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비아 플래스의 <벨 자(The Bell Jar)>
언젠가 어느 시인이 말했던가.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먼저 죽어야 한다고. 그의 말처럼 어떤 예술가들은 목숨을 잃음으로써 그들의 작품 속에 영원히 존재하게 되기도 한다.
헤밍웨이, 반 고흐, 커트 코베인, 그리고 버지니아 울프. 확실히 내가 존경하는 예술가들의 삶과 최후에는 늘 어딘가 비극적인 데가 있고, 나는 그들의 예술 작품과 함께 인간으로서의 그들의 삶도 생각해 본다. 우울로 점철된 하루하루를 견뎌내던 삶을 지탱하던 무언가가 무너지는 순간 죽음을 택했을 그들을.
내가 실비아 플래스를 알게 된 계기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녀는 20세기 전후(戰後) 미국에서 활동한 작가로, 남편이었던 테드 휴즈의 외도로 이혼한 후 사랑에 실패했다는 상처와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다 가스 오븐을 열어 그 속에 머리를 박은 후에 자살했다고 한다. 부끄럽게도 나는 그런 그녀의 죽음에 대한 내용을 읽을 때마다 그 방식이 주는 기이함에 숨을 참는 편이었지 작품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그러나 얼마 전에 서점에 갔을 때 홀린 듯이 그녀의 소설 <벨 자(The Bell Jar)>를 원서로 샀다.
<벨 자(The Bell Jar)>는 1963년에 출간된 실비아 플래스의 유일한 장편 소설이다. 그녀의 자전적 소설이라고도 알려져 있는 이 작품은 주인공인 에스더 그린우드가 뉴욕의 잡지사에서 인턴으로 일하게 되면서 시작된다.
영문학을 전공하는 에스더는 총명하고, 좋은 시를 창작하고 싶다는 열망으로 가득 차 있다. 그녀는 대학 화학 수업에서 A 학점을 받기 위해 어른들을 교묘하게 조종하는 방법을 알 정도로 똑똑하고 스스로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신감이 넘치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가 20세기에 여성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속기사가 되는 일, 혹은 누군가의 어머니나 아내가 되는 일 밖에는 없다. 뉴욕에서 잡지사 생활을 할수록 에스더의 마음은 공허해지고 결국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과 자신에 대한 확신을 잃어버린 모습을 보인다. 똑똑하고 꿈에 가득 차 있던 여학생은 사회에서 요구하는 여성상에 부합하는 자신과 자유롭게 시를 창작하고 싶은 자신 사이에서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점점 망가져 간다.
잡지사에서의 인턴십이 끝난 후, 에스더는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어머니가 있는 집으로 돌아갔지만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선택된 학생만 들을 수 있다는 글쓰기 수업을 듣지 못하게 되었다는 소식뿐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녀는 삶의 의욕을 완전히 잃어버린다.
이후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하며 심각한 우울증을 앓던 에스더는 결국 지하실에 들어가 수면제로 자살을 시도하고 정신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소설은 정신병원에서의 치료와 사투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가고, 에스더가 병원에서 퇴원한 후에 삶을 다시 시작하면서도 우울증의 그림자가 여전히 자신에게 드리워져 있다고 생각하며 막을 내린다.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Bell Jar’는 종 모양으로 생긴 유리 모양의 덮개이다. 에스더, 즉 플래스는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의 삶이 종 항아리 아래에 갇혀 있는 삶과 같다고 말한다. 종 항아리가 공기를 차단하는 역할을 해 숨이 턱턱 막히고, 안에서 내다보든 바깥에서 들여다보든 시야가 왜곡되어 세상이 일그러져 보인다. 유리 관 안에 갇혀서 바깥의 세상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고 진공의 유리관으로서 그 안에 갇혀 있는 생물을 질식시킬 수도 있는 것이 바로 우울증, 종 항아리이다. 실제로 초반부까지의 소설은 주인공인 에스더가 뉴욕 생활을 하며 다양한 사건을 겪고 성장하는 로맨스 성장 소설처럼 보일 법도 하다. 하지만 중, 후반부에 이르면 정신병과 자살 사고에 대한 과감한 묘사가 꾸밈없이 드러나 있다.
나는 이 책 속의 주인공에게 어쩌면 지나칠 정도로 많이 공감하게 되었다. 꼭 에스더와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지 않은 사람들도 애매한 재능과 사회적 시선, 진로에 대한 고민과 방황을 해 본 사람이면 모두 이 소설에 공감할 수 있으리라. 소설 속에서 에스더는 삶은 뻗어나가는 무화과나무의 가지와 같고 가지 끝에 걸린 무화과는 자신이 성취한 삶의 모습과 같다고 말한다. 삶을 사는 것은 무화과를 몽땅 붙잡기 위해 애쓰다 모두 썩어버리는 것을 지켜보는 것과 같다고 말이다. 감수성이 예민하고 꿈이 많은 젊은이들은 가지마다 열린 무화과들을 모두 잡으려다 놓치는 경험을 해 봤을 것이다.
삶의 경계에서 죽음으로 건너가던 순간 실비아 플래스는 구급차를 불러 달라는 쪽지를 손에 쥐고 있었다고 한다. 어쩌면 마지막 순간에 그녀는, 죽음으로서 다시 태어나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