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팔리 차바리 <깨어있는 양육>
초등 3학년 아이가 수학 단원평가 시험지를 들고 왔다. 틀린 문제를 다시 풀어 학교에 제출해야 한단다. 쓱 보니 빨강 동그라미보다 X 표시가 더 많다. 점수는 100점 만점에 55점. 순간 화가 났다. 마치 내 성적표를 받은 것처럼 화가 나서 더 놀랐다. 아이의 성적표 앞에서 엄마인 내가 왜 초라해졌을까.
화를 겨우겨우 참으며 아이에게 물었다. "시험이 어려웠어? 많이 틀렸네." 아이는 웃으며 답했다.
엄마, 괜찮아요. 지는 게 이기는 거예요.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참았어야 했다. 그깟 단원평가가 뭐 그리 대수라고 화가 났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아이의 느긋한 말과 표정, 태도에 화가 났다. 지는 건 지는 거지, 이기는 게 말이 되는 건가? 그리고 이게 시험이랑 또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순간 <깨어있는 양육>이 떠올랐다. 화를 참고 또 참으며 책을 펼쳐 들었다. 그리고 한 부분에서 겨우 구원받았다. 아이는 내 노력이나 소망이 아니라는 말에 힘이 풀렸다. 이런, 내가 왜 이걸 잊고 있었을까.
55점에 얽매여 아이를 쥐 잡듯 잡을 일이 아니다. 그깟 수학시험이 55점이라고 아이의 인생이 55점은 아니다. 아이 곁에서 묵묵히 지켜보며 아이가 훨훨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게 해주는 엄마로 살아가고 싶다. 그야말로 깨어있는 양육이다. 사실 내 인생도 50점이 안될지도 모를 일이니까.
그래, 아들아. 지는 게 이기는 경우도 있을 거야. 이기는 게 질 때도 있겠지. 엄마도 시험점수 앞에 초연할 수 있도록 노력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