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사랑과 낭만에 관하여
마지막 여자친구(글 쓰는 시점 기준)였던 나나는 광적인 커피 중독, 즉 '카페인 홀릭'이었다. 커피가 좋아서 카페를 직접 차려 매일 매 시간 커피를 마시는 게 꿈이었다고 할 정도로 좋아했다. 처음에는 나도 커피를 좋아해 서로 취향이 잘 맞아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나는 나만의 규율이 있었다. 커피는 하루에 한잔만!. 어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단지 많은 사람들이 하루에 한 잔 정도 먹는 게 일반적이니까 나도 비슷한 느낌이지 않을까 짐작만 해볼 뿐이다. 주량처럼 스스로 정한 적당량의 정도를 정해둔 것 따위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커피는 하루에 두 잔 이상 먹는다 해서 특별히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물론 잠을 잘 못 자게 될 수 있다. 그마저도 카페인이 몸에 잘 맞는 내겐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지만 말이다.
그런 일반적인 주류의 사람들과는 다르게 그녀는 무려 하루에 세 잔을 마시는 기염을 토해냈다. 그런데 그 주기가 단순히 아침, 점심, 저녁 식사를 마치고 식후에 먹는 주기를 따르는 것이 아니었다. 주기마저 불규칙하다. 카페에 와서 커피를 마신 지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집에 가기 전 추가로 한 잔을 테이크아웃 해가는 그런 내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특히 산미가 거의 없는 구수한 바디감이 듬뿍 느껴지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고집했다. 커피에 대한 자신만의 세상이 따로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시는 시점도 정해진 때 없이 자유롭게 마시고 싶을 땐 언제든지 찾아서 마셨고 취향도 한결같았다. 자신만의 독특하고 확고한 생활습관이 짙게 배어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녀의 세계에선 그녀의 법을 따라야 했으므로 나도 그녀처럼 불규칙하고 자유로이 항상 같은 향을 내뿜는 커피를 마시게 되었다.
정서가 다소 불안정했던 그녀에게 있어 커피의 카페인은 그녀를 위로해 줄 유일한 수단이었을까. 카페 사업이 망해 커피가 미웠을 법한데도 그녀는 커피와 집착에 가까운 사랑을 하고 있었다. 처음엔 나도 그녀와 같이 마셔주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몸이 거부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녀는 절대 내게 강요하지 않았지만 어째서인지 다른 음료를 마시고 싶지는 않았다. 카페인의 과다 복용으로 인한 쓰린 속을 참아가며 그녀의 쓰린 감정을 공유하고 싶어서일까.
그러나 몸이 거부반응을 일으키자 처음으로 나는 그녀에게 커피를 줄여보자고 제안했다. 일단 하루에 커피 값만으로도 지출이 매우 크기도 했고 분명 건강에도 좋은 건 아니니까 그렇게 해보자고 말했다. 이러한 결심은 정확히 하루도 지켜지지 못했다. 이미 그녀의 주변 사람들은 그녀가 커피 없이 사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알기 때문에 우리가 직접 사 마시지 않더라도 그녀에게 커피를 주고 간 사람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담배나 술도 중독자들에게 끊으라고 하는 것이 절대 쉬운 일이 아닐 텐데 내가 너무 카페인을 얕봤던 것이다. 하마터면 나는 '카페인 홀릭'이었던 그녀에게 소중한 것을 빼앗은 파렴치한이 될 뻔했다.
결국 그녀와 지내면서 나도 하루에 커피를 세 잔씩 먹는 '카페인 홀릭'이 되어 있었다. 많이 마시는 게 싫으면 안 마시면 그만일 뿐인데도 나는 그렇지 않았다. 그녀를 닮고 싶었다. 그녀와 모든 것을 나누고 싶었다. 그녀와 함께하는 시간에 커피는 논외일 수 없으니 기꺼이 받아들이고자 했다. 그녀를 사랑했기에. 그렇다. 나는 '러브홀릭'이었다.
아이는 사랑하는 엄마의 모습을 모방하려 한다. 사랑은 아이의 순수한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랑에 푹 빠진 사람은 결국 사랑하는 이에게 중독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랑하는 이의 행동과 생각을 함께 공유하고 닮고 싶어 한다. 사랑하면 그런 욕구들이 생겨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물론 서로에게 너무 악영향을 끼치는 행위들은 지양해야겠지만 커피 세 잔 정도로 내 삶이 파괴되는 것은 아니니까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녀와 헤어진 뒤로 지금은 그때처럼 커피를 하루에 세 잔씩 먹지는 않는다. 그러나 오히려 하루에 커피를 세 잔씩 마시며 카페인에 절여져 있던, 카페인 홀릭이었던 그때가 생기는 더 넘쳐흘렀다. 카페인의 각성 효과 때문만이 아니었다. 사랑에 절여져 있던, 러브홀릭이었던 그때의 내가 행복했기 때문이다. 모든 걸 닮아가려 노력했던 사랑에 중독된 그 시절을 그리워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