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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데이 Oct 25. 2024

한 발짝에서 시작하는 양보

돌고 도는 인생사를 체험한 날

9호선 지옥철을 아시나요?

뉴스에서 출퇴근길 지옥철 대명사로 뽑히는 9호선, 저는 한 번도 타본 적이 없었어요. 그래도 버스에서 자리 잡고 출퇴근하는 게 어디냐며, 그저 남일 보듯이 봤죠. 그런 제 마음을 들켰는지 갑자기 3개월 동안 9호선의 중심, 여의도로 출근을 하게 되었습니다. 경기 남부에서 여의도로 어떻게 출근을 하냐며 차라리 부산으로 보내달라 KTX를 타고 출퇴근을 하겠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전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노동자이니...

그렇게 3개월의 9호선 지옥철 체험이 시작되었습니다.


지옥철, 아니 여의도 적응하기

9호선 체험은 첫날부터 녹록지 않았어요. 더 이상 사람이 탈 수 없을 것만 같은데 뒤에서 밀리니 종이 구기듯이 구겨져서 타게 되고, 웬일로 텅 빈 지하철이 오는데 아무도 안 타서 혼자 쑥- 타면 급행이 아니었고, 일단 남들이 다 뛰니까 나도 뛰느라 정신없이 출근을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적응의 동물이잖아요. 일주일, 이주일이 지나고 저는 점점 지옥철에 적응해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적응해야 할 건 지옥철 말고도 하나 더 있었습니다. 바로 여의도룩. 여의도로 며칠 출근했더니 전부 정장에, 여자분들은 상견례에서 입을 같은 깔끔한 원피스에 힐을 신고 있더라고요. 저만 낮은 단화에 편한 바지를 입고 있었죠. 잠깐이지만 저도 여의도 직장인 흉내를 내고 싶은 마음에 어느 날은 힐을 꺼내 들고 출근길에 올랐습니다. 집을 나서자마자 오늘 하루가 고단할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이미 신었기에 그냥 이대로 출근을 강행했어요.


돌고 도는 인생사

어김없이 오늘도 구겨진 채로 지옥철에 탑승을 했습니다. 높은 위에서 지금 제가 바닥을 걷고 있는지, 하늘 위를 날고 있는지 헷갈리기 시작했죠. 

그러던 중 지하철이 급정거를 했습니다.


'어어어-'

다들 한쪽으로 기울었다 다시 자리를 찾아갔죠. 그때! 누군가의 힐이 제 발등을 쿡- 찔렀습니다. 

'(악-!)'

제가 신은 5cm의 두꺼운 굽이 아니고, 8cm의 얇고 긴 굽이었어요. 오버해서 발등의 뼈가 부러질 것 같은 아픔이 있었지만 일부러 그런 게 절대 아님을 알기에 속으로만 악! 소리를 지르고 죄송하다는 말에 괜찮다는 말을 대신해 목례를 보냈죠.


그리고 다음 정거장, 다다음 정거장을 지났습니다.

또다시 지하철이 급정거를 했고, 이번엔 힐이 누군가의 발등을 찍었습니다. 황급히 뒤를 돌아보니 어떤 남자분의 발등을 쿡- 밟았더라고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너무 놀라서 속사포로 1초에 3번 정도 죄송하다는 말이 튀어나왔습니다. 그리고 상대방으로부터 괜찮다는 목례를 받았습니다.


아프겠지만 아프다고 말하지 않는 남자분의 모습을 보며, 세상은 돌고 도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아까 내 발등을 찍은 여자분에게 짜증을 냈다면? 나도 누군가의 발등을 찍었을 때 짜증 내는 사람을 만났겠지? 하지만, 그냥 내가 그럴 수도 있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잖아. 괜찮다. 하고 넘겼더니? 나도 누군가의 발등을 찍었을 때 그럴 수도 있지 하며 넘겨주는 사람을 만나게 되는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은 거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방법

이 세상은 내가 착하게 살면, 늘 착한 사람만 만나고,
다 같이 살만한 좋은 세상이 되는 거고!
내가 나쁘게 살면, 나쁜 사람만 만나고,
다 같이 나쁜 사람들만 사는 세상이 되겠구나!


늘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지하철이지만, 서로 한 발짝씩만 양보해서 살아간다면 더 타기 좋은 지하철, 아니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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