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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늦게 가는 나, 그래도 간다

Part1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가다 서다

by 고율리

시작은 언제나 어렵다
여러 사정과 온갖 걱정이 발목을 잡아 망설임이 길어지고, 결국 시작을 미루다 미루다 겨우 용기를 내어 애써보게 된다.


대학원 진학을 몇 년 동안 마음만 간절히 품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너무 늦은 나이는 아닐까?’라는 불안과 준비 부족에 대한 회의로 번번이 원서를 내려다 접곤 했다. 그렇게 4년이 흐른 뒤, 태국에서 성공한 친척분께 진학에 대한 상담을 드린 적이 있다. 그분이 하신 말씀이 아직도 마음에 남는다.


“합격하고 고민해도 늦지 않아. 원서를 낸다고 다닐 수 있는 건 아니잖아.”


그 말에 용기를 얻어 무거운 발걸음을 떼었고, 결국 대학원에 입학하고 졸업까지 할 수 있었다. 내가 붙잡고 있던 불안과 망설임은 그저 핑계에 불과했다는 걸 그때서야 깨달았다. 난 시작도 하기 전에 온갖 걱정과 불안을 스토리로 만들어 도전을 미뤘던 것이다.


가볍게 시작해도 괜찮을 텐데, 늘 늦었다는 생각에 실수 없이, 실패 없이, 헤매는 일 없이 단번에 돌파해야 한다는 강박이 생긴다. 그럴 때면 몸에 지나치게 힘이 들어간다. 결국 한 발 내디딜 때마다 확인하고, 또 확인하며 느리게 걸음을 옮긴다. 그런데 이런 조심스러운 걸음이 오히려 더딘 길을 만든다는 생각에 괴로워진다.

KakaoTalk_20241224_093117378.jpg 고슴도치 룰루

한 걸음 가고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일을 반복한다
‘이만큼 왔구나’ 하고 인정하기보다는, ‘왜 이렇게 느린 거지?’, ‘더 잘할 수 있었는데’라는 생각에 발목이 묶인다.


얼마 전 우연히 마음훈련 유튜브를 보다가 들은 말이 머릿속에 남았다.
“삶의 흐름을 타고 살면 수월하다.”


그 말을 듣고 큰 깨달음을 얻었다.

‘왜 내 삶은 이렇게 힘들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은 것 같았다.
애를 쓰며 꾸역꾸역 살아가는 이유를 알게 된 순간이었다.
나는 삶의 흐름을 타기보다는, 삶의 한 걸음 한 걸음에 온갖 의미를 부여하며 스스로 지쳐가고 있었다.


바람처럼 가볍게, 삶의 흐름에 따라 살아보자
이제는 바람에 내 삶을 맡기며, 가는 만큼의 풍경을 즐기며 걷고 싶다.
불안해서 자꾸 밑을 내려다보는 대신, 고개를 들고 앞을 바라보며 나아가고 싶다. 떠나온 길을 돌아보지 말고, 순간순간 지나가는 길 위에서 나를 위해 준비된 풍경들을 기억하고 싶다.

뒤처졌다고 느껴질 때는 늘 스스로를 다그치게 된다. 하지만 그럴수록 한 가지를 기억하려 한다.
뒤를 돌아보느라 발목이 묶이는 대신, 고개를 들어 앞으로 가는 길을 바라보자.


오늘은 힘을 조금 빼고, 바람에 몸을 맡기며 내 속도만큼 보이는 풍경을 즐겨보려 한다.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행복한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고슴도치 룰루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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