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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깜지 Oct 03. 2024

첫사랑이 캠퍼스 로맨스라 다행이야

<1부> 사랑과 낭만에 관하여

 사랑에 대한 나의 첫 번째 낭만은 대학생의 사랑, 바로 '캠퍼스 로맨스'이다. 고등학교 때 꿈꿨던 캠퍼스 로맨스를 이루고자 열심히 공부하여 목표하던 대학에 겨우 진학할 수 있었다. 나의 모교는 송도신도시의 신축 부지로 이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학교로써 모든 건물과 인프라가 신식인 아주 멋들어진 학교였다. 부지가 넓다 보니 건물이 전체적으로 층수가 낮았으며 모양새는 주변 풍경들과 제법 잘 어울렸다. 특히 바다 끝 쪽에 위치했기 때문에 학교에서 바다(정확히는 항구)를 직접 볼 수 있는 낭만적인(대학 동기들은 충격적이라 했다) 모습까지 간직하고 있었다. 여기까지가 나의 낭만적인 시선으로 본 학교의 모습이고 대학 동기들은 건물과 풍경이 이쁜 것과 별개로 주변 편의시설(특히 술집)이 당시에는 많이 들어오지 않아 불편하다고만 했었다. 그러나 나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나의 아름다운 캠퍼스 로맨스를 이루기 위해서는 여기만 한 학교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의 모교를 1순위로 지원한 이유도 캠퍼스의 이쁜 모습이 한 몫하기도 한 건 엄연한 사실이다. 나의 부족한 미적 감각을 공간이 대신 채워주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지원했었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밑그림은 끝냈다. 내가 생각한 이상적이고 로망적인 환경도 캠퍼스란 캔버스에 모두 담았다. 이제 로맨스란 그림으로 완성만 할 수 있으면 되었다.


 낭만은 목표가 아니기 때문에 굳이 애써서 연애를 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저 자연스럽게 내게 기회가 찾아오길 기다릴 뿐이었다. 기다림도 낭만이기에. 그렇게 첫 학기는 그저 즐거운 대학생활을 즐기느라 정신이 없어 특별한 로맨스를 느낄 새도 없이 시간은 지나갔다. 그렇게 대학에서의 첫 학기가 끝나고 방학을 지나 2학기가 찾아왔다. 대학교에서의 방학은 매우 길었기에 대학 동기들과 연락을 하지 않고 지낸 기간도 그만큼 길었다. 조금의 어색함과 반가움이 교차하는 시간이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오랜만에 친구들을 보자 그동안 잊고 있었던 설렘의 감정이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싱숭생숭함이 내 마음을 뒤덮기 시작했다. 가을이 찾아와 더욱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곧 이 감정은 누구 때문에 발현되었는지 금방 알 수 있게 되었다. 평소 나와 친하지 않았던 그녀 '제이', 훗날 나의 첫사랑이 될 그녀가 내게 찾아와 말을 건넸다.


 그녀와의 연애 스토리를 구구절절 쓸까 말까 지우고 쓰고 반복하다 보니 결국 이곳에 남기기로 했다. 20살 대학생의 풋풋하면서도 어리숙한 어린아이 같은 모습을 지금이 아니면 다시 떠올리기 힘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의 가장 소중한 보물함 속 추억을 끄집어내 이곳에 내 서사를 기록하고자 한다. 첫사랑이었던 '제이', 그녀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녀를 처음 본 그날은 여전히 잊지 못한다. 1학기 개강 전에 진행된 행사였던 OT에서 그녀를 처음 본 순간이었다. 그녀는 우리 또래 대학교 동기들과는 전혀 다른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냉미녀의 기질을 타고났던 그녀의 눈매는 차가웠으며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녀는 어색하게 웃으며 사람들 속에 위치했지만 난 그녀에게 눈을 떼놓을 수가 없었다. 전혀 설명이 되지 않는 몽환적인 그녀의 모습에 매료되었었다. 그녀의 웃음은 생존에 가까운 버거운 웃음이란 걸 난 그때서도 느낄 수 있었다. 겉으로 내색하진 않았지만 속으론 그녀에게 전혀 정체를 알 수 없는 연민의 정을 품고 있었다. 이런 나의 첫인상과 별개로 대학교 동기들과 그 외 몇 선배들은 이쁜 신입생이 와서 신나게 환영하는 분위기만 연출했었다. 그렇게 그녀는 대학생활의 첫 시작부터 주목을 받았었다. 그런 그녀의 수려한 외모와는 별개로 입고 왔던 옷은 빨간색의 촌스러운 겨울 점퍼였다. 아직은 고등학생 티를 벗지 못한 그저 가녀리고 순수한 소녀였다. 


 그녀는 확실히 사람들과 어울리는 성격은 아니었다. 1학기 때 가장 중요한 행사인 MT를 참석하지 않아 한창 친해질 시기에 그녀는 동기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1학기 내내 그녀와 대화해 본 것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동기들도 조금씩 그녀의 어두운 모습을 눈치챈 것 인지 억지로 그녀와 가까이 지내려고 하지 않았다. 1학기때의 모습은 그러했다. 그러나 2학기가 시작되자 그녀는 전혀 다른 표정을 하고선 내게 찾아온 것이었다. 나를 포함해서 주변 모두가 당황했을 정도로. 


  사실 그녀가 내게 찾아온 이유는 지극히 비즈니스였다. 내가 서빙 알바로 일하던 식당에서는 나와 함께 일할 새로운 아르바이트생이 필요했었다. 그래서 2학기가 시작되자마자 나는 강의실에서 열심히 함께 일할 사람을 찾던 중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내게 같이 일하자고 제의할 줄은 상상도 못 했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거절할 이유는 전혀 없었기 때문에 그녀의 제의를 수락했다. 그렇게 그녀와의 서사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확실히 그녀는 조금 달라져있었다. 어두운 표정은 조금은 그녀의 얼굴에서 떠나 있었고 한층 밝은 모습으로 사람들과 어울렸었다. 그래서 그녀는 조금씩 천천히 동기 모임들과 어울리게 되었고 학교 행사에서도 열심히 참여했었다. 이와 별개로 나는 그녀와 일을 같이하면서 더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서로의 집도 같은 동네였기 때문에 일이던 수업이던 항상 그녀와 같이 집에 돌아가곤 했다. 그녀와 많은 대화를 나누며 내가 몰랐던 그녀의 참모습도 알게 될 수 있었다. 그녀는 전혀 차가운 사람이 아니라는 걸. 


 어느 날 그녀는 내게 고맙다고 말해주었다. 본인은 낯을 많이 가려 사람을 사귀는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 덕분에 학교 생활에 적응하고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어 고맙다고 말해준 것이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내가 도움이 되었을지언정 너는 원래 따뜻한 사람이니까 꼭 내가 아니어도 문제없을 거라고 말해주었다. 그렇다. 그녀에 대한 나의 차가운 시선은 오래가지 않았었다. 그녀는 내 생각과는 다르게 더 마음이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이었다. 검소하며 과하게 겉을 꾸미지 않는 수수한 사람이었다. 그녀와 학교생활부터 알바까지 자연스럽게 같이 지내다 보니 천천히 그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녀가 나와 함께 있을 땐 내게 더 솔직한 모습을 자주 보여주었다. 나도 그녀와 함께 있을 때 대학교에서의 어느 정도 가식 있는 모습이 아닌 동네 친구에 가까운 더 편하고 솔직한 모습으로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 시점 나는 그녀에게 어떠한 연애적 감정이 아닌 정말 친한 친구로서의 감정을 품고 지내었다. 사랑의 감정을 품기에는 아직은 성장이 멈춘 것인지 아니면 정말 그녀를 친구로 생각한 것인지 그때의 나는 알 수 없었지만 정말 나의 친한 고등학교 친구들을 볼 때만큼 그녀가 편하고 좋았다. 그리고 그녀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느 날 그녀가 내게 집 근처 파리바게트에 들려 같이 빵을 먹으며 대화하다 들어가자고 했다. 그동안 집에 들어갈 때만큼은 다른 길로 새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밥이나 술을 먹자는 것도 아닌 빵을 먹자는 그녀의 악의 없이 순수하며 우정스러운 제의는 날 정말 친한 친구라고 생각해 준 것 같았다. 그리고 나 역시 그녀도 그저 평범하고 순수한 갓 스무 살의 소녀스러운 모습에 이것이 우정임을 어렴풋이 느꼈었다. 그러나 갑자기 그녀의 수수하고 순수한 모습에 나는 순간 낭만적인 사랑을 느껴버렸다. 가끔 사랑이 찾아오는 건 교통사고처럼 예측하지 못한 순간에 치고 간다고 하는 것처럼 정말 말도 안 되게 순간적으로 우정에서 사랑으로 바뀌었다. 화려하지 않지만 순수하며 기품 있는 그녀의 매력적인 모습에 나는 이미 매료되어 있었고 사랑의 도화선이 불붙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내가 바라던 낭만적 이상형에 가장 부합한 사람이 바로 그녀임을 확신했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순수하고 이상적인 형태의 사랑. 서로 커피 한 잔 또는 빵 하나를 두고서도 행복하게 대화를 나누며 사랑을 교류하는 그런 사랑. 궁상이 아닌 낭만으로 느끼는 그런 사람. 바로 그녀였다.


 그러나 나는 친구 사이를 깨트리고 싶지 않아 내 마음을 표현하지 못했다. 혹시라도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면 거절당하는 건 둘째치고 그녀를 포함한 모두와 불편해질 수 있다는 불안감에 스스로가 동요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미 그녀는 내게 이렇게 말하기도 했었다. '나는 처음부터 너와 가깝게 지내고 싶었다? 왜냐하면 나는 내향적인 성격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게 어렵지만 어째서인지 너는 보고만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져. 마치 친한 친구와 마음 놓고 있는 것처럼 말이야. 너의 그 서글서글한 외모 때문일 수도 있지만, 하하'


 그렇게 2학기가 끝나고 다시 방학이 시작되었다. 방학 때도 계속 알바를 했기 때문에 그녀와는 매일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특히 알바가 끝나면 오후에는 시간이 모두 비기 때문에 사실상 그녀와 자연스럽게 데이트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친구'라는 단어만 빼면 완벽한 '썸'일 수 있으나 나는 온전하게 달콤한 설렘을 느끼다가도 아슬아슬한 줄타기에 항상 불안해하며 지쳐 있었다. 우연히 그녀의 친구가 우리가 함께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는데 그 친구는 나에게 너희 대체 왜 안 사귀냐면서 나에게 핀잔을 주었다. 나는 웃으며 넘겼지만 마음속으로는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때 그녀의 표정은 매우 어두웠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렸던 내가 답답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어렸기에 모든 것이 조심스러워 막상 마음을 여는 것이 쉽지는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이러한 번잡한 내 마음에 대해 해답이 될 수 있을까 싶어 집에 돌아와 내게 처음으로 연애와 사랑에 대한 첫 낭만을 선물해 준 '핑크 레이디' 웹툰을 다시 한번 정독했다. 남주인공 '윤현석'과 여주인공 '한겨울'은 서로 사랑하지만 각자의 미술 작가로서의 성공이라는 꿈과 대의를 위해 헤어지는 결심을 했지만 결국 사랑을 이기지 못했다. 상황은 다르지만 나 역시 타인의 시선과 관계라는 대의를 위해 나의 사랑을 포기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타인과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내가 꿈꾸던 사랑보단 중요치 않았다. 그 어떤 것도 사랑의 가치를 이기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두려워했던 나를 반성하며 그녀에게 마음을 표현하고자 결심했다.


 다음날 그녀에게 용기를 내 오후에 알바를 끝내고 로맨스 영화를 보자고 했다. 이승기, 문채원 주연의 '오늘의 연애'였다. 마침 이 영화도 오랜 친구 사이에서 연인으로 이어지는 내용을 담아 기분이 참 묘했었다. 영화를 보고 식사를 마친 후 아름다운 야경이 호수의 수면에 반짝이게 비치는 센트럴파크에서 그녀에게 내 마음을 전달하고자 했다. 그러나 날씨가 추워질 대로 추워서 밖에서 오랜 시간 서있기가 힘들었고 특히 막상 입이 떨어지지 않아 그대로 집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스스로 멋없는 나의 모습에 실망하고 자책하며 말없이 그녀와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녀에게 작별 인사를 한 후 버스에서 먼저 내렸다. 그 순간에도 먼저 그녀를 보낸 것에 대해 후회하고 있었다. 쉽게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용기를 내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너에게 할 말이 있으니까 너네 집 앞으로 갈게. 알지? 금방 가는 거. 조금만 기다려줘'.


 그녀의 집 앞으로 가 드디어 그녀에게 고백했다. '아까는 주저해서 미안해. 그동안 너도 날 편안한 친구라 생각했으니 이 관계가 깨질까 봐 주저했지만 이제는 널 좋아하는 마음이 더 커졌기에 고백할게. 나랑 사귀자'.

지금은 당시의 기억이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비슷한 뉘앙스로 고백했었다. 그리고 그녀는 나의 고백을 받아주었다. 그녀는 내가 너무 고백을 안 하길래 본인이 고백하려고 마음먹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도 먼저 고백해 줘서 고맙다고 했었다. 나는 그녀에게 너도 날 친구 이상으로 생각한 건지 궁금해서 물었을 때 그녀로부터 핀잔을 들었다. 당연히 널 좋아하니까 따라다녔다고. 그렇지만 급하게 마음을 표현하지 않고 신중하게 기다려주고 배려해 주는 그런 모습이 더 맘에 들었다고 말해주었다. 기다림은 낭만이니까 널 위해서라면 평생도 기다려줄 수 도 있다고 말해주며 그런 그녀에게 미안하고 고마워 추운 겨울 그녀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모든 첫사랑이 그러한 것처럼 모든 것이 서툴렀었다. 우리가 그리던 그림이 어린아이가 낙서한 그림처럼 엉망진창이었다. 그러나 어린아이의 순수한 그림을 감히 어른이 지울 수 없는 것처럼 우리의 사랑은 그 누구보다 순수하고 낭만스러웠음을 자부할 수 있었다. 매번 아름다울 순 없었고 상처도 고통도 따른 그림 그리기였지만 적어도 처음 흰 도화지에 서로 크레파스를 들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순간만큼은 백색 도화지만큼 찬란히 희고 빛나고 있었다. 순수한 어린 시절처럼. 내가 좋아하는 '핑크 레이디' 웹툰의 현석이와 겨울이 처럼 타인의 시선과 세상의 틀에 옭아 매여 사랑을 포기하는 것이 아닌 사랑의 가치를 더 우선하여 같은 그림을 그리는 낭만적인 사랑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런 낭만적인 사랑을 할 수 있어서 그리고 첫사랑의 낭만이 캠퍼스 로맨스라 다행이라 생각했다. 아름다운 학교의 풍경과 노을빛이 우리를 비추고 있었다. 그렇게 낭만에 물들어가고 있었던 20살의 끝, 21살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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