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밤 산책 01화

레이먼드 카버의 문장들

by 현율


독서 모임을 위해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소설집 [대성당]을 꺼내들었다. 모임을 위해 읽어두어야 할 글들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열>, <대성당> 이렇게 세 편이었다. <대성당>은 세 번째 반복해서 읽고 있다. 워낙 유명한 작가이니 그에 대한 세밀한 설명을 굳이 꺼낼 필요는 없을 것이다. 미국 중산층 이하 또는 노동자계급의 삶을 있는 그대로(이 말은 조금 되새겨 볼 필요는 있다.) 묘사했다거나, 단편소설의 전성기를 이끌었다는 평들은 익히 알려진 것들이다. 글을 쓰거나 쓰고 싶은 이들은 한번쯤 카버의 소설을 진지하게 접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자신이 왜 레이먼드 카버를 손에 들고 있는지 생각하게 될 것이다. 나를 포함해서.


카버의 간결한 문장들은 그의 문학을 상징하는 이른 바 "미니멀리즘"으로 불린다. 실제로 그의 작품들을 읽다보면 하나의 문장이 상당 부분에서 한 줄을 넘기지 않는 것을 알게 된다. 독자에게 억지로 설명하거나 심지어 설득하겠다는 의지도 없어 보인다. 이건 문장을 늘려나가고, 이어 붙이는 못된 습관에 쩔쩔매던 나에게 꽤 큰 충격이었다. 따라한다고 될 일도 아니었다. 짧은 문장들로 묘사와 서사를 꾸려나간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시도해보고서야 알게 된 일이다. 세상 모든 글 쓰는 이들의 어려운 숙제이다.


서사를 꾸려나가는 작가의 시선은 어떨까. 많은 문학 작품들이 그렇듯 그의 소설들도 상실과 결핍을 다룬다. 하지만 소설 속 인물들이 만나게 되는 위안과 위로는 늘 예기치 않은 곳이나 인물에게서 나온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에서는 어린 아들을 불의의 사고로 잃은 부모가 자신들을 괴롭히던 빵집 주인에게 분노하며 달려간다. 하지만 그 누구에게서도 얻지 못한 위로를 그에게서 받게 된다. <열>에서는 아내로부터 비참하게 버림받은 남성이 등장한다. 그에게 치유와 위안을 주고 삶의 동기를 부여하는 인물은 정작 배신한 아내가 보낸 베이비시터이다. 또 <대성당>의 경우는 어떤가. 아내에게는 영혼의 친구가 있다. 그리고 어느날 그를 집으로 초대하는데, 그는 나이들고 앞을 못보는 맹인이다. 남편은 그에게서 심한 질투심을 느끼고 심지어 조소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그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눈을 감고 세상을 바라보는 경험을 그 맹인에게서 얻게 된다. 카버는 독자들에게 파티를 하면서도 은행 빚을 걱정하거나, 사랑하지만 언젠가 지겨워지지 않는지 수시로 묻는다. 삶이 생각보다 장밋빛이 아니란 것을 일깨운다. 그리고 우리 모두 잘 안다. 따뜻하고 밝은 곳을 바라보는 우리 등 뒤에는 수시로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는 사실을. 카버의 소설들이 꺼내는 위안과 치유도 결국 우리 삶의 내부에 있다는 사실과 함께.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중 기억에 남는 문장들. 섬세한 인물의 내면 따라가기, 그리고 간결한 문장들로 중요한 시점 만들기.


그들은 종일토록 기다렸으나, 아이는 깨어나지 않았다. 가끔 한 사람이 커피를 마시려고 아래층에 있는 카페테리아에 가기도 했으나, 이내 아이의 일이 떠올라 죄를 짓는 듯한 기분이 들어 테이블을 박차고 허겁지겁 병실로 돌아왔다.

......

그들은 롤빵을 먹고 커피를 마셨다. 앤은 갑자기 허기를 느꼈는데, 그 롤빵은 따뜻하고 달콤했다. 그녀는 롤빵을 세 개나 먹어 빵집 주인을 기쁘게 했다. 그리고 그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신경써서 귀를 기울였다. 그들은 지치고 비통했으나, 빵집 주인이 하고 싶어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열’ 중 기억에 남는 문장들. 실제로 현실에서 따뜻한 말을 건네는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접속사와 형용사가 뒤범벅된 문장으로 위로하는 사람을 현실에서 본 적 있는가?


“계속해요.” 웹스터 부인이 말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지 나는 알아요. 계속 말하세요, 칼라일씨. 때로는 그렇게 다 말하는 게 좋을 때가 있어요. 때로는 말해야만 하는 거라우. 게다가, 나도 듣고 싶어요. 다 말하고 나면 기분이 한결 가벼워질 거예요. 나한테도 있었던 일이니까요. 당신이 말하는 그런 일. 사랑이라는 거. 바로 그 얘기 말이우.”

......

바로 그때, 창가에 서 있을 때, 그는 그렇게 뭔가가 완전히 끝났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일린과 관계된, 이전의 삶과 관계된 그 무언가가.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든 적이 있었던가? 물론 그랬을 것이다. 그랬다는 것을 안다. 비로 지금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하지만 그는 이제 모든 게 끝났다는 걸 이해했고 그녀를 보낼 수 있다고 느꼈다. 그는 자신들이 함께한 인생이 자신이 말한 그대로 이뤄졌다는 것을 확신했다. 하지만 그 인생은 이제 지나가고 있었다. 그 지나침은-비록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아서 그는 맞서 싸우기까지 했지만-이제 그의 일부가 됐다. 그가 거쳐온 지난 인생의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대성당’에서 눈길이 가는 문장들. 중요한 시점에 인물의 심리를 전하는 간결하고 강렬한 묘사들.


마침내 아내는 맹인에게서 눈을 떼고 나를 바라봤다. 그다지 맘에 들지 않는 걸 바라보는 눈길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앞을 못 보는 사람을 내가 개인적으로 알거나 만나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

하지만 나는 눈을 감고 있었다. 조금만 더 그렇게 눈은 감은 채로 있자고 나는 생각했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어때?” 그가 물었다. “보고 있나?”

나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우리집 안에 있었다. 그건 분명했다. 하지만 내가 어디 안에 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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