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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남책 Sep 30. 2024

3장. 허지광 vs 세무조사

왜 나한테..

3장. 세무조사


‘삐그덕’ 고치지 않은 매장 입구의 문이 오늘도 삐걱거리며 소리를 내기에 자연스레 눈을 돌렸는데 손님으로는 절대 보이지 않는 무표정한 남자 3명이 지광의 눈에 차례로 들어왔다.


“ 안녕하세요. 국세청에서 나왔습니다. 모두 자리에 그대로 앉아주시고 컴퓨터에서 손 떼주세요. ”     

지광은 벌떡 일어나며 벙어리가 된 듯 말을 잇지 못했다.


“네? 세무조사요? 전 잘못 한 게 없는데요?”      


“ 네, 잘 못 한 게 없으시면 편하게 계시면 되구요. 크게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대신 이번에 조사대상이 되셨으니까 저희 지시에 잘 따라 주시긴 하셔야 합니다. ”


세무공무원은 지겹도록 들었던 말에 응답기를 틀듯이 대답하고 지광의 매장 한쪽에 있는 컴퓨터 쪽으로 다가갔다.


직원이라야 고작 경리 보는 김 대리와 허드렛일을 도맡아 해주는 박 군이 전부지만, 컴퓨터는 5대나 설치가 되어 있었기에 빈자리에 있는 컴퓨터까지 일일이 접근을 막을 수는 없었다.      


“ 저. 저. 잠시만요. 원래 세무조사는 사전에 통지하는 것이 원칙 아닌가요? 그거 뭐 납세자 권리 뭐 그런 거요. 하물며 형사들도 영장 없이는 수색을 못 하잖아요 ”

지광은 급하게 내뱉은 말이지만 자신이 중요한 부분을 잘 지적했다고 생각하며 세무공무원들의 눈치를 살폈다.      


“ 크음. ”

세무공무원 중 제일 나이가 많아 보이는 사람이 헛기침을 한번 한 후 대답했다.

“ 국세기본법에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으면 사전통지를 생략할 수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특히 범칙 사건….”     


세무공무원의 날카로운 시선에 짓눌리며 무거운 정적이 감쌀 때 김 대리가 이마의 땀을 훔치며 컴퓨터 화면을 힐끗거렸다. 사실 컴퓨터 안에 저장된 장부에는 세무신고와 다른 정보가 있었기 때문에 그 부분이 드러나면 앞으로의 세무조사에서 불리한 증거가 될 것이었는데 세무공무원의 장황한 설명이 이어지고 있을 때 가만히 눈치를 보던 김 대리가 손가락을 움직여서 마우스로 뭔가를 클릭했다.

긴장감에 손가락이 덜덜 떨렸지만, 최대한 자연스럽게 폴더를 열었고 이내 마우스 우측 버튼을 클릭했다. 이제 삭제만 누르면 되는 상황. 그때 세무공무원 중 한 명이 소리쳤다.


“ 어? 어! 손 떼세요. ”

뒤에 있던 공무원이 김 대리의 이상행동을 발견하고 급히 달려들며 제지했다.


“ 이런 게 증거인멸 시도입니다. ”

세무공무원들의 싸늘한 시선이 지광에게 향했고 그 뒤로 날카로운 목소리가 이어졌다.


 “증거인멸을 막기 위해 더 이상 납세자 권리보호와 관련된 규정은 언급하지 않고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갑자기 공무원들의 태도가 더욱 강경해졌고 지광은 뭔가 잘 못 진행되고 있음을 감지했다.      

지광은 악화된 상황에 피가 쏠려 잠시 어지러움을 느끼고 있었는데 굳이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하며 일을 더 크게 만든 김 대리에 대한 원망도 섞여 있었다.


원래도 갑을관계가 명확한 세무조사이겠지만 방금의 상황은 공무원들의 어깨에 더욱 힘을 실어주었고 그래서인지 그들 중 한 명이 어떤 서류를 꺼내더니 책상에 툭 내려놓으며 지금 바로 사인하라고 차갑게 말했다. 그건 범죄사실이 명백한 피의자에게 검사나 할 법한 행동이었는데 지광은 그런 것에 대한 예의를 따질 수 있는 정신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광은 이 긴박한 상황에서도 쉽게 사인하지 않고 내용을 최대한 꼼꼼히 읽었고 그 틈에 어떤 서류를 한 장 발견했다.

그것은 ‘납세자권리헌장’이었다.


‘ 난 지금 어떤 권리도 없는 것 같은데 여기에 사인을 해야 하는 이 상황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지광은 그때 자신이 부당한 처우를 받고 있다는 생각과 이 상황을 어떻게 모면해야 할지에 대한 생각으로 혼란스러워 하고 있었다. 그리고 헌장의 뒤로는 세무조사에 동의한다는 동의서와 청렴함을 약속하는 서류 등이 추가로 있었는데 여기에 사인하면 어떤 결과가 일어나는지 알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지광의 불안감은 괜히 커져만 갔다.


“ 그냥 성함 쓰시고 사인하시면 됩니다. ”

추가적인 설명도 없이 그냥 강요만 하는 세무공무원의 말투에 지광은 결국 굴복하고 사인을 했다. 열심히 읽었지만 반박할 수 없으니 결과는 같았다.


 “저 근데 제가 뭘 잘 못 한 건가요?”

“아직 구체적으로 말씀드릴 수는 없고 사업 전반에 대한 통합조사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지광은 저런 두루뭉술한 말을 자연스럽게 내뱉는 것이 공무원의 능력인가 생각하며 컴퓨터를 만지기 시작하는 다른 두 세무공무원의 손놀림을 지켜봤다.          


팀장으로 보이는 이 인간은 지광의 옆에 딱 붙어 어떤 움직임이나 지시도 할 수 없도록 방어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서 사업의 현황에 대해 서서히 묻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하나같이 대답하기 껄끄러운 것들 뿐이었다.


“ 이 주소에 사업자가 배우자 명의랑 두 개이시죠? 배우자 분은 어디 계세요?”

“ 음…. 지금은 집에 있습니다. 애들이 어려서요”

“그럼 허 지광 씨가 실제로 두 사업자를 다 운영하시는 거라는 의미 시죠?”

“ 네…. 뭐…. 실제로는 하나의 사업장이기도 하고….”

그 당시 지광은 그 말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알지 못한 채 쉽게 내뱉어 버렸다.


“ 그 부분은 조사하면서 차차 진행할 텐데요 일단 차명으로 사업하시는 걸로 알겠습니다.”

지광은 그제서야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른 변명을 내놓기에는 이미 늦어버렸다는 것을 알았다.    

  

“ 여기 금고 있습니다! ”

세무공무원의 외침에 모두가 빠른 걸음으로 그쪽을 향했다. 그 모습을 보며 지광은 ‘ 금고 있는 게 뭔 잘못인가? ’ 라고 생각했는데 이때까지도 자신이 어떤 의심을 받을지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비리 정치인도 아니고 왜 이러는 거야?’


지광은 자신이 왜 이런 취급을 받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는데 세무공무원 입장에서는 사실 범법행위의 엄청난 증거를 잡은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요즘 세상에 현금은 정당하지 못한 거래가 대부분이고 금고 안의 현금은 주로 매출을 누락했거나, 부정한 짓을 하고 받은 대가일 확률이 높기 때문이었다.      


지광은 뒤늦게 마트에서 현금 결제하는 사람들을 떠 올려보았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은 그럴 수 있지만 젊은 사람이 현금으로 결제하면 대개 신용불량이거나 추적을 당하지 않기 위함, 또는 투명하지 않은 돈을 소비하는 것이리라. 이 생각이 미치자, 지광은 자신의 금고에 든 현금이 이번 세무조사에 얼마나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지 뜨끔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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