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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남책 Jul 05. 2024

짤랑이 아줌마

화장실 이슈

허겁지겁 배를 채우고 소주 한 잔을 기울이고 있을 때 우리에게 첫 번째 고비가 찾아왔다. 여자친구가 “ 여기 화장실은 어디야? ” 라고 물었고 난 화장실이 절대로 있을 것 같지 않은 주변을 둘러보며 당황하기 시작했다. 다시 구세주가 필요했다.

아저씨에게 무언가 답변을 듣고 온 나는 그 대답을 여자친구에게 자신 있게 전달할 수 없었다. 쭈뼛쭈뼛하고 있는 내게 여자친구가 물었다.


“ 어디로 가면 된대? ”


“ 응, 저 위쪽 산속에 들어가서 해결하라는데…?”


난 차마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여자친구는 이 힘든 여행에서 한 번도 싫은 내색이 없었는데 처음으로 당황한 듯했다. 난 이 상황을 어떻게든 해결해보려고 내 모든 피를 뇌로 끌어올렸다.


“ 아 맞다. 주차장 앞에 있는 매점!! 거기에 가면 화장실이 있지 않을까? ”


내 말에 여자친구도 동의했다. 우리는 급하게 매점으로 향했고 가는 길에 세상모르는 순진한 대화를 나눴다.


“ 매점에서 그냥 화장실만 간다고 하기엔 좀 그러니까, 마트보다 가격이 좀 비싸더라도 물건을 몇 개사고 화장실을 이용한다고 하자 ”


그녀는 동의했고 우린 계곡에 놓인 다리를 기분 좋게 건넜다. 그리고 이제까지는 보이지 않았던 광경이 우리들의 눈에 들어온 것이 그때쯤이었다. 짐을 옮기느라 주차장부터 그렇게 몇 번을 오고 갔는데도 이게 이제야 눈에 들어오다니….


 


매점 옆 화장실은 긴 줄로 늘어서 있었고 매서운 눈매를 한 사장 아주머니가 손에 동전을 짤랑거리며 지켜서 있었다.


500원이었다. 화장실을 한번 이용하는데 드는 이용료.


심지어 저 긴 줄을 기다려야 한다. 줄을 선 사람들은 대부분 산속에서 용무를 해결하기 힘든 여자들이었지만 중간중간 남자도 있는 걸 보니 그들의 목적은 좀 더 큰 것이었고, 그 시간까지 고려하면 꽤 오래 기다려야 할 판이었다. 난 걱정스러운 눈으로 “ 괜찮겠어? ” 라고 물었고 여자친구는 힘든 표정이었지만 말로는 괜찮다고 했다.


길고 긴 시간이 지나 차례가 왔고 여자친구가 안으로 들어갔다. 화장실은 동양식이었고 물이 잘 나오지 않아 바가지로 자기 뒤처리를 하고 나와야 하는 방식이었다. 아니, 이런 열악한 화장실을 이용하게 하고 500원을 받다니... 동전을 짤랑거리면서 서 있는 저 아줌마가 그렇게 미워 보인다.


 


다시 텐트로 돌아와 남은 음식을 정리하고 나니 설거짓거리가 눈에 들어온다.


'엥? 이건 어디서 씻지?'


  휴. 우리는 한숨을 내쉬고 다시 그 짤랑이 아줌마가 운영하는 매점 앞 수도꼭지로 그릇들을 들고 간다. 여전히 줄은 길지만 함께 있는 시간이 너무도 행복한 우리는 이런저런 농담을 하며 지루하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설거지를 마치고 돌아가려는데 여자친구가 여기까지 온 김에 화장실을 한 번 더 가겠다고 했다. 난 이제까지 여자들이 이렇게 화장실을 자주 가는지 몰랐다. 산속이고 절대 혼자 보낼 수 없는 곳이기에 나는 매번 함께 따라가며 3박 4일을 보냈는데 그래서 알 수 있었다.


‘ 진짜 자주 가는구나.’


 


난 산속을 살피며 여기저기 내 흔적을 남겼다. 민망한 일이지만 덥다는 핑계로 계곡물에 들어가서 후딱 쉬를 하고 나온 적도 있었다. 매점까지 가는 게 귀찮기도 했지만, 500원이 아까웠다. 아니, 그 아줌마에게 주고 싶지 않았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어떤 사람이 있었다. 뭔가 불편한 표정으로 한 손에는 티슈를, 다른 한 손에는 노란 손잡이가 있는 손 삽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는 우리 텐트를 지나 산속으로 들어가더니 한참을 있다가 개운한 얼굴로 다시 나타났다. 난 여자친구에게 그 사실을 말했고 급할 때마다 매번 갈 수 없으니 나도 내일 삽을 사야겠다고 말했다. 사실 그 아줌마에게 500원을 주느니 돈이 더 들더라도 삽을 사고 싶었다.


 


내일 아침 하나로마트에서 장 볼 것들을 생각하며 우리는 잠자리에 누웠다. 한여름에 무슨 침낭이냐며 안 가져간다는 걸 삼촌이 굳이 챙겨줘서 가지고 왔었는데 우린 금세 알았다. 밤이 되니 기온이 뚝 떨어져서 도저히 견딜 수 없을 만큼 추웠다. '삼촌.. 고마워요'


우리는 침낭이 있음에도 너무 추워서 서로 꼭 끌어안았고 서로의 체온으로 겨우겨우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젊음이 이 상황을 그냥 두지 않았다. 난 여자친구에게 조용히 속삭였고 눈이 맞은 우리는 텐트 안에서 뜨겁게 사랑을 나눴다. 추위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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