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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힘들어 서다

Part 1 -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가다 서다 - 04

by 고율리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아 잠 못 이루는 밤이 있다.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지는 생각들 속에서 겨우 잠이 들었지만, 아침이 되니 몸은 욱신거리고 머리는 멍하다. 우울하다. 해야 할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지만, 손끝 하나 움직이고 싶지 않다. 병원에 가야 하나 잠시 생각했지만, 몸을 이끌어 그곳으로 향할 의지도 없다. 그저 천장을 멀뚱히 바라보며 가만히 있고 싶다.


병원에 간다면 아마 ‘마음의 병’이라는 진단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날은 나의 상태를 누구에게 설명하거나 검진받고 싶지 않다. 정신없이 나 자신을 몰아붙이다가 결국 펑하고 터진 날. 마음이 아파 세상과 나를 차단하고 멈춰 선다.


그렇게 하루가 흘러가고, 그 하루를 보낸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진다. "마음이 약해서 그래. 정신력이 문제야." 주변에서 들려오는 그 말들을 고스란히 짊어진 채 정신력이 약한 나로 또 하루를 살아간다.

KakaoTalk_20241231_095951841.jpg 고슴도치 룰루

요즘 나는 나와 대화하며 그렇게 멈춰 선 나에게 한없이 관대해지기로 했다. 스스로를 위로하고, 이해할 수 없어도 이해하려 애쓰고, 때로는 그냥 내버려 두기도 한다. 타인의 말이 아닌 내가 나에게 해주는 이야기를 통해 나를 다잡으려 한다. 하루 종일 멍하니 있고 싶은 날이라면 그렇게 보내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허락한다. 꼭 처리해야 할 일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은 나만을 위해 철저히 지키려고 한다. 그렇게 틈날 때마다 하며, 나에게 말을 걸어본다. "내일의 걱정은 내일로 미루자"며 지금의 나와 짧은 대화부터 시작해, 점점 깊은 이야기까지 나눈다. 누군가에게 의존할수록 외로움은 더 커진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는다. 타인과의 관계를 고민하며 살았던 시간은 많았지만, 정작 나 자신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모든 에너지를 타인에게 쏟아왔던 나의 삶이었다.


이제야 나와의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오늘은 마음이 아파 혼자 있고 싶다"라고 솔직히 말할 수 있는 나, 그 말을 받아들이고 이해해 주는 나. 나 자신에게 관대함과 포용력, 그리고 이해심을 아낌없이 베풀어보려 한다.


혹시 그런 날이 있나요? 해야 할 일은 쌓여 있지만 꼼짝도 하기 싫고, 그저 세상과 자신을 차단하고 싶은 날.

오늘은 잠시 멈춰 선 나를 말없이 지켜보며, 우울한 나를 그대로 받아들여보자. 마음이 힘들어 멈춰 서고 싶다면, 그래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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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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