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일 찍으며 밝은 모습을 확인했다.
지금은 사진을 잘 찍지 않는다.
한동안 아침에 일어나면 사진부터 찍었다. 내가 웃고 있나? 확인을 하기 위해서, 아침 식사(주로 믹스커피, 삶은 달걀)를 하고 아침 샤워를 하고 화장을 하고 오늘 내가 입고 싶은 컨셉으로 옷을 입고 그 옷에 어울리는 주얼리를 하고 바로 출근할 수 있는 사람처럼 완벽 풀 착장을 하고 사진을 찍고, 확인을 했었다. 웃는 모습이 아니거나 웃어도 예뻐 보이지 않으면 거울을 보고 예쁘게 더 예쁘게 웃어 보고 예쁜 모습의 사진을 남기려고 했었다. 웃는 모습이 예뻐 보이고, 내가 웃는 게 확인이 되면 그때 안심을 하고 오늘 내가 할 일들을 착착 순서에 맞게, 내가 계획한 순서가 비효율적이면 효율적으로 순서를 바꾸어 가면서 내가 할 일들을 내 감정과는 상관없이 해내려고 애를 썼었다. 김윤아의 "봄날은 간다"를 틀어놓고 내 할 일들을 하면서, 잠깐 힘이 들면 컴퓨터 화면 앞에 앉아서 노랫말을 보기도 하고, 노랫말을 흥얼거려 따라 해보기도 하면서 쉬었다. 그런 와중에도 내 모습이 궁금해서 사진을 찍었다.
4년 동안 점심식사를 정확히 11시 30분쯤에 먹었다. 그래서 그 시간에 맞추어서 배가 고파졌지만 나는 12시~1시쯤에 점심식사(한식, 먹고 싶은 것으로 충분히)를 하려고 노력했었다. 대략 일반인들은 그 시간이 점심시간이기 때문이다. 점심식사 전후에도 사진을 찍었다. 내가 웃고 있는지 확인하려고, 나는 웃는 사람으로 다니고 싶었다. 집에 있을 때도 나는 웃었다. 욕실에 가서 볼일을 보고 손을 씻을 때도 나는 거울을 보고 웃었다. 웃는 내가 더 좋았기 때문이다. 웃을 일이 있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기 위해서 나만의 루틴을 잘 지켰다. 부지런히 움직이고, 게으름을 피우지 않으려고 애를 썼었다. 청소기를 돌리고, 물티슈로 바닥의 먼지를 닦고, 설거지를 해놓고, 정리정돈을 하고, 작은 소품으로 집안에 온기를 주고, 집안의 풍경에 신경을 썼었다. 내가 있는 곳이 차갑지 않게, 어질러 있지 않게 깨끗이 정리정돈을 했었다.
2년 정도는 일요일까지 일주일 내내 근무를 했었다. 2년 정도 되어서 일요일은 쉬고 토요일까지 일했었다. 일반 직원들이 하는 주 5일로 쉬지는 못했다. 수익을 위해서 일요일까지 일을 했었고, 토요일까지 일하는 주기로 바꾸어졌어도 수익을 위해서 어르신을 유치하기 위해서 시골 동네로 다니며 홍보를 했었다.
내가 주로 하는 간호 업무뿐만 아니라 사회복지사가 해놓지 못하는 행정업무, 식단 짜기, 신문 만들기, 프로그램 짜기, 새로운 프로그램 준비하기, 송영표 짜기, 센터 미화 신경 쓰기, 사진 찍은 것 정리해 놓기, 블로그에 사진 올리고 홍보하기, 새 직원 구하기, 새로 입사하는 직원들 교육시키기, 어르신들을 위한 재밌는 행사를 하기 위해서 색소폰 연주자, 민요 가수, 트로트 가수, 한국 전통 춤 등 내가 아는 분들을 유치하려고 애를 썼었다. 이외에도 기타 일들이 내게는 많았다. 새벽부터 울리는 보호자의 부탁 전화부터 퇴근하고 나서도 부탁하는 보호자 전화부터 직원들의 전화까지, 어르신들의 상담 등 내 마음을, 내 몸을 돌보는 시간이 부족했었다. 집에 와서 저녁식사를 하고 나면 씻지도 못하고 그냥 뒹굴듯이 나가떨어져서 곯아떨어져 잤었다. 새벽 2시쯤 일어나서 씻고 잘 때가 더 많았었다.
그런 환경에서도 나는 늘 웃었다. 나는 잘 웃는 사람으로 통했다.
"원장님은 잘 웃는데, 대표님은 잘 안 웃어요."
나는 항상 자동으로 웃으려고 했었다. 사람들을 보면 그냥 입부터 웃었다. 마음은 슬프고 외로웠어도. 웃는 내 얼굴이 더 좋았기 때문이다.
저녁식사는 6시 이전에 마치려고 했었다. 7시는 안 넘기려고 노력했었다. 가벼운 걸로 채소와 두부, 고기로 적당히 먹으려고 했었다. 살이 찌는 게 싫었다. 39kg까지 야윈 몸이 2년쯤 지나서는 음식맛을 잘 내고 요리를 아주 잘하는 조리사가 입사를 했었고, 나 역시 이젠 이런 생활에 포기를 해서 인지 그냥 식사를 잘하게 되었다. 46~48kg 정도 나가니, 몸 이곳저곳에 군살이 붙었다. 얼굴에도 볼살이 오통통 쪘다. 뾰족한 얼굴이 타원형이 되니 부드럽고 예뻐 보였다. 그렇지만 군살이 붙어서 예전보다는 옷을 입을 때 신경 쓸 일이 생겼다. 못 입는 옷들도 생겼다. 사람들은 더 쪄도 괜찮다고 했지만 나는 군살이 없는 몸을 더 선호한다. 그래서 군살을 뺄 생각으로 식단 관리를 철저히 했었다. 비만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외로움과 괴로움, 상처, 아픔, 고통, 트라우마로 버티는 힘든 생활을 했지만 사람들은 잘 몰랐다. 나는 힘든 일을 겪거나 힘들어도 내색을 하기보다는 나의 외모를 더 깔끔하고 멋있게 보이고 싶어 한다. 그럴 때는 더 피부에 화장에 옷에 가방에 더 신경을 쓰고 다닌다. 일부러라도 그렇게 하고 다닌다. 성격이고 성향이 그렇다.
그렇지만 나는 진실로 속으로 내가 아름다운 여자, 매력이 많은 여자, 젊은 여자, 깨인 여자로 다시 태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그날을 위해서 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해서 미소를 웃음을 잃지 않으려고 더 노력을 많이 했었다.
외출하기 전에는 반드시 거울을 보고 확인을 했었다. 사진을 또 찍었다. 확인을 했었다. 내가 웃고 있는지를, 슬픈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가 않았다. 나는 웃는 사람으로 행복한 사람으로 살고 싶었다. 나 혼자라도.
거짓 웃음도 약이 되고 치료가 되고 그랬던 것 같다. 웃는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고, 계속 웃었기 때문에 길거리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도 헤어숍에 머리를 하러 갔을 때에도 아이쇼핑을 하러 갔을 때에도 나의 웃음이 어색하게 보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내가 내 사연을 말하지 않는 한, 내 감정을 노출하지 않는 한, 나는 웃는 사람으로 보였다. 당당해 보인 것 같았다. 일하는 여자로 보였다. 퇴직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을까? 아니면 그동안 계속해서 일을 한 여자여서 그런가? 요즘도 어느 곳에 가도 강사인 것 같다는 말을 듣고, 직업인으로 보인다고 한다. 전업주부로는 보이지 않는 것 같다. 대개 풀 착장을 하고, 정장을 주로 입고 단정하게 다닌다.
이제는 사진을 찍기 위해서 노력을 하지 않는다. 사진을 찍어야 할 필요성이 있을 때만 사진을 찍는다. 진짜로 웃고 있고 진짜로 행복하기 때문이다. 살고 싶었던 내 일상으로 살고 있어서 사진을 찍을 필요성을 못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