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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남자들이 있다니! 놀랍다

- 아내한테 꽃을 사주기 위해서 글을 쓴다.

by 김현정

브런치에서 부러운 남자들을 만나게 된다. 속 깊이 사랑하는 남자들의 연애편지 그리고 그들의 진한 사랑

남자들의 사랑이 담긴 글들을 읽을 때면 놀랍다. 이런 남자들이 있다는 게.


나는 초등학생 시절 읽었던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과 다락방에서 읽었던 여자들의 아픔이 담긴 수기 같은 글들, 그리고 그 이후에도 남자 때문에 슬프고 괴롭게 살아간 여자들의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내가 어느 정도 남자를 보는 기준이 생길 때까지는 연애를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여동생도 연애를 하고 있었고 친구들도 연애를 하는데 나는 연애를 하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연애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도 한 번 연애를 해보자.


담배연기를 내 앞으로 뿜어대지 않고 옆으로 고개를 돌려서 담배연기를 내뿜는다. 그래서 그런 배려를 보고 이 남자에 대해 호감을 가졌다. 사랑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옛 선인들이 말하길 착한 게 기본이다. 착하고 바르게 살아라. 나는 권선징악을 배웠다. 그게 사람이 살아갈 길이라고 배웠다. 나는 모태신앙이어서 어린 시절부터 교회를 다녔다. 정직해라. 나는 그렇게 배웠다. 그렇다고 정직하게만 산 것은 아니다. 누구나 다하는 그런 정도의 거짓말은 하고 살았다.



결혼을 하니 월급봉투를 처음 내밀어서 그 월급봉투 위에 적혀있는 금액으로 한 달 월급액을 알았다. 그날 빚이 있다고 했고, 그 빚을 다 갚은 날, 0원이 되면 그때 월급을 다 주겠다, 그때는 알아서 쓰면 된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가 보다. 빚이 얼마인지, 왜? 빚이 있는지 나는 묻지를 않았다. 그렇게 믿은 세월이 16년이다.


16년 동안 그 사람의 월급이 얼마인지 궁금해하지도 않았고 묻지를 않았다. 딱 2번 물어보았다. 남들은 남편 월급이 얼마인지 다 아는데, 나는 모르는 바보여서 물어보았다. 16년 동안에도 빚이 계속 불어나기만 해서 언제쯤 빚이 0이 되나 싶어서, 딱 2번 물어보았다. 억지로 참은 것이 아니라 그냥 나는 믿었다. 그는 필요한 것을 살 때 카드를 주었고, 나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기 때문에 크게 아쉬운 게 없었다. 내가 아이들의 학원비, 생활비를 대고 있었고, 그의 월급은 빚 갚는 것으로 충당되고 있는 줄을 알았다. 나는 그가 빨리 빚을 갚았으면 하는 마음에 내가 버는 돈의 일부도 주었다. 나는 빚이 잘 갚아나가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 저녁 무렵, 아이들의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있을 때 가스 직원 두 명이 와서 가스비가 3개월 연체되었다. 그래서 가스를 끊는다면서 아이들과 내 눈앞에서 가스밸브를 끊어버리고 갔다. 그래서 나는 그날 저녁에 물어보았다. 이게 무슨 일이냐고? 나도 버는 돈이 수월하지 않고, 남편도 좋은 직장에 다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나? 싶어서.


큰 빚이 있었다. 아이들의 학원비부터 시작해서 도처에 작은 빛, 큰 빚 수두룩했었다. 빚을 갚으려면 수입을 알아야 했기 때문에 월급액을 물었고, 그 빚을 진 이유, 그 빚의 금액, 이자 등에 대해서 정확히 알아야 하는데 그는 함구했었다. 욕을 하라고 했었다. 욕을 해서라도 마음을 풀어라, 는 말 같지도 않은 말로 나를 망연자실하게 만들었다. 1년을 싸웠다. 그 당시에 나는 멘붕이었다. 빚을 갚아나가면서도 그 빚을 진 이유를 몰랐었다.

지금도 나는 그 빚이 진 이유를 모른다. 모른 채로 넘어갔었다. 아무리 싸워도 이야기를 하지 않기 때문에.


그때 나는 그를 더 이상 믿지 못하게 되었다. 큰 빚의 금액보다 그가 문제를 만들어 놓고는 문제를 회피했기 때문이다. 월급 2번 물었는 것을 가지고, 2번밖에 안 물어서 월급을 말하지 않았다, 는 것이다.

"2번 밖에 안 물었잖아."

월급을 가르쳐주지 않은 이유를 나의 탓으로 책임전가를 했었다. 남편을 믿은 죄밖에 없었는데, 나는 바보가 되었다. 그리고 나쁜 여자가 되었다. 여자가 거세게 하지 않아서 남자가 그렇다는 오명을 들었다. 그때 처음으로 아이들 앞에서 싸움을 많이 했었다. 그래서 나는 나쁜 엄마가 되었다. 불쌍한 엄마가 되었다. 아이들의 작은 잘못도 크게 꾸짖게 되었다. 남편 때문에 아이들이 더 혼이 났었다. 남자는 믿을 게 못된다. 그런 공식이 생겼다.


그래서 알게 되었다. 남자는 책임감이 있어야 하고, 문제를 만드는 것보다 문제를 잘 해결하는 사람이 좋은 남자라는 것을. 그런데 나는 설거지를 잘해주고 집안일을 잘 도와주는 남자면 다 착하고 좋은 남자라고 착각을 했었다. 설거지를 잘해주고 집안일을 잘 도와주면 좋은데, 경제적 문제를 만들어 놓고도 묻는 질문에 회피하고 전가시키는 대답을 하고 모른척하니, 사람을 환장하게 만드는 그런 비법을 가진 남자였었다. 그 남자의 비법은 묵묵부답이었다.


그 큰 빚을 갚는데 3년이 걸렸다. 그 3년 동안에는 외식을 마트외식으로 했었다. 마트에서 하는 맛보기 체험이 많은 날, 남편과 아이들을 데리고 마트뷔페에 가자고 해서 몇 바퀴 돌면서 배를 채웠다. 아이들이 한창 먹성이 좋을 때였는데 1년 동안은 피자도 치킨도 못 사주었다.


먼 훗날 알게 된 사실은 먹성이 좋은 큰 아이(중1~2)가 결혼식 뷔페식당에 가서 설거지도 해주고 쓰레기도 치우고 하면서 아르바이트를 하였고, 그 돈으로 자기가 먹고 싶은 것을 사 먹었다고 한다. 작은 아이(초4~5)는 신문을 돌려서 용돈을 벌었다. 나는 하루도 쉬지 않고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리고 두유로 김밥 몇 알로 배를 채워가면서 일을 했었다. 그때 나는 무릎슬개골 염증이라는 지병을 가지게 되었다. 발목인대를 다쳐서 쉬어야 하는데 침을 맞으면서도 일을 계속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브런치에 있는 남성 작가님들의 글들을 읽으면 사랑에 대한 나의 생각을 뒤돌아보게 된다.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찾아서 좋아한 나 자신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된다. 지난 4년, 내가 왜 그런 일을 당했냐면 그때와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10개월 동안 실랑이를 하면서 싸운 이유는 본인이 다 알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실질적인 행정 업무 서류에 대해서 절대로 가르쳐주지 않으려고 한 점, 내가 그 서류가 어떤 서류인지 알게 되었을 때 너무나 기막힌 점, 그리고 그 서류를 가르쳐주지 않고 옹고집처럼 군 이유가 또 사람을 환장하게 한 점, 그런 시시콜콜한 이유였었다. 큰돈을 들여서 사업을 하는 남자가 그렇게 시시콜콜한 문젯거리를 만들었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싸울 일도 아닌 것을 갖고 싸우게 만들었다는 게 또 환장할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12살 가시내 같다고 했었다. 내 입장에서는 그런 일로 큰 일을 어긋나게 하지는 않는다. 나는 일을 할 줄 아는 여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평생 이 일을 하면서 나와 늙겠다고 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 일을 용납하기 힘들었다.


"많은 서류 중에 작은 서류다. 종이 한 장이다. 이거 모르면 원장 못하나?"

"가르쳐줘도 저런다."


타이밍 못 잡고, 사업 시작할 때 가르쳐줘야 할 서류이고, 내가 사업을 잘하기 위해서 처음 물었을 때 가르쳐줘었야 할 일이고, 당연히 알아야 할 실질적인 서류에 대해서 그런 식으로 말하는 그를 용납하기가 어려웠었다. 그 이후에도 10개월 동안 그 일로 싸웠을 때 가르쳐줘야 할 일을 갖고 그는 또 책임전가를 했을 뿐만 아니라 사람이 숨 넘어갈 정도로 사람이 바르르 떨려서 죽을 정도로 그런 한심한 어처구니없는 환장할 말만 골라서 했었다.


"왜 아내인 나한테는 그 서류를 묻는 나한테는 이 원장한테는 가르쳐주지 않았냐? 물었을 때 가르쳐줘야지."

"왜 들어왔는지 1주일도 안 된 직원한테는 시킨다는 명목으로 내 눈앞에서 가르쳐줬냐?"

나의 질문에

"그러면 중간에 끊지. 왜 중간에 그만하라고 끊지. 왜 가만히 있다가 지금 말하냐?"

"당신하고의 약속을 잊었다. 약속은 깨려고 있는 거다."

"그 직원 가르쳐 주고 당신 가르쳐 주려고 했다."


일주일도 안 된 직원은 알고 있는, 그것도 그 직원은 묻지도 않았는데, 직접 아내 앞에서 가르친 그가 하는 말은 사람을 꼭지 돌게 만들었다. 나는 아내이고, 원장이고, 실질적인 운영자이고 경영자인데, 이 운영자는 그런 서류를 몰라도 된다니, 나는 6개월을 그가 제 입으로 가르쳐 줄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이 남자는 나를 이 사업에 왜 끌어들였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나를 미치게 만드려고 사업을 한 것 같았다.

"직원은 아는데, 내가 이런 서류도 모른다는 것을 알면 직원들이 뭐라고 하겠냐?"

"뭐, 어때서."

"내 자존심은 생각도 안 하네."

"그게 뭐, 자존심 상하냐? 시시비비 가려보자. 남들한테 물어봐라."


정말 입씨름하기가 힘들었다. 기본 18번이 시시비비 가려보자, 남들한테 물어봐라식이었다. 이 사업장이 4층이라서, 이 사업장에 귀신이 있나? 귀신 씌어 있는 사업장에 들어왔나? 3년 동안 삼재라고 했는데, 이사를 잘못 왔나? 철학관에서 이사를 하지 말라고 했는데, 2년 뒤에 해야지, 삼재가 걸려서 안 좋은 일이 생긴다 했는데, 오만가지 생각이 다 났었다.


10개월은 안 가르쳐주려고 하는 남자와 꼭 알아야겠다는 여자와의 줄다리기 같은 싸움을, 거의 2년은 그 잘못을 시인하지 않고 책임전가 하는 남자(10번 밖에 안 물어서, 매일 안 물어서 안 가르쳐줬다는 식) 때문에 발 동동 굴러가면서 악착같이 누가 이겨먹나? 보자. 기 싸움 같은, 전쟁 같은 싸움을. 나는 사자처럼 싸웠다. 분하고 억울해서 잠도 잘 수가 없었고, 먹을 수도 없었다. 그러면서도 일은 했어야 했었다. 수급자를 모으지 않으면 안 되었다.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었다.


나는 지난 4년을 잊고 살면은 안 될 것 같다. 다시는 그런 일을 안 겪으려면 눈을 부라리고 살펴야 될 것 같다. 지난 4년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될 것 같다. 그 사람 안에는 무엇이 자라고 있을까? 겉은 친절하고 상냥하고 다정한데, 그 사람 속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래서 나는 나를 책임지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오히려 더 쉽고 편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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