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싱아를 누가 다 먹었을까>와 <새의 선물>
지금은 작고하신 박완서 작가님의 <그 많던 싱아를 누가 다 먹었을까>. 이 책을 처음 알게 된 건 역시 2000년대 초반에 방송됐던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를 통해서였다. 당시에는 마치 온 국민이 아무리 못해도 이 책만큼은 다 읽었다고 생각될 정도로 이 책은 그 방송이 누렸던 인기의 상징과도 같았다. 인기가 그 정도라면 나 역시 한 번은 볼 법도 했지만 난 그러지 않았다. 애초에 책에 관심이 없었다는 사실은 차치하더라도 당시에 이 책에 손길조차 건네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 대중적인 인기 때문이었다. 희소성이 곧 특별함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던 어린 시절이었다. 게다가 상어로 잘못 봤던 싱아라는 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알지도 못하는 데 왜 나는 입 안에는 침이 고이는 걸까? 의문이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후 여전히 나는 '싱아'라는 단어로 그 책을 기억했다. 그동안 나는 이 책의 완전한 제목을 한 번도 내뱉어본 적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싱아’라든지, ‘그 많던 싱아’라든지, ‘그 많던 싱아를 누가 먹었냐’라든지 매번 제 멋대로 말하면서도 ‘싱아’라는 단어는 한 번도 빼먹은 적이 없었다.
최근에 이 책을 읽어보기로 했다. 문득 ‘그때는 읽고 싶지 않았는데 왜 지금은 읽고 싶은가?’라는 의문이 스쳤다. 그러나 의문을 가질 필요 없이 그냥 이제야 이 책을 읽을 때가 된 것뿐이었다.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전에 그동안 상상의 존재 같았던 ‘싱아’의 정체는 알고 가는 것이 도리일 것 같았다. 웹 백과사전에서 설명을 읽고 이미지를 눌러 잠시 살펴보던 중이었다. 나도 모르게 어? 하는 소리가 나왔다. 문득 오래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비로소 나는 싱아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야 싱아를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
그건 아마도 내가 다섯 살 무렵이었을 것이다. 그 기억 속에서 할머니는 시골집 뒤쪽의 산비탈 어딘가에서 푸성귀 따위를 캐고 있었고 나는 할머니 옆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그러다 할머니는 가만히 구경하던 내게 연하고 푸르면서도 발그레한 빛깔을 띠는 웬 줄기 하나를 건넸다. 할머니는 흙 묻은 목장갑을 낀 채 직접 앙앙 씹는 시늉을 하면서 내게 한번 씹어보라고 했다. 낯선 풀떼기를 씹는 건 다소 경계됐지만 호기심이 생기는 일이기도 했다. 나는 할머니 말대로 그 풀떼기를 입으로 가져가 조심스럽게 씹었다. 그 순간 입 안에서 까드득하는 소리와 함께 싱그러운 물이 터져 나왔다. 순간 나는 눈이 동그랗게 된 채 할머니를 보며 반색했고 할머니 역시 나를 보며 웃었다. 여전히 그 싱그러운 맛이 생생했다. 그리고 그때 할머니가 내게 건넨 상큼한 줄기의 정체에 대한 의문과 싱아가 도대체 무엇이냐는 의문이 동시에 풀리는 순간이었다.
이 책을 읽기 몇 달 전 은희경 작가님의 <새의선물>을 읽었다. 살아보지도 않은 시대를 그리워하는 감정이 들 만큼 한동안 그 책에 빠져 있었는데, 그건 그때까지 한국근대사의 삶을 이야기하는 문학이라면 피하고 봤던 내 편견적 선호가 깨지는 일이기도 했다. 비록 한국의 근대문학을 처음으로 접했던 배경이 중고등학교 교육과정에 의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건 마치 내 양팔이 묶이고 귀, 코, 입이 막힌 채 눈앞에 있으니 어쩔 수 없이 봤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마음에서 우러나는 자발성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었다. 따라서 심정적으로는 얼마 전 <새의선물>의 첫 장을 여는 순간이야말로 내가 한국의 근대문학을 처음으로 접한 것이라고 느낄 정도이니 개인적으로는 아주 대단한 변화가 내 안에서 일어났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건 <그 많던 싱아를 누가 다 먹었을까>를 읽게 된 경위이기도 했다. <새의선물>을 읽으면서 ‘이 장면에서의 화자의 마음은?’ 내지는 ‘이 글의 주제는?’ 따위의 답답한 틀에서 벗어나 비로소 온전하게 자유로운 감상이 가능하다는 자신감이 들었던 것이다.
은희경 작가님과 박완서 작가님의 연세를 고려하면 각자는 내게 어머니뻘, 할머니뻘인 분들이다. 그래서일까 두 책을 읽으면서 엄마와 할머니가 어떤 시대에 살았을지 짐작하며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나는 그들의 시대에서 어머니와 할머니가 느꼈을 삶의 고단함을 짐작했다. 연민까지 느꼈다면 불경한 소리가 될지도 모르지만 애처롭고 짠한 마음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두 책의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서 <새의선물>은 그렇진 않았지만, <그 많던 싱아를 누가 다 먹었을까>의 경우에서는 왠지 작가님을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충동이 강하게 들었다. 그건 단지 일시적으로 감화된 감정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이제는 그럴 수 없다는 현실 때문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면 내게 싱아를 건네던 할머니가 떠올라서였을까? 모두 다 해당되는 이유인 걸까? 책을 다 읽은 그날 나는 유일하게 가지고 있던 할머니의 사진을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