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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남책 Jul 05. 2024

무모한 시작

출발

지금의 아내를 여자친구로 만나고 있을 때의 이야기이다.

난 그때 처음으로 캠핑을 시작했다.


사랑하는 마음에 방금 보고 왔던 얼굴을 또 보고 싶던 시기였고, 신나게 데이트한 후 집으로 보내야 할 때면, 다음에는 어디서 데이트할지를 미리 정하고 싶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보니, 항상 비슷한 방식으로 비슷한 곳에서 하는 데이트 말고 좀 창의적인 데이트를 하고 싶었고 그때 떠오른 것이 바로 ‘캠핑!!’ 이었다. 누가 보면 어지간히 창의적이라고 비웃을 거리지만, 그때 나에게는 머리에 백열전등이 환하게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난 그 흔한 검색 한 번 해보지 않고 여자친구에게 대뜸


“ 우리 캠핑갈까? ” 하고 물어보았다.


“ 응, 좋아 ”


잠시도 고민하지 않는 그녀의 긍정적인 대답과 함께 나는 들뜨기 시작했고 난 그때부터 정말 신이 나서 떠들었다. 캠핑에 대해 뭘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데도 여자친구는 계속해서 내 말에 호응해주었고 그게 바로 사랑이자, 그 당시 내 에너지였던 것 같다.


 


집에 돌아와 근처에 살고 계시는 삼촌에게 전화를 걸었다.


“ 삼촌, 저 캠핑갈 건데 장비 있죠? ”


삼촌과는 워낙 친한 사이라 나한테 빌려줄지에 대한 의사는 묻지 않았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삼촌은 흔쾌히 수락하며 나보다 더 들뜬 말투로


“ 필요한 건 다 있지, 뭐든 가져가라” 라고 말씀하셨다.


앞으로 자주 등장할 내 막냇삼촌과의 대화는 항상 이런 식이다.


 


때는 더위가 한창인 7월의 여름이었고, 우린 시원한 계곡을 찾아보았다. 그러다 보니 우연히 횡성의 ‘병지방 계곡’이란 곳을 알게 되었고 그 자리에서 우리는 바로 캠핑할 장소를 확정했다.


예약도 하지 않은 캠핑계획. 그것은 다시 생각해봐도 정말 미친 짓의 시작이었다. 예약도 없이 그곳에 가기만 하면 우리가 캠핑을 할 수 있는 것인가? 우리의 무모한 행동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삼촌의 집으로 가서, 삼촌의 차에, 삼촌의 캠핑 장비를 실었다. 삼촌은 장비를 하나하나 보여주며 나에게 설명을 해줬는데.. 내가 이 장비들을 잘 사용하길 바라는 마음과 그것들에 대해 뿌듯함이 같이 있는 듯했다.


무거운 장비를 트렁크와 뒷좌석에 꾹꾹 눌러 넣은 후 차 키를 받아들고 난 시동을 걸었다. 삼촌은 항상 내가 탈 것에 대비해 ‘누구나 보험’을 들어두신다. 그리고 오늘 난 내 수준에 탈 수 없는 고급 차를 몰고 캠핑을 떠난다.


 


여자친구를 태우러 가는 길에 보이는 하늘이 그렇게 맑을 수가 없었다. 이글이글 태양도 그냥 환하게 비추는 조명 같기만 하고, 자동차의 기름은 절대 떨어지지 않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중계동의 똑같은 모양과 똑같은 색깔을 한 아파트단지들을 끼고 내비게이션이 시키는 곳에 정차했다.


여자친구는 날씬한 몸매에 쫙 달라붙는 가죽 레깅스를 입고 나왔다. 왠지 부끄러워 말은 안 했지만 사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스타일이었다. 덕분에 출발도 하기 전부터 마음이 딴 세상을 헤매는 느낌이 들었지만 이내 운전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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