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사랑과 낭만에 관하여
첫사랑이었던 제이와 본격적으로 캠퍼스 로맨스를 즐기게 되었다. 대신 캠퍼스 로맨스를 시작하기에 앞서 대한민국 남자라면 피할 수 없는 군대가 있었기 때문에 그녀와의 로맨스라는 그림을 캠퍼스란 캔버스 위에 그리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기에 당장은 미룰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시한부 인생처럼 일 년 남짓 정도 남은 기간 동안 그림을 그려내야 했었다. 물론 그녀와 사랑을 하면서 최대한 남은 시간에 대해선 크게 신경 쓰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녀와 추는 왈츠의 템포가 급해지지 않도록 내게 주어진 시간에만 충실하기로 했었다. 그래서 그녀와 최대한 함께 있는 시간을 오래 가지려 노력했었다. 그런 점에서 환경은 나의 편이었다.
연애를 할 땐 각자의 개인시간을 존중해주기도 한다. 예를 들면 주 몇 회를 정해 규칙적인 만남을 갖는 스타일을 말하며 이런 방식에 대해 지금은 존중한다. 사회생활을 하는 지금의 나는 이러한 규칙을 따르는 것에 큰 거부감이 없지만 첫사랑에 흠뻑 빠진 당시의 나에겐 용납할 수 없었던 규칙이었다. 다행히 제이도 나도 서로가 첫사랑이기 때문에 서로 떨어져 있는 시간을 용납하지 않았다. 뜨거운 첫사랑이 그러하듯 단 하루라도 서로가 떨어져 지내려 하지 않았다. 다행히 환경은 앞서 거론했다시피 나의 편이었다. 우리는 모든 전공 및 교양 수업을 같이 들을 수 있도록 시간표를 짰기에 항상 매일 붙어 다녔다. 심지어 우리는 학기를 시작해도 평일 식당 서빙 알바를 계속 같이 할 수 있었다. 우리의 연애를 지지해 주고 배려해 주셨던 점장님 덕분에 우린 일터에서도 편하게 일과 연애를 병행할 수 있었다. 아무튼, 나와 제이는 학교에서도 알바에서도 장소를 가리지 않고 연애를 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 덕분에 우리는 주 7일을 함께 있었다. 나중에 군대를 가기 전까지 사귄 날이 500일 가까이 되는데 그중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제외하고 거의 95% 이상을 매일 그녀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연애기간이 1년 정도 지날 때쯤 나보다 연애기간이 조금 더 긴 선배가 내게 그렇게 자주 만나면 쉽게 질리거나 애틋한 마음이 덜할 수 있다고 충고해 주었다. 그러나 나는 일반적이라면 그럴 수 있겠지만 나는 낭만적인 첫사랑이기 때문에 나에겐 해당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오히려 더 뜨거워지면 뜨거워졌지 덜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제이도 나와 같은 생각인지 궁금해서 물었다. 물론 제이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다. 그때 제이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음, 우리는 아직 만난 지 이제 겨우 1년이지만 그 선배는 2년 넘은 걸로 알고 있어. 그런데 그 선배는 2년이라는 기간은 우리보다 길지 몰라도 그 기간 동안 여자친구분과 함께한 시간은 우리를 넘을 수 없을걸? 우리는 더 짧은 기간 안에 압축해서 시간을 보냈으니까 실질적으로 연애에 대해선 우리보다 모를 수 있어.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말고 우리는 우리의 연애를 하면 돼'
제이의 조언 덕분에 낭만적인 사랑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얼마나 긴 연애를 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닌 서로에게 주어진 시간 안에서 얼마나 더 진한 사랑을 했는지가 중요함을 깨달았다. 나에겐 정해진 시간 속에서 사랑을 나눠야 했지만 그 안에 응축된 사랑은 감히 정해진 시간 따위로 잴 수 없었다. 남들과 다른 시간의 밀도 속에 제이를 그녀를 천천히 녹이는 사랑이었다. 시간을 멈출 수 없다면 밀도 높은 시간 속에 그녀를 녹여 짙은 사랑으로 내리고 싶었다. 나의 첫사랑은 사랑의 농도가 짙은 그런 사랑이었다. 나의 낭만적인 사랑은 이와 같이 정의 내릴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