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잔, 죽음의 문턱

사랑이라는 이름의 흔적들

by 가슴속호수

눈을 떴을 때 다니엘 얼굴이 보였다. 정신이 빠져든 깊은 곳에서 잠겨있던 사흘간의 깊은 혼수상태, 존재의 바다를 표류하다 육지에 닿은 순간이었다. 다니엘의 손길은 죽음의 깊은 그늘에서 건져 올린 구원의 밧줄이었다.

무겁게 내려앉은 먹빛 어스름 속에서 정신이 분리되어 떠다니는 느낌, 우주 공간에 홀로 내던져진 별빛이 무한한 허공을 표류하는 모습이었다. 아득한 거리에서 바늘구멍 같은 빛이 파고들었다. 원초적 본능이 생명의 빛을 좇게 했으나, 다가갈수록 주변은 더 깊은 암흑으로 가라앉았다. 오직 좁은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희미한 빛만이 이정표가 되어 나를 인도했다.

문 앞에 수호자가 서 있었다. 검은 도포와 갓으로 장식된 저승사자의 형상, 달빛의 창백한 빛을 띤 회색 얼굴, 천년의 세월이 깎아내린 깊은 계곡 같은 주름, 존재를 꿰뚫는 섬뜩한 눈동자가 돌아가라는 무언의 명령을 내렸다. 죽음의 사자가 풍기는 불길함 속에서도 표정은 역설적으로 자애롭고 평온했다. 한 걸음씩 다가갈수록 수호자의 격렬한 손짓은 거센 바람처럼 흔들렸고, 발걸음이 얼어붙었다.

순간, 뒤돌아섰다. 눈부신 생명의 빛이 쏟아지는 폭포수와 함께 의식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다니엘이 보였다. 죽음의 경계를 넘었다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을 것이다.

사흘 전, 새벽 한 시, 시계의 초침이 죽음의 초읽기를 시작했다. 집안은 전쟁터의 아수라장이 되었다. 꺼져가는 촛불 같은 체온, 의식이 깊은 바다로 가라앉는 순간. 가족의 애타는 손길은 구원의 밧줄을 찾아 119에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병원마다 전화를 걸었지만, 돌아온 메아리는 얼음장의 냉담함이었다.

“술이 깨면 데려오세요.”

세상이 무너지는 절망의 순간, 누군가가 내과 병원을 막 개업한 다니엘을 떠올렸다. 대학 시절 성당 주일학교에서 함께 정신적 가치를 빚어온 오랜 친구다. 그의 손에서 뿜어져 나온 생명의 빛으로 끊어질 뻔한 삶의 실이 다시 이어졌다. 운명의 신이 다니엘을 보내지 않았다면, 이미 저승의 강을 건넜을 것이다.

회사가 자리한 빌딩은 당시 기업문화의 축소판이었다. 영상미디어 제품 판매장에서는 지점장과 십여 명의 직원들이 유리 벽 안에서 움직이는 꼭두각시의 모습으로 일했다. 우리 회사도 같은 빌딩 안에서 서로 다른 꿈을 꾸며 임대로 있었다. 매달 열리는 전체 회식은 불문율의 굴레였다. 불참은 곧 인사고과의 낙인이나 건물 청소라는 벌칙으로 이어졌다.

지점장의 권력은 술잔으로 구현되어 특정인의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잔혹한 의례가 되곤 했다. 회식 비용이라는 미끼가 던져졌고, 이에 걸려든 물고기의 신세가 되었다. 술을 모르는 몸으로 흑기사라는 방패를 세웠지만, 이는 바람 앞의 촛불에 불과했다. 운명의 수레바퀴가 이미 내 이름을 새기고 돌아가기 시작했음을, 제단 위의 제물로 선택되었음을 어찌 알았겠는가.

첫 잔은 타오르는 불길이었다. 맥주잔 속 소주잔은 생명을 태우는 화약이 되었다. 지점장의 단호한 명령과 함께 터져 나온 원샷이라는 함성은 사형 집행인의 신호처럼 울려 퍼졌다. 주변을 둘러싼 시선의 감옥에 갇혀, 떨리는 손으로 운명의 잔을 들어 올렸다. 예상치 못하게 술은 뱀의 움직임으로 목구멍을 미끄러져 내려가며, 전신을 관통하는 전율과 함께 달콤한 독을 퍼뜨렸다.

연이은 술잔의 폭격 속에서 제물로 바쳐지는 순간까지도 깨닫지 못한 채, 깊은 늪으로 빠져들었다. 믿었던 흑기사는 이미 포섭된 후였다. 테이블마다 술잔이 나비의 날갯짓으로 날아들었다. “이사님을 위하여.”라는 함성 속에 주량이 전혀 없는 여직원들조차 의례에 동참했다.

이성이라는 수문장은 자리를 비웠다. 술의 홍수가 의식의 성벽을 무너뜨리며 내면의 광채를 잠식해 갔다. 매 술잔은 심장을 향한 화살이 되어 치명적 주량의 경계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참석자들의 권유를 거절할 힘도 잃었다. 물로 위장한 잔들이 섞여 있었지만, 이를 가려낼 지혜는 이미 마비되었다.

나는 피리 부는 사나이가 되어 일행을 나이트클럽으로 이끌었다. 화장실 변기는 고해성사의 제단이 되었다. 몸은 모든 것을 토해내며 항복의 백기를 들었다. 의식은 완전히 꺼져버렸다. 그날의 기억은 찢긴 영화필름의 파편적인 모습, 흐릿한 잔상만 남았다. ‘필름이 끊겼다.’라는 표현은 더 이상 비유가 아닌, 피부로 새겨진 상처가 되었다.

한 인간이 술의 제물로 바쳐지는 자리에서, 한국 기업문화의 그늘진 단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권력이라는 칼을 휘두르는 상사의 독선과 아부라는 방패로 숨어드는 부하직원들 사이에서, 인간관계는 술에 절인 독버섯의 부패함을 띠었다.

죽음의 문턱에서 기적적으로 돌아온 사건은 빌딩 전체를 뒤흔든 지진이 되었다. 지점장의 독선적 술자리 문화는 사라졌다. 자율성이라는 봄바람이 불어오며 진정한 소통의 싹이 트기 시작했다. 직원들 사이에 쌓였던 얼음벽은 녹아내리고,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 온기가 돌았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천국과 지옥을 동시에 본 경험은 모든 가치를 재정립하는 분수령이 되었다.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지, 무엇을 움켜쥐고 무엇을 놓아야 할지, 삶의 지도 위에 분명한 이정표가 세워진 순간이었다.

이제 매 순간은 삶이 허락한 선물이 되었다. 시간의 모래시계가 한 알씩 떨어질 때마다 그 소리에 귀 기울인다. 숨 쉬는 공기마저 축복으로 다가온다. 창틈으로 스며든 새벽빛이 밤과 아침의 경계에서 살아남은 기적을 되새긴다.

어제의 기억이 내일의 희망으로 변하는 순간, 삶이란 거대한 캔버스에 나날의 선택과 경험을 물감으로 채워가는 예술임을 깨달았다. 죽음의 벼랑에서 되돌아본 인생은 번개의 선명함으로 드러난다. 술잔 부딪치는 소리, 직장의 위계질서, 사회적 체면 이 모든 허울은 순식간에 빛바랜 환상이 되었다.

저승의 문턱에서 돌아온 지금, 일상의 사소함이 가장 위대한 기적이며, 평범한 나날의 연속이 찬란한 선물임을 온몸으로 느낀다. 매일의 해돋이는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 진정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죽음을 껴안은 자의 특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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