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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유치원 대신 엄마표 영어, 그 첫 번째 이야기

우리는 책으로 하루를 만들었다, 엄마표 영어를 할 수밖에 없던 현실

by 겨울


엄마표 영어, 그 너머의 이유들


36개월.

아이가 말을 곧잘 이어 붙이기 시작했다.

“엄마, 나 오늘, 그러니까 아까 그거 말이야—”

단어에 감정이 실리고,

문장에 논리가 생겨나던 시기.

아이의 말이 쑥쑥 자라나는 걸 보며,

나는 문득, 이 시기에

다른 언어도 함께 스며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영어도 함께 들려줘야겠다.

아이는 내가 처음으로 마주한

‘듣는 사람’이었다.

아이에게 언어를 가르치고 싶진 않았다.

단지, 들려주고 싶었다.

같이 웃고, 흥얼거리고, 따라 부르면서

낯설지만 즐거운 소리로

다가가게 하고 싶었다.

‘공부’보다 ‘노출’이라는 말이

더 익숙했던 시절이었다.

그 무렵, 아이에게

조금 더 자연스럽고 즐거운 방식으로

영어를 들려줄 수 있는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그때 처음 만난 것이

노부영이었다.

마더구스 리듬에 맞춰 편집된

그림책과 음원.

노래와 그림이 함께하는 책.

아이가 좋아했지만,

어쩌면 나부터 먼저 빠졌는지도 모른다.

음원을 틀고 책을 펼치면,

그림이 말을 걸고

노래가 기억을 붙잡았다.

“엄마, 이거 또 틀어줘.”

이 말이 하루에도 몇 번씩 들려왔다.

노래는 아이의 귀에 찰싹 달라붙었고,

나 역시 입에 맴도는 가사들을

자주 흥얼거렸다.

책은 하루에 한두 권씩 늘었다.

어느새 200권 가까이 쌓였다.

더 잘 활용하고 싶었고,

네이버 카페에서 진행되는

‘드림 공부모임’이라는 것을 봤다.


그 모임은

노부영 드림 세트(하트 그림책+매직 읽기 책)

구입자 전용 스터디였다.

이미 200권 가까운 책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모임에 참여하려면

드림 세트를 새로 구입해야 했다.

망설였지만,

혼자보다는 함께 읽고

나누며 배우는 시간이

더 깊을 것 같았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었다.

겹치는 책은 처분하기로 마음을 먹고,

560만 원짜리 드림 세트를

10개월 할부로 다시 구입했다.

스터디에 참여하고 싶었다.

단지 책을 함께 읽고 나누는

감각만이 아니었다.

드림 세트 구입자에게만 주어지는

특별한 혜택들—

지역 모임, 작가와의 만남,

스터디 완주 페스티벌 같은 것들.

일상에서 놓치고 살던 연결감,

나도 그 안에 한 사람으로

묻히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혼자선 만들 수 없는 이벤트들이,

나를 끌어당겼다.

책이 쏟아졌다.

360권의 그림책,

400권의 읽기 책,

DVD와 CD, 가이드북까지.

겹치는 책들을 중고로 처분했지만,

그래도 가계부에는 여전히

큰 숫자가 남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됐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단단했다.

아이에게 맞는 콘텐츠를 꾸준히,

질 좋게, 깊이 있게

보여주고 싶었다.

나는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림책 한 권 안에

리듬과 상황,

뉘앙스와 감정이 있었다.

우리는 4년 넘게

노부영 그림책을 꾸준히 읽었다.

도서관에서 원서를 빌려 읽는

습관도 함께 자라났고,

아이는 그 안에서

언어의 톤과 리듬을

자연스럽게 흡수해 갔다.




사실 영어유치원을 고민한 적도 있었다.

보낼 수 있는 여건만 된다면,

나도 보내고 싶었다.

남들이 다 보내니까 따라가야 할 것 같아서가 아니라,

아이에게 더 넓은 환경과

풍부한 자극을 주고 싶은 마음은

언제나 마음 한쪽에 있었다.

하지만 그 시절의 나는,

불안보다 먼저 가계부를 펼쳐야 하는 사람이었다.

남편은 대기업 직장인이지만 외벌이였고,

우리는 부모 도움 없이

거의 풀대출로 아파트를 장만한 상태였다.

대출금과 생활비, 교육비를 감당하려면

아끼지 않고서는 살아낼 수 없었다.

결혼과 함께 나는 서울에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남편은 지방 근무 중이었고,

나는 주말부부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낯선 동네,

지인도 친척도 없는 곳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건

생각보다 더 외로웠다.

‘어떻게 놀아줘야 하지’라는 고민 끝에,

결국 내가 좋아했던 책이

우리 사이를 잇는 매개가 되었다.

책을 읽어주고,

그림을 함께 보고,

한 페이지씩 넘기며

아이의 눈을 따라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교육에 관심이 생겼다.

엄마표 영어는 선택이라기보다 여건이었다.

영어유치원은 보내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니라,

보낼 수 없었던 게 더 가까웠다.

집에서 책을 읽고,

영상도 잘 고르면 되겠지 싶었지만,

생각보다 비용은 만만치 않았다.

책값, CD, DVD, 워크북, 교육 전집…

지나고 보니 영어유치원 3년 학비보다 더 쓴 것 같다.

돈 대신 시간을 내고,

정보 대신 마음을 쏟고,

외주 대신 내가 옆에 앉았다.

시간이 지나며,

아이의 영어는 자랐고

나도 자랐다.

그 시간 동안,

우리는 함께 성장했다.






세상이 멈췄던 해. 코로나와 비대면 시기.


아이는 여전히 자라고 있었고,

나는 다시 다른 콘텐츠를 찾기 시작했다.

그때 만난 것이

잉글리시에그와

월드패밀리잉글리시(월팸)이었다.

잉글리시에그는

중고로 저렴하게 구입했다.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었고,

아이는 반응이 좋았다.

월팸은 1주일 동안 끙끙 앓다가

결국 36개월 할부로 들였다.

큰 결심이 필요했지만,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강했다.

망설이던 나에게

남편은 흔쾌히 사라고 말했다.

망설이지 말라고,

지금 그 시기를 놓치지 말자고.

이상하게 그 말이 위로가 됐다.

꼭 갖고 싶었던 것을 허락받은

어린아이처럼,

나는 조심스럽게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영유도 못 보내는 입장이지만,

한 달 26만 원 정도는

감당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마침 그 시기는

코로나가 심하던 때였고,

유치원도 등원하지 않는 날이었다.

집 안에 갇혀버린 아이에게,

나는 그저 질 좋은 콘텐츠를

보여주고 싶었다.

잉글리시에그는

귀에 감기는 노래와 영상으로

자연스럽게 발화를 이끌었다.

아이가 문장을 흉내 내는 게 아니라,

상황 속에서 말을 던지기 시작했다.

문장이 튀어나오는 경험.

내가 원하던 영어였다.

월팸은 아이가 53개월일 때 들였다.

조금 늦은 감이 있었지만,

오히려 더 깊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자극적이지 않았고,

흐름이 잔잔했다.

하지만 표현은 자연스러웠고,

아이의 입과 귀에 서서히,

그러나 정확하게 스며들었다.

그 무렵부터 나는

인스타그램에서 월팸 스터디를

무료로 3년간 운영했다.

그 덕분에 월팸은

우리 집 영어 루틴에서

늘 곁에 있는 콘텐츠가 되었고,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수준 있는 콘텐츠를 찾는 데

많은 시간을 들이는 대신,

나는 그 시간을 ‘돈으로 샀다’고 생각했다.

내가 고르고, 찾아보고,

비교하며 헤매는 시간들을 대신해,

그 시간만큼의 노력을

콘텐츠에 담아 들여온 것이었다.

비효율 같아 보였지만,

유튜브 대신 순한 영상으로 아이의 귀와 마음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다.




아이를 위해 시작한 공부, 엄마를 바꾼 공부


영어독서지도사 자격증을 땄다.

처음엔 단지 더 잘 읽어주고 싶어서였다.

책을 더 재미있게 읽어주고 싶었고,

그 시간을 함께 나누며

더 풍성하고 깊이 있는 대화로

연결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 공부는

내게 전혀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다.

미국 아이들의 문맹률,

부모의 언어, 출신, 소득 수준에 따라

달라지는 읽기 능력의 격차.

그래서 미국은 국가 차원에서

‘읽기’를 교육정책 중심에 놓았고,

국가 읽기 위원회,

클린턴-부시-오바마 시기의

공통핵심과정(Common Core)이

그 연장선이었다.

그 모든 흐름이

리더스북, 파닉스,

단계별 논픽션을 탄생시킨

배경이었다.

그때 알게 되었다.

닥터수스가 단지

귀여운 그림체의 작가가 아니라,

국가의 교육 정책과 맞물려

움직이던 이름이었다는 것을.

Phonological awareness,

Phonemic awareness

처음 듣는 개념들이었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아이에게

이걸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까.

나도 읽으며 어려웠고,

그래서 더 열심히 공부했다.

읽기란 단순히 문자를 해독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되새기고,

연결하고, 재해석하는 일이었다.

읽은 것을 질문하고,

다른 시각으로 확장하는 힘.

그 힘을 기르기 위해선

아이 수준에 맞는 책을

고르는 능력이 선행되어야 했다.

책을 ‘많이 읽히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읽히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외출할 땐 송북, 집에선 루틴


언제 어디서나 영어 노출은

함께였다.

외출할 땐 내가 만든

송북(Song Book)을 들고 다녔다.

자동차, 병원, 대기실, 카페—

우린 언제든 책을 열었고,

노래를 흘려보냈다.

영어유치원은 보내지 못했지만

대신 나는 우리 집을

영어유치원처럼 만들었다.

아이의 수준에 맞는 콘텐츠를 찾고,

기분에 맞는 책을 고르고,

시기에 따라 활용법을 달리했다.

책으로 놀고, 노래로 말하고,
그림과 음원으로 아이의 감각을 일깨웠다.

우리는 책 한 권으로 하루를 보내기도 했고,
반복되는 구절에 맞춰 춤을 추기도 했다.
아이에게 영어는 ‘공부’가 아닌 ‘놀이’였다.

그건 영어유치원보다

훨씬 많은 시간과 애정이 필요한 일이었지만,

나는 그 시간을 사랑했다.







우리는 지금도 매일 인풋 중이다.


내 방식은 단순하다.

아웃풋이 목적이 아니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인풋 중이다.

좋은 책, 좋은 콘텐츠, 좋은 영상—

질문이 생기고,

웃음이 터지고,

감정이 따라오는 콘텐츠들을 찾는다.

이제 아이는 스스로 책을 고르고,

때때로 엄마에게

“이 책 좋아”라고 추천도 한다.

그게 다다.

그걸로 충분하다.

영어는 공부가 아니라,

함께 살아낸 시간이다.

그 시간 속에서,

아이는 자라났고,

나도 조금 더 깊어졌다.




그리고 지금도, 나는 콘텐츠를 고르고 있다.


아이가 무엇을 읽고 있는지,

어디에 머물고 있는지를 살핀다.

책을 읽는다는 건 결국

아이의 언어를 만드는 일이자,

생각을 만드는 일이고,

나중에는 세상을 만드는 일이기도 하니까.



지금도 무엇을 고르고 있는 당신에게,

이 말만은 꼭 전하고 싶다—

그 시간이 아이를 자라고,

당신을 단단하게 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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