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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성의 머리 위에서 전류가 튀었다.
"지금 그 사진!"
그가 외치자 컴퓨터 화면이 정지되었다.
그는 손을 한 차례 들어올리고, 옆의 복사기로 손을 옮겨 뻗었다. 실험실의 사람들의 시선이 복사기를 향했다.
그러자 복사기에서 고유리의 드림 하우스—그녀가 꿈꾸던 펜트하우스의 사진이 출력되기 시작했다.
사진이 복사기에서 출력되는 동안, 전우성은 실험실 안을 빠르게 둘러보았다.
전우성은 이시연을 쳐다보았다.
"이시연, 너 액자 써도 돼?" 전우성이 말했다.
이시연은 전우성의 말을 알아듣고 방에 걸린 개인 포스터가 담긴 액자를 떠올렸다.
"응, 써!" 그녀는 즉시 허락했다.
전우성은 복사기에서 출력된 펜트하우스 사진을 움켜쥐고 빛의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랐다.
불꽃이 튀며, 그가 떠난 자리에는 잔여 전기가 남았다.
실험실 화면 속에는 방에 도착한 전우성의 모습이 보였다.
고유리는 태블릿을 뒤에 고정시키고 타이머를 맞췄다.
찰칵 소리가 들리며 그녀의 뒷모습이 카메라에 담겼다.
고유리는 태블릿에서 디지털 페인팅 앱에 들어갔다.
그녀는 앱에서 그녀가 보았던 펜트하우스 사진을 불러들였다.
앱 안에는 그녀가 오래전부터 꿈꿔왔던 펜트하우스 사진이 떠올랐다.
거대한 유리창을 통해 보이는 화려한 도시의 야경, 책상에 놓인 술, 세련된 가구들, 고급스러운 인테리어…
그녀의 모든 욕망을 담은 집이었다.
펜트하우스 사진이 앱 화면에 꽉 차자, 그녀는 곧바로 방금 찍은 자신의 뒷모습을 불러들였다.
이제 그녀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사진 속 배경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뒷모습만 남은 사진은 이제 펜트하우스 안에 자연스럽게 배치되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
고유리는 조심스럽게 손을 움직여, 화면 위, 자신의 몸 비율을 펜트하우스 사진에 맞추어 조정했다.
작은 세부 사항들까지 하나하나 신경 쓰며, 사진 속 그녀가 고급스러운 의자에 앉아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재단했다.
그녀는 이제 디지털 세상에서 현실감을 만들어내는 마법사가 되어 있었다.
수정을 마치고, 그녀는 심혈을 기울인 결과물을 뿌듯하게 바라보았다.
이제 사진 속에는 펜트하우스의 고급 컴퓨터 앞에는 그녀가 앉아있었다.
고유리는 뿌듯하게 완벽하게 배치된 자신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 위에 설명을 써넣었다.
'내 집.'
그리고 저장 버튼을 눌렀다.
그 다음 순간, 그녀의 앞에는 펜트하우스에 있는 커다란 모니터가 들어왔다.
그녀는 기쁨의 미소를 지었다.
고유리가 아직 깨닫지 못한 진실이 있었다.
그녀가 화면 속에서 구축한 이 완벽한 세계는, 전우성의 작은 개입으로 인해 흐트러진 채였다.
고유리의 태블릿 속 펜트하우스는 이미 현실 속에서 조작된 일부로 변형된 상태였다.
전우성의 목소리가 고유리의 귀에 들려왔다. 차가운 그의 목소리가 그녀의 세상을 뒤흔들었다.
"너는 적록색맹이 있어."
고유리는 순간 얼어붙었다. 전우성의 목소리는 마치 방 안의 공기를 가득 채우는 듯, 벽 너머에서 들려왔다.
"펜트하우스에서는 잔에 레드 와인이 담겨 있었겠지만, 지금 네 옆에 보이는 건 연두색 압생트야."
고개를 돌리고 싶었지만, 목이 굳어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오로지 눈만 옆으로 돌려 잔을 쳐다보았다.
그녀의 눈이 경악으로 가득 찼다.
전우성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왔다.
"그리고 연두색 압생트가 있는 풍경은 내 방에 걸려있는 초현실주의 화풍의 그림이지."
전우성은 방에서 액자에 걸린 그림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림에는 한 여성이 뒤를 돌아 있는 채로, 컴퓨터 앞의 고급스러운 의자에 앉아있었다.
고유리는 고개를 돌리려고 부단 애를 썼다.
하지만 고개는 돌아가지 않았다.
그녀의 앞 얼굴에서는 땀이 비오듯 쏟아지기 시작했다.
"상상과 현실의 경계가 흐려질수록, 그 경계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는 위험을 알았어야 했어."
전우성이 말했다.
고유리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그녀의 뒷모습에는 어떠한 변화가 없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현실 속에서 메아리치지 않았다.
그녀의 뒷모습은 여전히 그림 속에 묶인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가 아무리 몸부림쳐도, 그 모습은 그림 속 고급 의자에 앉아있는 여인으로 남아있을 뿐이었다.
전우성은 번개의 속도로 날아 고유리의 집을 들어올려 우주 공간으로 밀어냈다.
이제 그녀의 집은 아득한 지구 너머의 공간을 향해 빛의 속도로 날아갔다.
다음 날, 정상 등교한 학교에서 정이나는 전우성을 만났다.
"잘 해결됐다고 들었어," 그녀는 말을 잠시 멈췄다가 다시 이어갔다. "하지만 아빠가 어떻게 해결되었는지는 말해주지 않더라."
전우성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번개는 아프진 않았어?"
정이나는 그가 들판에서 번개를 맞았을 때의 모습을 떠올리며 물었다.
그것이 아프지 않았기를 바라는 듯한 그녀의 목소리였다.
전우성은 다시 고개를 끄덕이고, 그녀에게 웃어보였다.
국어 시간, 수행평가 발표가 이어졌다. 그들이 준비한 인어공주 영상은 반 친구들 사이에서 뜨거운 평가를 받았다.
학생들은 정이나의 우아한 수영 장면에서는 입을 떡 벌렸고,
전우성의 표정 연기에서는 꼴깍 침을 삼켰으며,
이시연의 등장에는 박수를 치며 열광했다.
종례 시간, 김지현 선생님이 말했다.
"다음 주 월요일은 아쿠아리움에서 만나요."
수업을 마치고 정이나는 전우성을 따라왔다.
"시연이 언니랑 같이 맛있는 거 먹자."
집에 들어왔을 때, 전우성의 방 안에는 정이나가 못보던 그림이 걸려있었다.
기묘하고도 우아한 여성의 뒷모습과,
압생트가 담긴 연두색 잔과 펜트하우스 풍경이 보였다.
"이야, 인상적이네." 정이나는 놀라운 듯 물었다. "작품 이름이 뭐야?"
전우성은 그림을 잠시 쳐다보다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덫…"
정이나는 그가 너무 낮게 말했는지, 다시 되물었다.
"뭐라고?"
전우성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더ㅊ, 친해져서 좋, 좋아, 우, 우리가."
전우성은 그녀에게 방긋 웃어보였다.
정이나는 그가 평소와 다름없이 말을 더듬는 모습을 보고 다시 웃음을 지었다.
그때, 이시연이 방으로 들어왔다.
"아쿠아리움 사전 탐방 영상 컨텐츠 찍고 왔어."
그녀는 카메라를 들어보였다.
정이나가 외쳤다.
"빙수 먹으러 가자!"
그들은 그렇게 함께 방을 나섰다.
그리고 압생트가 있는 풍경이 걸린 전우성의 방 안 침대에는 여전히 주지영이 잠들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