서 일할 거리를 찾아 돌아다녔고, 집에 오는 빚쟁이들을 피해서 어디로 도망가기 바빴다. 나는 집을 지키고 동생들을 돌보고 나를 돌볼 틈이 없었다.

우리 엄마도 내 동생들도 나도 우리는 불쌍했었다. 함께 있지만 너무 불쌍했었다. 



그런 청춘을 보내서 일까? 나는 독립적이 되어갔다. 내가 나를 책임지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책임져 줄 사람이 없었다. 나는 그 힘이 좋다. 그 힘으로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다. 결혼 전에는 지독히 가난했지만 그 지독한 가난 덕분으로 아주 열심히 살았다. 노는 것보다는 목표를 정해서 한 단계씩 아주 어렵게 올라왔다. 결혼 후에 동네에서 어울려 다니며 놀지 않고 목표를 정해놓고 공부하고 직장 다니고 열심히 살아서 내가 원하는 국어논술 강사로 살 수 있었다. 하루도 놀지 않고 봄 소풍, 가을 소풍 없이 그렇게 아주 오랫동안 열심히 공부하고 돈 벌어서 이제 나는 내 나이가 되어서 숨 돌리면서 내가 원하는 것들을 하면서 살 수 있게 되었다. 엄청난 큰 부자는 아니어도 더위와 추위를 피해서 쉴 수 있는 나만의 안식처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소소하게 사고 싶은 것들을 살 수 있는 정도는 되었다. 내가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있게 되었다. 이만큼의 여유를 위해서 쉼 없이 달려온 길, 그 길을 나는 안다. 한 템포 쉬면서 돌아보니 그곳에는 내 옆에서 지켜준 고마운 분들이 많았다. 



"브런치스토리"는 나에게 큰 행복한 선물을 주었다. 심사해 주신 작가님들께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게 기회를 주었고, 무엇보다 살아갈 때 필요한 자신감의 선물을 주었다. 그리고 브런치스토리 작가님들은 내 글을 읽어주셨다. 부족한 내 글에 라이킷을 해주셔서 나는 그런 응원을 받았다. 또 구독을 해주셔서 나는 격려와 응원을 받았다. 라이킷도 구독도 내게는 큰 응원이었다. 그 응원 덕분으로, 그 힘으로 나는 여기까지 올 수 있게 되었다. 

"브런치스토리"에 나의 간절함을 실어서 접수를 한 것, 내가 제일 잘한 일이다. 브런치스토리 작가가 된 게 나에게는 큰 행운이었고 나에게 처음으로 구독을 눌러주신 작가님 덕분으로 나는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나는 처음의 의미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런가. 나는 인생에서 어떤 "처음"을 귀하게 여긴다.


매일 그 작가님의 이름을 되뇌어보면서 감사함을 갖고 살고 있다. 부끄럽지 않은 작가가 되리라. 그런 의지를 다지게 해 주시는 작가님이다. 그 후 두 번째 구독, 세 번째 구독, 나에게 힘을 주셨던 작가님들 덕분으로 나는 훨씬 더 많이 행복해졌다. "그런 내가 좋았다"그 말이 좋다고 한 첫 댓글 쓰신 작가님, 그 작가님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작가가 되리라. 나를 똑바로 서게 해 주시는 작가님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나의 소설을 기다리겠다고 한 작가님, 말없이 뒤에서 응원해 주시고 계시는 작가님들, 나는 그 작가님들을 안다. 믿어주시는 만큼 좋은 작가가 되리라. 잘 걸어가는 작가가 되리라. 내 곁을 지켜주신 작가님들께 감사함을 전합니다.


한 템포 쉬어보니 보인다. 나를 말없이 아껴주시는 분들이 보인다. 나는 새내기 브런치스토리 작가로 받은 행복을 다른 새내기 브런치스토리 작가님들에게도 그 행복을 드리는 작가가 되리라. 그리고 배우리라, 많은 작가님들에게 배우리라.


숨어서 우는 사람은 자기회복탄력이 빠릅니다. 그만큼 많이 울어서 빨리 웃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숨어서 우는 사람에게 말해주고 싶은 게 있습니다. 언젠가는 웃을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해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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