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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워킹맘 Sep 14. 2024

일기를 쓰는 것은 특권이다

조지 오웰, <1984> 

참고할 수 있는, 외부로 나타난 기록이 없을 때는 자기 생애의 윤곽마저 흐릿해지고 마는 것이었다. 
- 조지 오웰, <1984> 중에서


어렸을 때 학교에서 일기 숙제를 내주면 군말 없이 잘하던 아이가 바로 나였다. 왜 써야 하는지 이유가 궁금하지도 않았다. 선생님이 시키는 건 참 잘하는 아이였으니까. 그래도 일기 숙제는 싫지 않았다. 책 읽는 것도 좋아했고, 글 쓰는 것도 마냥 좋았다. 수학 문제를 풀 때는 잔뜩 긴장해도 글을 쓸 때는 한결 마음이 편해지고 자유로워지는 기분마저 들었다. 대부분의 숙제를 착실하게 잘했지만 그중 확실하게 즐기며 하는 숙제는 '일기 쓰기'였다. 


요즘 학교에서는 일기 쓰는 숙제를 내주지 않는다. 학교마다 다르겠지만, 두 아이 모두 일기 쓰는 숙제를 해간 적이 없다. 그래서일까. 두 아이는 자연스럽게 일기를 잘 쓰지 않게 되었다. 남자아이들이라 그런가 싶다가도 엄마가 좀 강압적으로 쓰게 했어야 하는 건 아닌가 또 죄책감이 드는 건 사실이다. 


그러다 요즘 북클럽에서 조지 오웰의 <1984>를 읽다 깨달았다. 일기를 쓰는 것은 특권이다. 당연한 게 아니다. 일기를 쓰는 것조차 당연하지 않은 세상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에 소름이 끼쳤다. 그냥 아무 말이나 써도 누가 보지 않으니 상관없는 글쓰기를 국가에서 통제한다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있을까. 하지만 조지 오웰의 <1984> 속에서는 현실이다. 일기를 쓰지 못하고, 쓰려는 시도조차 하지 못한다.  


그리고 책 속에 적힌 한 줄이 내 가슴을 철렁하게 만들었다. 기록이 없다면 내 삶의 윤곽이 흐릿해지고 만다는 것. 일기를 쓰는 것은 특권인 동시에 의무였다. 학교 다닐 때 억지로 해야 했던 일기 쓰기 숙제는 평생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연습이었던 셈이다. 


출처 : https://www.pexels.com/


그가 이제부터 하려는 일은 일기를 쓰는 것이었다. 이것은 불법은 아니지만 (도대체 법이 없으므로 불법도 있을 수 없다) 일단 발각되는 날에는 사형을 받든지 적어도 25년 강제노동형을 받을 것이 분명했다. (중략) 종이에 무얼 쓴다는 것은 중대한 행위였다. - 조지 오웰, <1984> 중에서


일기를 쓰는 것은 특권이다. 그리고 중차대한 행위이기도 하다. 일기를 쓰다 발각되면 죽을 수도 있지만, 작품 속 주인공 '윈스턴'은 목숨을 걸고 일기를 쓴다. 종이 위에 뭔가를 쓴다는 게 이토록 처절한 일이었을까. 매일 아침 모닝페이지를 쓰고 있지만 언제부턴가 일기를 잘 쓰지 않았다. 오늘밤엔 잠들기 전 길게 일기가 쓰고 싶어 진다. 내 삶의 윤곽을 또렷하게 만들기 위해서. 그리고 목숨까지 안 걸어도 마음껏 쓸 수 있는 이 자유로움에 감사함이 솟구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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