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는 이름의 흔적들
가을이 깊어지던 날, 보이지 않는 죽음이 피부를 스며들었다.
황금빛을 받으며 형형색색의 잎사귀들이 유혹할 때, 쯔쯔가무시병은 뉴스 속 먼 이야기로만 알았다. 타인의 삶에 침투해 생명을 앗아가는 일이 나와는 상관없다고 믿었다. 그 이름이 내 삶을 흔들 줄은, 그날의 산행 전까지는 꿈에도 몰랐다.
햇살 따스한 가을날, 아내와 함께 산에 올라 맑고 신선한 공기로 폐를 가득 채웠다.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빛은 얼굴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등산로를 벗어나 약초를 찾으려는 욕심에 숲 깊숙이 발을 들였다.
발끝에서 바스락거리는 낙엽 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잔디 덮인 무덤가에 누워 올려다본 하늘에는, 구름이 만들어내는 그림자와 빛의 조화가 평온함을 선사했다. 아무 데나 드러누운 모습에 걱정스러운 아내의 눈빛에도 그저 미소로 답했다. 자연의 품 안에서 느끼는 평화가 얼마나 위태로운 것인지, 그때는 깨닫지 못했다.
자연은 어머니처럼 포근하지만, 때로는 냉혹한 심판관이기도 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존재 하나가 인간의 오만을 부술 수 있음을, 곧 뼈저리게 경험하게 된다. 인간의 지식과 기술은 자연 앞에서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절실히 느꼈다.
2주 후, 몸은 고통으로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감기라 여기고 쉽게 넘겼지만, 약은 소용없었다. 두통과 발열, 오한은 매일 찾아오는 불청객이었다. 아침에는 잠시 호전되는 듯했지만, 오후만 되면 어김없이 열이 솟구쳤다. 머리는 깨질 듯 아팠고, 온몸에는 힘이 빠져나간 듯 무기력감이 감돌았다. 퇴근 후에는 오한과 전율 속에서 이불 속에 파묻혀 밤을 지새웠다. 몇 겹의 이불을 덮어도 뼛속까지 파고드는 냉기는 가시지 않았다.
매일 아침, 밤새 땀으로 젖은 이불을 말리며 출근하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몸은 점점 쇠약해졌지만, 심각한 병이라는 생각은 애써 외면했다. 그저 독감일 거라고, 곧 나을 거라고 믿으며 작은 병원에 머물렀다. 12일 동안 약과 링거에 의존했지만, 몸의 무력감은 더욱 심해졌다. 형언할 수 없는 깊은 피로감이 온몸을 짓눌렀다. 큰 병원에 가보라는 의사의 권유와 그의 눈빛에 드리운 걱정이 마음 한구석을 불안하게 했다.
그날 밤 혼수상태에 빠졌다. 희미하게 들려오는 응급요원의 목소리에 답할 수 없었다. 순간순간 정신은 돌아왔지만, 몸은 이미 말을 듣지 않았다. 죽음은 생각보다 무겁거나 두렵지 않았다. 고요한 물결처럼 스며들어 저항할 힘조차 빼앗아갔다. 온몸이 물속에 잠긴 듯 답답했지만, 숨 막히는 공포는 느껴지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도 살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이 마지막 의식 속에 또렷하게 남아 있었다. 구급차 안에서 울리는 사이렌 소리에 맞춰, 희미하게 ‘삐우 삐우’ 소리를 냈다. 꺼져가는 의식을 붙잡으려는 간절한 몸부림이었다.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는 외로운 외침이었다.
마흔 후반의 나이에 죽음을 맞이하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끊임없이 자신을 다그쳤다. 아직 하고 싶은 일, 만나고 싶은 사람, 가보고 싶은 곳이 너무나 많았다. 그러나 의식은 점점 더 깊은 어둠 속으로 침잠해 갔다.
부산백병원 응급실, 의사는 온 힘을 다해 몸을 살폈다. 왼팔 팔꿈치 안쪽, 접히는 부위에서 작은 검은 딱지가 발견되었다. 털진드기의 흔적이었다. 초대받지 않은 작은 침입자가 몸속에 들어와 생명의 불씨를 꺼뜨리려 했다. 쯔쯔가무시병이라는 진단과 함께, 20일 넘게 버텨온 나를 보며 의사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대단하십니다. 보통 이 정도면 이미...”그의 흐릿한 말끝에는, 이제 안심해도 된다는 안도와 함께 기적과 같은 생존에 대한 경외가 담겨 있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비로소 살아 돌아왔다는 깊은 안도감이 밀려오며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보름간의 입원과 몇 달에 걸친 통원 치료 끝에, 몸은 서서히 회복되기 시작했다. 높아진 간 수치에 잠시 불안했지만, 급성 질환이었기에 회복은 가능했다. 패혈성 쇼크나 호흡 부전, 신부전 같은 치명적인 합병증으로 이어지지 않은 것은 단순한 행운이 아닌, 분명한 기적이었다.
과거에는 이 병의 존재조차 몰라 속절없이 앓다가 스러져간 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직접 겪고 나니,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깊은 성찰이 찾아왔다. 자연의 아름다움 뒤에 숨겨진 위험을 마주하는 순간, 인간의 나약함을 뼈저리게 깨닫게 된다. 자연을 지배한다는 인간의 생각은 얼마나 어리석은 착각인지,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생명체에게조차 무력해질 수 있음을 온몸으로 배웠다.
죽음의 문턱에서 되돌아본 삶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매일 반복되는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숨 쉬는 순간순간이 얼마나 값진 축복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흔히 당연하게 주어지는 것들에 대한 감사를 잊고 살아간다. 매일 아침 눈을 뜨고, 가족의 얼굴을 마주하고, 시원한 물 한 모금을 마시는 단순한 행위조차 얼마나 특별한 선물인지. 삶의 작은 순간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죽음과 맞닿았던 경험이 깊이 각인시켜 주었다.
이제 산이나 들에 다녀오면 습관처럼 온몸 구석구석을 살핀다. 가을 단풍의 아름다움 속에는, 예상치 못한 위험 또한 숨어 있음을 안다. 간혹 발견되는 작은 진드기를 볼 때마다, 과거의 안일했던 자신을 되돌아본다. 작은 생명체 하나가 삶 전체를 뒤흔들 수 있다는 사실은 경외감마저 느끼게 한다.
뺨을 스치는 가을바람 속에서, 그날의 기억은 선명하게 되살아난다. 죽음의 문턱을 넘어 다시 살아 돌아왔다는 사실이 이제야 가슴 깊이 와닿는다. 살아 있다는 단순한 사실, 그것은 그 어떤 성취나 소유보다 값진 선물임을 매일 느낀다.
다시 산길을 오를 날을 그리며, 가을의 냄새 속에서 삶의 소중함을 되새긴다. 예전과 같은 무모한 발걸음은 아니겠지만, 두려움에 굴하지 않고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삶을 꿈꾼다. 나약했던 과거의 순간들이 떠오를 때마다, 깊은숨을 들이마신다. 가을 숲을 바라보며 깊게 숨을 쉬니, 매 순간이 소중한 선물임을 온몸으로 느끼며 조용히 속삭인다.
오늘, 나는 살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