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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남책 Jul 05. 2024

고난의 시작

똥손의 캠핑

자리를 감상하는 시간도 잠시, 짐들을 다 옮기고 나니 이제 텐트를 쳐야 할 시간이었다.

“ 자 이제 텐트를 쳐 볼까? ”


괜히 자신감을 보이듯 혼잣말을 하고 난 뒤, 문득 삼촌의 말을 떠올려본다.


‘ 이건 엄청 쉬워. 그냥 가운데 부분을 위로 쭉 올리면 되는 거니까 가서 해보면 바로 알 거야 ’


난 그때 삼촌의 설명을 제대로 듣지 않았다. 왜? 쉽다고 하니까….


 


근데 삼촌의 샛노란 색 텐트를 다 펼쳐놓고 아무리 봐도 텐트를 일으킬 방법을 알 수가 없었다. 그냥 삼촌이 주는 대로 받아서 챙겨온 장비이다 보니, 팩은 있는지? 망치는 있는지?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텐트만 펼쳐둔 채로 주위를 둘러보며 저 사람들은 어떻게 텐트를 친 건지 궁금해하고 있었다. 그때 우리의 구세주인 터줏대감 아저씨가 우리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 이 아저씨는 지금 생각해보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계곡 자리에 장기간 텐트를 쳐놓고 독점하는 나쁜 아저씨였지만, 그 당시 우리에게는 ‘구세주’ 였다.


 


구세주 아저씨가 슬금슬금 오더니, 우리에게 훈수를 두기 시작했다. ‘이건 이렇게 하고’ ‘저건 저렇게 하고….’ 우리는 귀로는 듣고 있지만, 감히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멍하니 서로 보고만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답답했는지 아저씨가 “ 이리 와봐 ” 하더니 텐트 치는 걸 도와주기 시작했다. 잠깐 사이에 텐트가 마법처럼 일어나고 아저씨는 구석구석에 팩을 박기 시작했다. 우리는 또 한 번 감사의 인사를 수 차례 드렸고 구세주 아저씨는 쿨하게 자기 텐트로 되돌아갔다.


 


이제 진짜 여행의 시작이다. 우리는 텐트 안쪽에 짐을 정리했다. 그리고 함께 텐트에 들어간 김에 뽀뽀도 했다. 땀이 범벅이었지만 더럽다는 건 전혀 의식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배가 고파오는 건 느껴졌는데 역시 인간은 생존본능이 먼저 인가보다. 우리는 계곡물에 잠깐 세수만 하고 마트에 가기로 했다. 내비게이션을 찍어보니 하나로마트가 그럭저럭 가까운 곳에 있었고 우리는 바로 출발했다.


 


이제부터가 먹을 거 하나 없이, 예약도 안 하고, 생전 처음 보는 텐트를, 남의 도움으로 세팅한 다음, 시작하는 우리의 진짜 캠핑이었다.


 


마트의 수많은 먹거리를 보며 우리는 행복하게 쇼핑했다.


“ 이것도 먹자. 이것도 먹으면 좋겠어. 이건 어때? ”


우리는 허기진 배를 달래기 위해 하나로마트를 통째로 살 듯이 쇼핑을 했고, 이후 계곡의 주차장에 돌아와 다시 먼 길을 마주했다.


'아…. 이걸 또 저기까지 옮겨야 하네'


그래도 맛있는 삼겹살을 생각하고 이쁜 여자친구를 바라보며 힘을 냈다. 솔직하게 힘들었지만, 기분은 전혀 힘들지 않았다.


“ 이제 슬슬 고기를 구워볼까? ”


삼촌이 챙겨준 바비큐그릴을 펼치고 숯을 넣었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며 ‘지익지익’ 소리를 내며 불을 붙이는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따라 했다. 근데 다른 사람들의 숯은 불이 잘도 붙는데 내가 붙이는 숯은 불이 안 붙었다. 이거 대충 불붙이면 금방 활활 타오를 줄 알았는데….


‘ 아, 또 계산 착오다. ’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고 더 이상의 시행착오는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또 구세주 아저씨를 찾아갔다.


“ 그건 한참을 들고 있어야 해 ”


숯에다가 토치를 대고 한참을 있으라고 하신다.


난 또 ‘감사합니다’ 를 연발하고 후다닥 뛰어와서 숯을 노려보며 한참을 토치질했다. 배고픔을 참으며 기다리고 있는 여자친구의 시선이 신경 쓰이기 시작할 때쯤 드디어 불이 붙었고 우리는 제대로 된 반찬을 차리지도 않은 채 고기부터 올렸다. 그땐 그냥 고기만 먹어도 너무 맛있을 것 같았다. 땀이 범벅이고 뭐고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 한 입 넣은 그 고기는 내 평생 가장 맛있는 고기 한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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