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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남책 Sep 27. 2024

1장. 김신욱 vs 졸음

의문의 교통사고.


                                                         나만 몰랐던 것들.     



1장. 김신욱 사장.     


‘ 하~ 암. 흠. 흠. ’      

입이 찢어질 듯 하품을 하며 운전 중인 한 남자. 차창 밖으로 어둠이 깊게 내려앉아 있는 시간.

자신을 지나가는 가로등 불빛이 일정한 간격으로 깜빡이며 잠을 깨워 주려 하지만 남자에게는 그 빛조차 점점 흐려져 가는 듯했다. 남자의 손은 겨우 차 핸들을 잡고 있을 뿐, 손끝의 감각은 점점 무뎌지고 있었고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앉을 때마다, 순간적으로 시야가 아득해졌다.      


남자는 억지로 눈을 크게 뜨려고 했는데, 자꾸만 감겨오는 눈꺼풀을 떼어내기란 쉽지 않았다. 눈이 반쯤 감기는 상황에서 아무리 볼을 꼬집어봐도 눈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이내 창문을 열어 찬바람을 맞으며 고개를 세차게 흔들어댔다.


창문을 통해 서리처럼 차가운 공기가 얼굴을 스쳤지만, 그저 잠깐뿐이었고 머릿속은 다시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이러다가는 진짜 사고가 나겠다고 생각하며 갓길에 차를 대고 좀 쉴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그 반대로 이정도 거리면 계속 갈만하다는 욕심도 들었다. 결국 후자를 선택한 남자는 다시 한 번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보며 무거운 눈꺼풀을 붙잡은 채 계속 달렸다.     


갑자기 도로의 차선이 흔들리는 느낌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 끼익. ’


소리를 내며 차가 갑자기 에스 자로 휘청대다가 겨우 본래의 차선으로 돌아왔다.

본능적으로 감지한 이상한 기분에 휘둥그레 눈을 떠보니 자신의 차량이 중앙분리대를 향해 질주하고 있었는데 남자가 급하게 핸들을 꺾어 차의 위치를 원래 차선에 겨우 돌려놓은 것이었다. 잠깐 다른 생각을 한 줄 알았는데 그것은 생각이 아니라 눈 감고 졸았던 것이었나 보다.       

   

졸음을 쫓기 위해 음악 소리를 키웠다. 하지만 음악에서 나오는 일정한 비트는 시끄러운 소리에도 불구하고 남자에게는 오히려 자장가가 되어 더욱 머리를 무겁게 만들었다. 다시 차가 흔들리는 느낌을 받자 남자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잠을 깨기 위해 일부러 속도를 높여봤지만, 오히려 더 위험하게만 느껴졌고 고개가 스르르 숙여질 때마다 핸들이 조금씩 흔들렸는데 그때마다 급히 핸들을 틀면서 눈을 다시 크게 떴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에도 눈꺼풀은 무거운 족쇄처럼 남자를 깊은 암흑으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 아 왜 이러지? 후. 정말 죽을 뻔 했네 ’


이러다가 진짜 죽겠다고 생각하면서 잠깐 차린 정신은 몇 초를 못 버티고 또다시 희미해졌다.


‘내 눈꺼풀이 이렇게 눈에 보여도 되는 건가?’


자신의 눈앞에 검은색 암막 커튼처럼 내려앉은 눈꺼풀을 보며 남자는 의문을 가졌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차는 계속해서 달리고 있었다.


결국 남자는 도저히 졸음을 참을 수 없다는 생각에 잠시 쉬어가기로 마음을 굳히고 내비게이션의 다음 휴게소를 확인했다. 11km. 계산하기 쉽게 10km라 생각하고 머리를 굴려보았다. 평소에는 금방 하던 계산도 오늘따라 쉽지 않았다. ‘흠. 시속 100km로 달린다면 1시간에 100km를 가는 것이니까…. 음…. 흠…. 10km는 어…. 대략 6분 정도 걸리는 거리네.’ 남자는 졸음이 몰려오는 중에 간신히 계산을 마치고 6분만 참고 달리다가 잠시 쉬어가기로 한다.      

정신이 없는 중에도 우측 갓길에 세로로 늘어진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 졸릴 땐 30분마다 환기.’


지금 딱 자신에게 해당하는 그 문구를 보고 남자는 창문을 열어본다. 그러자 차 안을 가득 채운 무거운 공기가 빠져나가고 그 대신 시원한 밤공기가 얼굴을 스쳤다. 남자는 한쪽 팔을 창문에 걸쳐두고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잠을 깨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 순간, 앞쪽에 검게 입을 벌린 터널의 입구가 보였다. 남자는 시원한 밤공기가 텁텁한 터널의 공기로 달라질 것을 예감하고 다시 창문을 올렸다. 아무리 졸려도 터널의 매캐한 공기를 마시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었다.     


창문이 올라가면서, 순식간에 시원했던 공기가 사라지고 다시 답답한 공기가 차 안에 가득 찼다. 몇 초 후, 차는 터널 속으로 들어갔고 밀폐된 공간 특유의 무거운 공기가 남자를 감싸며 다시 졸음이 스멀스멀 밀려오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머리를 세차게 흔들어봤다. 분명 자신의 목에 달린 머리인데 꼭 남의 머리를 흔드는 것처럼 별 느낌이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이기기 어려운 것은 자기 자신이라고 했던가? 이 남자는 정답을 수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건 ‘잠’이라고 생각하면서….  

   

“ 그리~워져~ 네가 너무 아프다~ 아~아아 ”


남자는 본인이 알고 있는 가장 고음인 노래를 목청껏 불러봤다. 잠을 깨기 위해 이렇게까지 노력해본 건 정말 처음인 것 같지만, 지금은 그만큼 위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래도 졸음은 달아나지 않고 또다시 감기는 눈에 차가 흔들거리며 위험한 순간을 맞이할 뻔했다.      


‘ 후. 후. ’

남자는 짧고 굵은 숨을 내쉬며 호흡을 가다듬어 본다.

 오늘따라 고속도로에 차가 없어서 망정이지, 뒤에 차가 있었다면 정말 큰일 날 뻔했다는 생각을 하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다시 정신을 다잡아본다. 그런 생각을 하며 사이드미러를 확인했는데 아뿔싸 뒤에 어떤 차량의 불빛이 보였다.

어두워서 차종과 모양은 자세히 알 수가 없지만, 승용차인 것 같았다.


‘ 어? 차가 있었네? 언제부터 따라오고 있었지? 진짜 사고 날 뻔했었네. 휴..’


남자는 뒤에 차가 있었음에도 다행히 사고 없이 운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큰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저나 조금 전의 그 상황에서도 경적 한 번 안 울리고 따라오는 운전자가 이상해서 남자는 다시 한 번 룸미러를 확인했다. 앞길은 텅 비어있었지만, 뒤차는 여전히 같은 거리에서 자신과 비슷한 속도를 유지하며 따라붙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속도에 변화를 줘봤지만, 뒤차는 여전히 일정한 거리를 두고 쫓아오기만 했다. 백미러를 통해 운전자를 확인하려고 시선을 돌렸다. 그래봤자 어두워서 보이는 것도 없지만 최대한 시선을 고정하고 확인하려고 애썼다.

왜 자꾸 따라오는 거지? 남자는 경적 한 번 울리지 않고 뒤따르는 운전자가 착한 건지, 아니면 이상한 건지 찝찝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사실 남자는 저녁 식사 자리에서 강요된 분위기에 못 이겨 간단하게 반주를 하고 왔었기 때문에 뒤차가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이 조금 부담스럽긴 했다.


‘ 내가 비틀거리는 걸 봤으려나? 괜히 음주운전으로 신고하면 골치 아픈데? ’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괜스레 뒤차가 의식되기에 더욱 집중해서 눈을 크게 떠본다.


‘ 조금만 더 버티자.’

얼마 안 되는 양이라도 술을 먹은 것이 원인이겠지만, 오늘의 졸음은 정말 예사롭지 않다.   

   

라디오를 켜려고 봤더니 며칠 전에 사서 반쯤 먹다가 컵홀더에 꽂아둔 오렌지 주스가 보였다. ‘분명 상했을 텐데….’ 남자는 기분 나쁜 예감이 들었지만, 눈꺼풀이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손을 뻗어 주스 병을 잡았다. 병뚜껑을 돌리는 순간, 약간 쉰 듯한 냄새가 차 안에 퍼졌고 이에 남자는 눈살을 찌푸렸지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깊게 들이마신 숨과 함께 병에 입을 댔다. ‘우읍. 크흠.’ 입술에 닿는 주스의 끈적한 감촉이 이미 오래되어 상한 느낌을 주었고 남자는 얼굴을 찡그리며 고개를 젖혔다. 예상대로 상한 듯한 맛이었지만 정신을 차리기 위해 한 모금을 억지로 더 삼켰다. 평소라면 진작 뱉어냈어야 하지만 오늘 이 남자는 지금 상황을 최대의 위기라고 느끼고 있었기에 입 안에 있던 주스를 그냥 꿀꺽 삼켜버렸는데 상해버린 과일 냄새가 코끝을 타고 들어오며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사실 ‘ 될 대로 되라지’라는 마음도 있었지만, 배탈이라도 나서 이 미친 졸음을 좀 떨쳐버리고 싶은 생각이 더 컸다.

‘제발…. 얼마 안 남았으니 정신 좀 차리자.’     


‘끼익….’

남자가 다시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좀 전에 했던 다짐이 무색하게 또다시 차선을 넘었던 것이었다. 잠깐, 정말 아주 잠깐 평온한 느낌이 들었었는데 그게 또 눈을 감는 상황이었나보다. 침대에 누운 듯 편안한 느낌을 경계해야 한다. 그 느낌이 든다는 건 내가 자는 것이니…. 남자는 끊임없이 다짐하며 자신의 졸음을 경계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갓길에 차를 대고 고개를 뒤로 젖히고 싶지만, 얼마 남지 않은 휴게소가 자꾸 남자를 시험에 들게 하고 있었다. 크게 숨을 한 번 몰아쉬자 정신이 좀 들기에 룸미러로 다시 뒤차를 확인했는데 여전히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조용히 따라오고만 있었다.      


‘ 이상하네. 차라리 나를 지나치면 좋겠는데….’

‘내가 사고 날까 봐 걱정하는 것인가? 그렇다고 경적을 울려주는 것도 아니고 그냥 따라만 오는 건 뭐지? ’


 남자는 최근 자신이 미행을 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계속 받고 있었는데 그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에이, 그건 아니겠지. 무슨 영화도 아니고….’

남자는 자신이 과민반응을 한 것으로 생각하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다면 이유는 뭘까? 괜스레 자신을 음주운전으로 신고했을 것 같다는 불길함에 남자는 거울을 슬쩍슬쩍 확인하게 된다.      


우측 전방에 휴게소가 1km 남았다는 표지가 나타났다.

‘휴 다 왔다.’


이번엔 무조건 자고 가겠다고 다짐하며 최대한 눈을 부릅뜨고 차선을 우측으로 변경한다. 휴게소가 가까워졌는지 주변에 가로등이 주변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고 쉴 새 없이 남자의 시선을 지나갔다. 또다시 등장한 표지판. 이제 500m 남았다. 남자는 저기에만 도착하면 가장 가까운 곳에 곧바로 주차하고 시트를 뒤로 젖힌 다음, 아까의 그 평온함을 만끽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하지만 잠시 했던 이 생각 때문인지, 그것은 순식간에 남자를 꿈나라로 몰고 가 버렸고 이내 그의 눈은 다시 무거워지며 고개가 흔들흔들 뒤로 젖혀지고 있었다.    

  

‘ 끼~~~익….’

뒤늦게 정신을 차린 남자가 브레이크를 밟은 탓에 타이어가 도로에 긁히며 강렬한 소리를 냈다.

하지만 반응하기에는 이미 늦었다는 듯이 남자의 눈앞에 휴게소의 길쭉한 간판이 보이고 ‘쿵!’ 하고 귀를 찢는 충격음과 함께 차체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안전벨트가 몸을 강하게 잡아채고 에어백이 남자의 얼굴을 강타하며 마치 헤비급 복싱선수에게 정통으로 한 방을 맞은 듯 남자는 순간적으로 기절했는데 이내 가슴을 파고드는 날카로운 통증에 다시 눈을 떴다. 그리고 남자는 자신이 그 잠깐의 시간 동안 또 눈을 감았다는 사실을 인지하며 뒤늦게 후회했다.


‘에이 젠장, 어쩐지 또 편안한 느낌이 들더라….’

후회하기엔 늦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찰나의 순간에 남자는 자조 섞인 말을 내뱉었다.     

 

휴게소 간판과 부딪히는 충격음에 남자는 아직도 귀가 먹먹했는데 바깥의 불빛과 어둠이 번갈아 번쩍이는 탓에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잠시 후 모든 순간이 느려진 것처럼 느껴질 때쯤 자신의 상황이 겨우 파악되었다. 깨진 앞 유리를 통해 간판의 부서진 조각이 날카로운 창처럼 실내로 향했는데 그것은 에어백과 남자의 가슴을 동시에 찢어놓았고 남자는 그래서 참을 수 없는 통증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었다.     


 ‘뼈를 때린다는 것이 이런 말이었구나. 진짜 너무 아프네’


남자는 겨우 뜨고 있는 두 눈으로 옆을 보니 좀 전까지 뒤따라오던 차량이 멈춰서 자신을 지켜보다가 서서히 출발하는 것을 보았다.      

‘ 아 저 인간. 뭐야…. 진짜 나를 미행한 건가? 그게 아니라면 내려서 좀 도와주지.. 가는 길에 119라도 불러주려나.’ 남자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중얼거렸다.


그 생각과 동시에 남자는 온몸의 고통이 잊혔고 좀 전에 느껴봤던 침대에 누운 듯한 편안함이 다시 찾아왔다.

‘휴. 이제 좀 자도 되려나.’

남자는 그동안 참아왔던 고통에서 벗어나 드디어 편안하게 눈을 감을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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