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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소 Jul 17. 2024

계획적인 사탕

나의 작은 미니미는 나와 닮은 점이 참 많다.

물론, 내가 배 아파 낳은 내 아들이니 나를 많이 닮았겠지만 생긴 겉모습보다는(외모는 할아버지를 많이 닮은 것 같다. 자라면서 또 바뀌겠지만) 사소한 버릇이나 습관, 좋아하는 것도 닮았다.


임신 전에도 나는 단 것을 좋아했다. 서른한 가지의 맛이 있다는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에도 당도 높은 '어머님은 외계인' 같은 진하고 달달한 아이스크림을 좋아했다. 커피는 아메리카노를 수혈하고 살지만 달달구리한 카페모카나 흑당라테도 좋아한다.


임신했을 때에는 정말 딸기스무디, 소보루빵, 달디 단 간식들을 입에 달고 살았으며, 지금 우리 집 부엌의 가장 윗 칸(아가 손이 닿지 않는) 제일 넓은 칸에는 간식들이 가득 차 있다.

다람쥐가 도토리를 모으듯이 맛있다는 간식은 보일 때마다 조금씩 구매해 넣어 두었다.

맨 아랫칸에는 우리끼리 정해놓은'간식열차'라는 기차모양 통에 담긴 자잘한 쿠키와 젤리, 사탕들이 가득 찬 통이 있다.


이런 달달한 기운을 받고 태어난 우리 아가 역시 군것질, 달달한 간식을 정말 좋아한다.


어린이집을 다녀오면 항상 하는 루틴이 있다.


"엄마 간식열차 먹고 싶어요!"

"손 씻고 그럼 간식열차에서 하나만 골라서 먹는 거야~"


그러면 아이는 재빨리 세면대로 가서 고사리 같은 작은 손을 대충대충 씻는다.

아이는 욕심을 부리지는 않는다. 정말로 딱 하나만 고르지만 정말 고심해서 고른다.

마치 간식 하나를 고르는 게 영어시험 답안지에 답을 고르는 것 마냥 신중하고 또 신중하다. 들었다 놨다 하면서, 이 핑크색 쿠키는 무슨 맛이었는지, 저 망고젤리는 얼마나 달콤했는지를 떠올리는 것 같이 한참을 망설이다 하나를 고른다.


드디어 골라낸 답안을 꺼내 들면 마치 상을 받듯이 까주는 쿠키를 조심스레 받아 들고 자기 자리로 가서 맛있게 먹는다. 여기까지는 참 괜찮은 루틴이다. 하나 정도는 어린이집을 잘 다녀온 보상으로도 괜찮다.

 

하지만 한 번씩, 아니 꽤 자주, 당보충이 부족하신지 더 먹고 싶어 할 때가 있다.


"엄마, 사탕도 먹을까?"

"아니, 금방 간식열차에서 꺼내먹었으니까 오늘은 그만."

"오늘은 사탕은 안 먹었으니까 딸기사탕 주세요!"

.

맞는 말이다. 오늘은 사탕은 안 먹었긴 하다.

하지만 더 이상 간식을 먹으면 또 저녁식사에 비협조적일 것이 뻔하기에 한번 더 거절해 본다.


"안돼. 밥 먹을 때 배가 고프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게  되어서 간식은 많이 먹으면 안 돼."

.

한 번의 딜이 더 들어온다.


" 먹고 싶은데... 그럼 밥 먹고 먹을까?"

"그래. 그럼 밥 맛있게 다 먹으면 엄마가 딸기사탕 줄게. 밥 많이 다 먹어야 해!"

"웅 알겠어! 그럼 알로에쩰리 먹을까?"

"그래 그럼 사탕대신 알로에젤ㄹ..."


?


주고 나니 이상하다. 사탕 약속을 했는데 젤리를 주고 있다...

면역 젤리라 하루에 하나씩은 먹어야 한다고 자기 합리화를 하며, 이미 까버린 알로에젤리를 건넨다...


신나게 저녁시간 전까지 책도 보고 넷플릭스도 보면서 시간을 보낸 후, 약속대로 저녁밥도 맛있게 먹어주는 아들을 보며 오늘도 야채를 무사히 먹인 것에 감사하며 그릇을 치울 때였다.


뭔가 할 일이 남지 않았냐는 듯 다가와서 물끄러미 쳐다보는 아이를 애써 모른 척한다.


"엄마 딸기사탕 주세요. 약속했자나."


그래 약속을 했지.


오늘도 당 적게 먹이기는 실패로 돌아갔다.

그나마 무설탕 쿠키였고, 그나마 알로에로 만든 면역젤리였고, 그나마 아가를 위한 유기농 사탕이긴 했으니, 거기에 또 위안을 얻고 합리화를 하는 엄마이다.


그치만 나도 맛있는데, 나도 너무 좋아하는 달달한 간식인데 이제 막 먹거리를 접한 갓 세 돌 지난 아이는 얼마나 맛있을까... 사탕 하나에 저렇게 세상을 가진 듯 웃음이 나는 아이를 보면 사탕을 넣지 않은 내 입속도 내 마음마냥 달달해지는 기분이다.


에라 모르겠다. 오늘은 엄마 먹으려고 사놓은 딸기빵도 같이 먹자!

알콩 달콩 머리를 맞대고 두 개 꺼낸 딸기빵을 사이좋게 먹고 있으면,


"아빠한테는 비밀로 하자!"

"그래 아빠는 주지말자!"


하고 우리만의 비밀도 하나 만들어 보고, 오늘치의 아가 행복에 조그맣게 기여한 당 충만한 하루가 되는 것이다.


그 옛날 우리 어릴 때, 문구점에 파는 온갖 불량식품을 먹고서도 튼튼하게 자란 나와 비교하며, 이 정도는 괜찮다 하고 또 마지막 합리화를 하는 아직도 초보 엄마는 그래도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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