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살만한 따뜻한 세상
오늘도 어김없이 출근길 가방을 챙깁니다.
저는 가방 바꾸는 게 귀찮아서 파우치 하나에 이어폰, 립밤, 사원증 등을 넣고 그것만 뺐다 넣었다 하면서 가방을 바꿔 들고 출근을 합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새로운 가방을 하나 꺼내 파우치와 교통카드가 들어있는 카드지갑을 옮겨 담고 집을 나섰습니다.
저 멀리 좌석버스 정류장에는 이미 줄이 길게 늘어서있고, 신호등이 바뀌자마자 뛰지는 않지만 뛰는 것과 비슷한 매우 빠른 걸음으로 걸어 그 줄에 합류했습니다. 그리고 버스 앱을 열고 남은 좌석이 몇 개인지, 내 앞에 몇 명이 있는지, 이번 버스를 탈 수 있을지 짧은 시간에 머릿속에 계산기를 돌리며 버스를 기다렸죠.
끼익-
긴 줄의 맨 앞에 버스가 정차하면 가방에 손을 넣고 뒤적뒤적 카드지갑을 찾아 손에 꼭 쥐고 있습니다. 빠르게 틱- 찍고 타야 하니까요. 기사님께 '안녕하세요' 인사하며 당당하게 카드를 찍었는데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았습니다. '어? 오잉?' 이리저리 돌려가며 카드지갑을 찍었지만 여전히 반응이 없었죠.
출근길 교통카드를 놓고 왔다.
당황하며 카드지갑을 열었더니 안이 텅- 비어있었어요.
'헉! 카드가 왜 없지?'
가방을 다 뒤져도 교통카드는 자취를 감추고 나타나지 않았죠.
'아, 지난번에 마을버스 탈 때도 카드가 없었는데 삼성페이에 교통카드 추가하는 방법 찾아서 했었지! 한번 해놨으니까 핸드폰만 찍으면 되겠지? 틱- 어? 왜 반응이 없지? 삼성페이 앱을 열고 찍어야 하나? 아닌데, 그냥 해도 됐는데?'
'죄송합니다. 잠시만요'
기사님께 양해를 구하고 삼성페이로 교통카드 찍는 법을 열심히 검색했습니다. 하지만 전 이미 당황해서 머릿속에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어요.
제가 찍어드릴게요.
그때 맨 앞자리에 앉아계신 분이 '제가 찍어드릴게요'라며 카드를 찍어주셨습니다.
'아, 너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저 계좌번호 좀...'
'괜찮아요. 어서 앉으세요. 위험한데'
'아, 아, 네. 아, 감사합니다'
당황함과 감사함과 어쩔 줄 몰라함을 안고 남은 한자리를 찾아 들어갔습니다.
생각해 보니 어제 요즘 유행한다는 미니 가방을 들고 갔는데, 가방이 너무 작아서 짐을 줄이다 보니 카드지갑에서 교통카드만 쏙- 빼서 쓰고 제자리에 돌려놓지 않았더라고요. 휴대폰으로 교통카드 찍는 것도 NFC 기능을 켜야지 등록해 놓은 교통카드로 찍을 수 있는 시스템이었죠.
손 내밀어주는 용기!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이런 경우를 종종 봤던 것 같아요. 누군가 교통카드가 없어서 당황하는 모습, 그래서 겨우 현금을 찾았는데 5만 원짜리인 경우 등 그런데 선뜻 용기 내서 '제가 찍어드릴게요'라는 말을 저는 하지 못했거든요. 그래서 오늘 당황한 저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용기를 내어 도와주신 그분이 정말 너무 멋있어 보였어요. 이 바쁜 출근길에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출근은 해야 하고, 교통비는 없는 그런 상황에 처한 저를 구해준 분이니까요. 게다가 위험하다고 얼른 앉으라는 멘트까지 날려주시니 정말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버스를 내리며 감사 인사를 드리려고 했는데 저보다 일찍 내리셨는지 좌석버스 맨 앞자리는 비어있었어요. 이후 저는 며칠간 천 원짜리 지폐 3장을 늘 손에 들고 출근버스를 기다렸습니다. 도와주신 분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지만, 다리에 깁스를 하고 계셔서 쉽게 찾고 감사 인사를 드릴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하지만 출근시간이 저와 안 맞았거나, 깁스를 풀으셨는지 결국 지폐 3장은 주인을 찾지 못했습니다.
'누군가 힘든 상황에 있다면 도와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라고 생각은 하지만, 막상 그 상황에 먼저 손 내미는 건 또 다른 용기가 필요하더라고요. 오늘 저는 누군가의 용기를 통해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배웠습니다. 나도 누군가 도움이 필요할 때 손 내미는 용기를 가져야겠다는 사실을요!
이런 따뜻한 마음과 용기가 모여서
이 세상이 더 살만한 세상이 되는 거 아닐까요?
P.S. 아직 지폐 3장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쪽 다리에 깁스하셨던 분! 저의 출근길을 구해주신 분! 어디 계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