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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남책 Sep 28. 2024

2장. 허지광 vs 김신욱

음향기기 매장

2장 허지광 vs 김신욱     


조그만 개별건물에서 보증금 2천에 월 100만 원의 월세로 컴퓨터 부품 도소매를 하는 허 지광은 매일 큰길 맞은편에 있는 번쩍번쩍 빛나는 엄청난 크기의 건물을 보며 은근히 부러움을 느꼈다. 그렇다고 애초에 비교도 못 할 저 건물주가 부러운 것은 아니고 저런 삐까번쩍한 건물에 전자제품을 취급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장사를 하면서 서로 어울린다는 것을 부럽게 느끼는 것이었다.      


문득 학교 근처 빌라에 사는 자신의 집을 생각하며 우리 애들도 번듯한 아파트 단지로 우르르 몰려가는 다른 친구들의 모습을 뒤에서 바라보면, 지금의 자신과 비슷한 느낌이 들 것 같기에 갑자기 속상한 마음이 들었다.      


‘ 어휴. 이래서 돈이 있어야 해 ’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오늘도 함께 점심 식사할 사람을 찾으러 번쩍번쩍 빛이 나는 큰 건물로 찾아갔다.      

전면 유리에 당연하다는 듯이 설치된 자동문을 지나치며 자신의 매장에 삐걱거리는 고장 난 문짝이 떠올랐다. 더 좋은 것과 비교하면 할수록 초라해지는 건 항상 자신인 것을 알지만 왠지 뭘 하나 볼 때마다 자신의 불행한 현재 상황이 오버랩 되는 것은 막을 수가 없었다.      


지광은 건물의 1층에 들어서자마자 시선을 아래로 떨궜다. 자신은 이곳의 물건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 빠른 걸음으로 매장과 매장 사이를 지나쳤는데 귓가에 호객행위가 속삭이듯 다가왔다.


“한 번 보고 가세요!”


매장 앞에서 손짓하는 직원들이 시야에 아른거렸지만, 혹 손님으로 오해받을까 봐 곁으로 눈길 한번 주지 않고 곧장 앞으로만 빠르게 걸어갔다. 사실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며 그들에게 ‘노땡큐’를 외칠 수도 있지만, 매장마다 가판대에 나와서 호객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일일이 응대하는 것이 너무 부담스럽기 때문이었다. 이곳을 자주 들락거리는 지광이기에 그들도 내가 손님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충분히 알 테지만 항상 지나가는 사람들을 유심히 바라보며 호객행위를 하는 그들만의 버릇이 있기에 여기를 지날 때면 항상 부담스러웠다. 만약 어떤 범죄자가 여기를 걸어 다녔다면 경찰의 탐문수사에 분명히 붙잡힐 것이다. CCTV보다 더 확실한 그들의 눈길 때문에….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며 괜스레 아래를 한 번 내려다본다. 아까 지나치며 눈도 제대로 못 마주쳤던 매장의 사장은 어떻게 생겼는지, 아직도 인터넷이 아니라 직접 여기까지 제품을 구매하러 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등을 그 짧은 순간에 파악하고자 함이었다.

‘ 확실히 예전보단 줄었네. 그래도 아직 직접 눈으로 보고 구매하려는 사람은 있겠지. 본인에게 어떤 제품이 딱인지 잘 알기가 힘든 사람도 많으니까.’ 과거보다 유동 인구가 현저히 줄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광은 이 건물에 입점하는 것이 여전히 소망이었다.      


이 건물의 3층은 모조리 음향 관련 매장이었다. 에스컬레이터를 내려 고개를 돌리면 화려한 조명과 특이한 모양을 한 각종 음향기기가 전시되어 있었는데 대부분 통유리로 세련되게 인테리어 된 매장 안에 멋지게 설치되어 있었고 백화점의 명품관을 연상하게 하는 분위기가 느껴지는 곳이었다.      


‘ 저런 건 얼마나 하려나? ’      


지광은 자신의 처지와 큰 괴리를 느끼며 괜히 혼잣말을 해 본다. 3층은 1층과 달리 호객행위가 없었는데 그 이유는 고급제품들을 다루다 보니 로드 손님보단 예약하고 찾아오는 단골손님 위주로 판매를 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지광은 1층보다 3층에서 한결 편하게 걸어 다닐 수 있었다.      


‘ 오늘은 누구랑 밥을 먹을까? ’


사실 누구와 약속을 하고 찾아온 것은 아니었다. 그냥 여기저기 둘러보다 손님 없이 한가히 앉아있는 매장에 들어가서 친한 척 인사하고 오늘 같이 식사나 하자고 할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슬쩍슬쩍 곁눈으로 매장을 확인하며 지나가던 중 마침 꽤 친하게 지내는 김신욱 사장이 자신의 매장에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분명히 할 일 없이 시간을 때우고 있는 것이리라. 지광은 익숙한 듯 문을 열고 인사를 건넸다.


‘ 안녕하세요. 김 사장님! 별일 없으시면 식사나 하러 가시죠? ’      


‘ 어 왔어? ’

김 사장은 대답과 함께 슬쩍 고개만 들었다가 곧바로 핸드폰으로 시선을 돌렸다. 반기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홀대하는 것도 아닌 애매한 인사에 살짝 빈정이 상했지만, 지광은 여기 3층 사람들과 친해지기 위해 오늘도 참아야만 했다. 사실 허 지광은 이 업종을 배워서 자기도 이 사람들처럼 좀 더 나은 삶을 살고 싶다는 욕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지광이 보기에 그들은 좋은 집에 고급승용차를 타고 고급취미를 누리며 사는 지광의 워너비였기 때문이었다.      


자신은 매일 수없이 많은 부품을 운반하고 차곡차곡 정리한 다음 주문순서대로 열심히 조립해서 혹시나 배송이 늦을까 배송 중에 제품이 상할까, 조마조마하며 걱정해도 판매가의 10%가 채 안 되는 마진을 남기는데, 이 사람들은 여름날의 베짱이처럼 늘어지게 놀다가 한 달에 한 대만 팔아도 나보다 더 높은 수익을 올리기 때문이었다. ‘ 내가 이 일만 배우면 그때는 다 뺏어 먹어 줄게. 이 인간들아! ’

순간 허 지광은 속마음이 얼굴로 드러나는 느낌이 들어 아차 하며 후다닥 고개를 숙였다.      


“순댓국 어때?”

“ 에이 돈도 많으시면서 좀 좋은 거 드세요. 이런 거 다 비싼 거잖아요.”

지광은 전시된 음향기기 한 대를 툭툭 발로 차며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어본다.      


“야야. 너 그거 발로 차면 오늘 집에 못 간다?”

지광의 장난스러운 행동에 김 사장도 장난스런 말투로 대답했지만, 지광은 주인에게 죄지은 강아지처럼 급하게 어깨를 굽히며 자신의 발자국을 지우는 시늉을 했다.     


“ 그나저나 이런 건 누가 사는 거예요? 난 도대체 이해가 안 되네. 이 정도를 취미라고 할 수 있나? ” 지광은 실제로 구매자들이 누군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추후 자신이 이 업종으로 뛰어들었을 때 어떤 사람들을 타겟으로 해야 할지를 알기 위해 슬쩍 말을 던져보았다.      


“ 다양하지. 돈 있는 사람들이 뭐 정해져 있겠냐? ” 지광의 의도를 알아차린 것인지 김 사장은 교묘하게 대답을 회피했다.      

“ 돈이 많다고 다 이런 기계로 음악을 듣는 건 아닐 거 아녜요? 요즘 음원사이트가 얼마나 잘 되어 있는데….” 지광은 원하는 대답을 듣기 위해 다시 한번 물고 늘어졌다.

“ 그건 그렇지만, 돈이 있어 보면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티를 내고 싶을 때가 있어. 그러면 괜히 사소한 것에 광적으로 집착하기도 하고 비싼 물건을 쌓아두고 싶기도 하고 그러는 거야 ” 김 사장의 두루뭉술한 대답은 지광에게 아쉬움을 남겼지만 더 이상 같은 질문을 둘러 말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지광은 다른 것이라도 물어보자는 심정으로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 근데 이런 것들은 일반기기랑 가격 차이가 엄청날 텐데 그 차이만큼 특별하진 않을 거잖아요 ”

“ 야 그럼 네 생각엔 수입차가 국산 차보다 3배 비싸다고 3배만큼 좋을 것 같냐? ”

“ 뭐. 그건 아니지만….” 지광은 선뜻 대답하기 힘든 질문에 자신 없이 고개를 숙이며 말을 줄였다.

“ 그렇지, 이런 제품의 성능이 가격 차이만큼 다르다고는 할 수 없는 거야. 이건 명품가방 같은 것이거든. 다만 분명히 다르긴 달라. ” 김 사장의 목소리에 자신감이 가득하게 느껴졌다.


김 사장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내뱉고 나서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어떤 음향 장비 근처로 걸어가기 시작했는데, 그러고는 생뚱맞게 레스토랑의 웨이터처럼 한쪽 손을 쭉 펼치며 지광을 자연스레 청음실로 안내했다. ‘ 순댓국 먹자던 사람이 갑자기 무슨 일이야?’


지광은 어리둥절하며 매장 안에 고급스럽게 꾸며진 청음실로 걸어 들어갔다. 청음실은 한 눈에도 고급스럽게 꾸며져 있었는데 바닥은 서양에서 와인 파티할 때나 깔아둘 법한 푹신한 카펫이 깔려있었고 천장을 포함한 모든 벽면은 부드러운 패브릭 소재와 우드 패널로 마감되어 있었으며 천장과 벽에는 음향을 흡수하고 반사하는 구조물이 정교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 처음 들어와 보지? 여기는 원래 아무나 못 들어와 ”

“ 우와! 그냥 보기만 해도 엄청 좋네요 ”


바닥의 두터운 카펫이 발걸음 소리조차 흡수하며 공간 전체가 따뜻하고 아늑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청음실의 중앙에는 고급스러운 가죽 소파가 놓여있었는데 그 앞쪽으로는 고객의 눈을 사로잡을 최고급 음향기기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전면에는 주로 스피커와 앰프, 턴테이블, 진공관 등이 전시되어 있었고 대부분 세련된 금속과 나무 마감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특히 천장에는 은은한 조명이 오직 소리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부드럽게 퍼져있었는데 마치 콘서트홀에 입장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사실 티를 내진 않았지만, 지광은 몇 달 전부터 하이엔드 오디오 잡지를 구독하며 정보를 쌓아가고 있었기에 청음실의 일부 기기들은 낯이 익은 것도 있었다. 청음실에는 지광이 얼마 전에 봤던 신제품도 있었는데 그것들은 대부분 수억 원을 오고 가는 고가의 제품들이었기에 속마음으로는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두근거리고 있었다.      


“ 마침 오늘 좋은 물건이 들어와서 시험 삼아 연결해 뒀는데 촌놈한테 고급이 뭔지 한번 들려줄게. ”

자신을 대놓고 무시하는 말에도 지광은 실없이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기회에 잡지로만 보던 기기들의 차이점을 몸으로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 내가 모르는 건 절대 남에게 팔 수 없는 것이 세상의 이치니까. 꾹 참아라. 허 지광! 드디어 오늘 목적달성 하는구나.’      


김 사장이 명품가방을 만지듯 하얀 장갑을 끼고 금빛 스탠드 조명 아래 빛나고 있는 고급 음향기기의 스위치를 조심스레 조작했다. 지광은 중후한 가죽 소파에 몸을 맡기고 눈을 감은 채 숨을 고르고 있었는데 음악이 시작되기도 전이었지만, 이미 음악을 듣고 있는 기분이었다.


 잠시의 정적 뒤, 이름을 알 수 없는 클래식의 선율이 흐르기 시작했다. 현악기의 첫 음이 공기 중에 떨리듯 울렸는데 섬세한 바이올린 선율이 공간을 가르며 퍼져나가고 그에 맞춰 피아노 소리가 혹시라도 채우지 못한 부분을 마저 채우려는 듯, 함께 울리기 시작했다. 첼로의 묵직한 소리는 울림의 깊이를 더 했는데 적막한 밤하늘의 별을 하나둘 느끼면서 자연 속에 누워있는 느낌이었다. 신기하게 음악을 잘 모르는 지광도 갑자기 온몸을 감싸오는 희한한 진동에 묘함을 느끼며 갑자기 눈을 크게 떴는데. 아니, 눈이 번쩍 뜨였는데. 그 놀라운 느낌에 잠시 당황했지만, 지광은 다시 눈을 감고 음악 감상에 집중했다.


연주는 점점 클라이맥스로 향해서 지광의 심장은 마치 음악과 하나가 된 듯 박동을 맞추고 있었다. 특히 놀라운 점은 악기 하나하나의 소리를 바로 코앞에서 듣는 것처럼 생생한 느낌이 든다는 것이었는데 지광은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음악에 흠뻑 빠져들었다. 사실 그리 긴 시간을 들은 것도 아니었지만, 온몸에 찌릿함을 느낀 지광은 연주가 끝난 후에도 소리가 주는 충격에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 잘은 모르겠지만, 너 같은 촌놈도 소리에 뭔가 다름이 있다는 것은 금방 알았지? ” 김 사장은 지광의 리액션이 매우 만족스럽다는 듯 옆에서 키득키득 웃고 있었다.


“ 네, 음악을 틀자마자 뭔지는 모르겠는데 몸이 막 무거워지는 느낌이 들더니…. 막 이렇게…. ”

지광은 자신의 느낌을 더 표현할 방법이 없어서 언어를 상실해가고 있었는데 김 사장은 그 모습이 귀엽다는 듯이 계속 웃고만 있었다.     

“ 내가 촌놈 귀 호강시켜준다고 했잖아 크크크.”

김 사장은 자신의 장비에 대한 자랑과 함께 지광을 은근히 무시하며 까 내렸다. 그럼에도 지광은 조금도 울컥하지 않고 김 사장의 다음 말에 쫑긋 귀를 기울였다. 소리를 직접 느끼고 나니 장비에 대한 궁금증이 더욱 커졌기 때문이었다.


“ 이 스피커는 네덜란드에서 온 녀석인데…. 정말 골때리는 놈이야. 사람 귀로는 50Hz까지밖에 듣지 못하는데 얘는 10Hz까지 내려가거든. 크크크. 나머지 귀로 안 들리는 소리는 그냥 몸으로 느끼는 거야. 대단하지 않냐? 그리고 저 예술품 같은 디자인 봐라. 어디 두바이에 있는 멋진 초고층 빌딩 보는 것 같지? 이 골때리는 놈들이 스피커 케이스를 인공 석재로 만들었거든.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크크크. 그 안에 있는 진공관 성능이야 말할 것도 없고. ”

김 사장은 본인의 자식을 자랑하듯이 뿌듯해하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 그럼 이게 제일 비싼 거예요?” 지광은 잡지에서 봤었던 기억이 있어서 이 스피커의 대략적인 금액은 알고 있었지만 좀 더 최고의 기기를 경험하고 싶은 마음에 들뜬 척을 하며 질문했다.     

“ 당연히 아니지 인마. 이놈에다가 0이 하나씩 더 붙는 애들이 수두룩해. ”

“ 그럼 억 단위요?”

지광은 설마 했지만 그런 제품이 실제로 매장에 있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놀랐다. 보통 그런 제품은 잡지에만 소개할 뿐 실제 거래는 이루어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 나중에 컴퓨터 때려치우고 내 밑에 들어와. 내가 제대로 알려줄게. ”

‘ 예스!’ 이것이 그가 여태껏 듣고 싶은 말이었다. 지광은 확실하게 하고 싶은 마음에 조급하게 말을 내뱉었다.

“ 진짜죠? 저 진짜 때려치우고 옵니다! 그때 모른 척하지 마세요!”

김 사장은 살짝 당황한 듯했으나 이내 센 척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 당연하지 인마. 밥이나 먹으러 가자 오늘은 내가 살게.”      


그날은 지광이 그동안 3층에 지겹도록 발걸음을 하며, 그토록 알고 싶어 했던 것을 직접 경험한 완벽한 점심시간이 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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