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색깔은 본인이 정한다
독일에 소재한 한식당에서 일을 하면서 꼭 ‘유학생’만이 해외에 나와 타향살이를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누구는 단지 한국의 삶이 싫어서 도피로 나왔고,
누구는 더 큰 꿈을 꾸고자 유학 목적으로 나왔지만 학교 합격의 문턱을 못 넘어 있었고,
누구는 단지 헬조선을 외치며 외국에서의 ‚dream comes true‘를 품고 살고 있더라.
사람이 부정적인 생각과 행동을 달고 살면 얼마나 스스로가 망가지는지를 알 수 있던 일이 있었다.
같이 일하던 형님 중에 독일 산 지도 오래됐고, 독어도 수준급으로 하던 형님이 있었다.
이 형님은 언제나 궁시렁거렸다. 자기는 사실 음악을 하지만, 자기가 만족할 만한 자리가 아직 안 생겨서 그 기회가 올 때까지 여기 있는 거라고, 기회만 되면 이 거지 같은 식당 알바를 때려치울 거라고 떠들곤 했다.
그러고는 본인이 판단하기에 지성적이지 못하고, 집이 부유해 보이지 못하고, 본인보다 낮은 처지에 있다고 판단이 들면 쉽게 무시를 하는 태도를 취했다.
이 형님은 주방 베트남 청년을 언제나 무시하는 발언을 하곤 했다. 언어 수준이 의사소통에 지장을 주지 않는 사람이 그렇지 못 하는 사람과 일을 하게 되니 일하다가 업무적 소통에 가로막히면 언제나 한국어로 “말도 못하는 병 x새 x”를 달고 살았다.
그러나 같이 일을 하면, 베트남 청년이랑 일하는 걸 모두 좋아했다. 그는 단지 ‘소통의 부족함’이 있었을 뿐이지만 언제나 활력이 넘쳤고, 그의 일에 열정이 있었으니까. 싫어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이 형님이랑 일하는 날이면 모두들 한숨을 쉰다. 우스운 사실은 그걸 그 형님 본인만 모른다는 것이다.
나는 그 친구의 20여 단어의 독일어만으로 그 친구랑 2시간도 넘게 떠들곤 했는데, 옆에서 그걸 보곤 그 형님은
“저 새 x는 네 말을 알아듣기는 하면서 대답하는 걸까?”
이렇게 비웃더라.
7년이 지난 지금, 그 형님은 지금도 거기서 일한다.